‘차벽을 꽃벽으로 만든 남자’… 미술가 이강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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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있었던 촛불집회의 화제는 경찰버스에 붙은 수많은 꽃그림 스티커였다. ▲이는 이강훈(43) 작가가 기획한 ‘차벽을 꽃벽으로’라는 프로젝트의 결과다. ▲‘차벽을 꽃벽으로 만든 남자’ 이강훈 미술가를 22일 저녁, 경복궁역 근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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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도와 도로를 막아놓은 경찰버스에 꽃이 가득 피었다. 각양각색의 꽃그림이 담긴 스티커가 경찰 버스 차량을 뒤덮은 것. 이는 미술가 이강훈(43)씨가 기획한 ‘차벽을 꽃벽으로’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강훈 작가는 예술분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세븐픽쳐스’에서 100만원을 모금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작가 26명의 지원을 받아 꽃그림 스티커 2만 9000장을 제작했다. 이를 19일 오후 3시부터 자원봉사자 13명의 도움을 받아, 경복궁역 6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를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붙이면서 ‘차벽’이 ‘꽃벽’으로 바뀌었다. 이 광경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시민과 경찰 사이의 ‘차벽’이 ‘꽃벽’으로

22일 저녁 7시, 꽃벽이 즐비했던 경복궁역 근처 카페에서 이강훈 작가를 만났다. 26일로 예정된 5차 촛불집회 때에도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그는 이날도 아침부터 동분서주했다.

우선 그가 이 기획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이 작가는 “시민과 경찰 사이에 놓인 차벽은 정말 말 그대로 큰 ‘벽’이다”라며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 벽을 없애는 시위를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스티커’라는 방식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이랬다.

“12일 촛불집회에 나왔었어요. KBS 취재차량에 ‘박근혜 퇴진’ ‘하야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더라고요. 이를 보고 ‘칙칙한 경찰버스에 꽃그림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하는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KBS 취재차에 붙은 스티커 보고 영감 얻어”

이강훈 작가는 KBS 덕분(?)에 아이디어를 얻은 뒤, 이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던 게 아니라, ‘집회 주최 측이 이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이 페이스북에서 공유되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 온 건 집회 주최 측이 아니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세븐픽쳐스’였다. 펀딩을 해서 아이디어를 실현시켜보자고 제안해 온 것이었다. 그렇게 100만원이 모였고, 이를 스티커 2만9000장을 제작하는 데 모두 썼다고 했다.

이 작가는 “원래 잔여물이 안 남고 잘 뜯어지는 스티커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가격이 일반스티커 제작비의 10배나 된다고 하더라”면서 “제작기간도 더 오래 걸려, 19일 집회 때까지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반스티커로 제작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대신 스티커 뒷면에 칼선을 내서, 상단만 붙일 수 있도록 했어요. 시민들에게 나눠줄 때도 그렇게 설명해드렸죠. 그런데 실제로 전면을 붙이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26일 집회 때 쓸 스티커는 잘 떼어지는 걸로 제작하기로 했고, 꽃모양 포스트잇도 함께 나눠드릴 예정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일부 시민들 “의경들 힘들게 스티커 왜 붙이냐”고 항의도…

19일 집회에서 스티커를 나눠주던 이강훈 작가는 일부 시민들로부터 “경찰버스에 스티커는 왜 붙이느냐. 괜히 의경들만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냐”는 항의도 받았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일부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붙어 있는 꽃그림 스티커를 자발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집회를 마친 후 길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듯, 경찰버스에 붙은 스티커 역시 떼어내려 했던 것이다.

이 작가는 “시민들이 스티커를 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시민들의 ‘착한시민 콤플렉스’를 깰 필요가 있지 않느냐”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의경들에게 쉽게 떨어지는 건 떼고 다음주에 또 붙일 텐데 나머지는 놔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당기는 등의 행위보다) 꽃을 붙여주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훨씬 낫다”고 했다.

스티커 붙인 시민들에 피해가지 않는 방법, 변호사에 자문

얼마 전, 사회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는 사람들에게 뜻밖의 소식이 있었다. 검찰이 예술가 홍승희씨에게 10월 21일 재물손괴 혐의로 1년 6개월을 구형한 것. 지난해 11월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공사장 철제 담장에 일본 전범기를 배경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래피티가 문제였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신영희 판사는 11일,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강훈 작가는 “이 소식을 듣고, 최악의 경우엔 본인 뿐 아니라 스티커를 붙인 시민들까지 기소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만약 기소되면, 공공기물훼손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경우, 스티커를 붙인 시민들은 처벌받지 않고 기획자인 저 혼자 처벌받을 수 있는 방법 등을 변호사한테 물었어요.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걸려면 걸어라’라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였죠.”

변호사는 이 작가에게 “하지만 (꽃벽이) 예뻐서 기소 안할 거다”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예쁘다는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게 와 닿았다”면서 “아직은 계속해서 시도해 볼 만한 일 아닐까”라고 했다.

“모든 과정이 작업의 일부분”

이강훈 작가는 “한 3~4년 전까지는 대부분 혼자서 작업을 했다”면서 “하지만 SNS가 발달하면서부터 작업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SNS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아 이를 작업에 반영하는 일이 재밌고 즐겁게 느껴졌어요. 이번 꽃벽 작업의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인 거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재학시절부터 현재까지 18년 동안 ‘한겨레21’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예술로 풀어낸 건 이번 작업이 처음이라고 했다.

꽃벽 프로젝트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제로’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이강훈 작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없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돈을 벌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1차 펀딩때 모금된 100만원은 모두 스티커 제작비로 쓰였다. 현재 진행 중인 2차 펀딩의 모금 목표액은 300만원(현재 154만4000원 모금). 하지만 일반스티커 원가의 10배에 달하는 잘 떼지는 스티커 9만장과 꽃모양 포스트잇 5만~10만장을 제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스티커 제작업체가 원가를 절반 이하로 낮춰줬다”고 했다.

스티커에 새겨질 꽃 그림을 보내온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이익도 없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세븐픽쳐스 역시 수수료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세븐픽쳐스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박근혜 정부의 지원으로 창업한 업체를 통해 이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현재의 상황이다.

“차벽이 없어질 때까지”

이강훈 작가는 “이 프로젝트는 차벽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저는 ‘연대’라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결국 제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빨리 이번 일이 끝나야 제 개인작업을 하는데…”라며 웃었다. 이 작가는 예술가답게 자유를 추구하는 듯 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한 달에 열흘 정도”라며 “나머지는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는 “대개 일러스트로 밥 벌어 먹고 사는데, 크게 욕심내지 않으면 살만한 수준으로 벌고 있다”고 했다.

“금기에 대한 금기를 상징”

마지막으로 이강훈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꽃벽 프로젝트는 ‘금기에 대한 금기’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착한 시민’들이 너무 착하게만 집회에 참여하고 있잖아요. 여기에 ‘평화로운 저항’이라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방점은 ‘저항’에 찍혀 있구요. 제 작업이 이번 사안을 끝내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가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26일 집회 때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줄 자원봉사자를 모집 중이다. 이날은 오후 1시 가량부터 경복궁역 뿐 아니라 광화문~내자동로터리 일대 여러 곳에서 스티커를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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