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작명의 기술'…흥행 8할의 비밀

작품 제목은 첫인상과도 같다. 극의 내용·출연배우보다 한 줄의 타이틀이 먼저 관객과 접선해서다. 제목처럼 곰탈을 쓴 가짜 곰이 등장하는 연극 ‘곰의 아내’(사진 왼쪽부터), EMK뮤지컬컴퍼니는 당초 ‘마이 마타하리’란 제목을 지었다가 서술을 빼버린 뮤지컬 ‘마타하리’라고 명명했다. 범인이 잡히길 바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연극 ‘날 보러와요’,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의 한장면(사진=EMK·서울문화재단·프로스랩·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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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준다는 얼음꽃…석탄나르는 길에 꽃피우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그래, 결정했어!” 뮤지컬 ‘마타하리’는 치열한 제목짓기의 산물이다. 언론에 공개하기 직전까지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만든 제목이기 때문이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4년여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선보인 첫 창작뮤지컬 ‘마타하리’의 원래 제목은 ‘마이(나의) 마타하리’. 누군가에게는 무희였다가 누군가에겐 사랑의 대상, 그러다 결국 1차대전 중 이중스파이 혐의로 희생당하는 주변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마타하리’를 담고자 했다.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막판까지 두 제목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관객 관점에서 결정했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면 넘치더라. ‘마타하리’가 꾸밈 없으면서도 쉽게 와닿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잘 지은 제목 하나 열 마케팅 안 부럽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제목이 마케팅과 홍보전략의 8할을 차지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만큼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 부대표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제목 정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아이디어 회의는 물론 투표를 거치기도 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심한다”고 밝혔다. 공연제작사와 관련자에게 제목 탄생 비화를 물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은 작명의 기술을 파헤쳐봤다.

뮤지컬 ‘마타하리’의 두 주역

△고치고 또 고친다…작명의 원칙

연극·뮤지컬 등의 제목은 보통 극본을 쓴 극작가의 몫이다. 극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제작사·연출가와 합의해 변경하기도 한다. 김 부대표는 “공연계 특성상 연극이나 뮤지컬 작품은 대개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우리말 번역이 난해하거나 너무 뻔할 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때는 신중한 검토를 거친다. 작명에도 기술과 원칙이 있다”고 귀띔했다.

우선 극의 핵심을 담아야 하고 관객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웬만하면 글자 수도 5~6개 내외로 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광고 측면에서도 기억하기 쉽고 뇌리에 남을 만한 단어여야 좋다. 그래서일까. EMK의 작품을 보면 ‘드라큘라’ ‘모차르트!’ ‘엘리자벳’ ‘팬텀’부터 제작예정인 ‘웃는 남자’ ‘베토벤’까지 유독 짧은 제목이 많다.

라이선스작품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오스트리아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좀 달랐다. 원래 제목에는 ‘황태자’라는 단어가 없다. 김 부대표는 “오스트리아에선 루돌프 하면 비운의 황태자를 떠올리지만 한국에선 빨간코 사슴을 연상하더라. 초연과 재연에서는 원제를 따랐지만 삼연부터는 ‘황태자’라는 단어를 넣었다. 흥행에서나 마케팅 측면에서 좋은 선택”이었고 말했다.

반대로 신시컴퍼니는 원작 그대로를 옮기는 편이다. 뮤지컬 ‘시카고’ ‘맘마미아’ ‘아이다’ ‘아리랑’, 연극 ‘레드’ ‘햄릿’ ‘아버지와 나와 홍매화’ 등이 대표적. 신시컴퍼니 측은 “국내에 소개한 라이선스작품에선 변형하기보다 고스란히 가져온 편”이라며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핵심이미지를 각인할 만한 작품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로 선보인 ‘산허구리’ 역시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원작 제목을 그대로 옮긴 작품이다.

남북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는 제목 배반 연극 ‘두 코리아의 통일’

△배반 혹은 친절하거나 호기심유발형

극단 프랑코포니의 연극 ‘두 코리아의 통일’은 제목의 배신이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서다. 프랑스 극작가 조엘 폼므라가 쓴 남북은 이질적인 남녀를 상징하는 단어일 뿐이다. 친절한 제목도 있다. 연극 ‘곰의 아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곰의 탈을 쓴 ‘진짜 곰’이 등장한다. 원제 ‘처의 감각’을 고선웅이 연출·각색하면서 바꿨다. 윤미현 작가는 소품을 다루는 식. 연극 ‘궤짝’ ‘평상’ ‘장판’ ‘젊은 후시딘’ 등 비사실적이면서도 역설적인 작법으로 주목받는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으로는 연극 ‘날 보러와요’가 있다. 범인을 향해 손짓하는 제목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이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다. 어딘가에 있을 범인이 연극을 보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작가 김광림이 이름 붙였다. 연극 ‘영점구일칠’(0.917)은 좀더 직설적이면서도 명쾌하다. 얼음이 물에 잠기는 비중을 수치로 표현해 문학적으로 음미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사를 곱씹게 한다.

번역자나 작가 특유의 작명 센스가 돋보이는 원작탈색형도 있다.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의 원제는 ‘임종’(Vigil). 구태환 연출은 ‘고모’가 갖는 의미에 주목했다. 구 연출은 “우리는 엄마·외할머니·이모 등 모계를 통해 길러지는 전통이 있는데 서양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먼 친척인 고모의 임종을 조카가 지키러 간다. 가족해체와 고립화된 사회를 보여주는 동시에 결국 해결책은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이 올해 선보인 연극 ‘가까스로 우리’도 우리말로 적절히 변형한 작품. 국내서 ‘위기일발’ ‘벼랑 끝 삶’ 등으로 알려진 손톤 와일더의 희곡 ‘더 스킨 오프 아워 티스’(The Skin of Our Teeth)를 박지혜 연출이 직접 번역·연출하면서 바꿨다. ‘가까스로’ ‘간신히’라는 관용구에 관계를 중시하는 원작의 의미를 부각하고자 ‘우리’를 붙였다.

연극 ‘한국인의 초상’(사지=국립극단).

△무려 28자 연극제목…자음·조사 따라 의미 다르네

띄어쓰기, 자음모음 살짝 바꾸기, 과거형 혹은 현재형, 조사를 넣고 빼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연극 ‘보지체크’는 원작 ‘보이체크’(Woyzeck)에 ‘이’자를 빼고 ‘지’를 넣어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을 만들었다. ‘대학로의 사고뭉치’라 불리는 극단 신세계의 발칙한 연극은 게오르그 뷔히너 명작을 통해 자연환경 속에서의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가장 긴 제목의 공연은 2014년 명동예술극장이 제작한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다. 무려 28자다. 뮤지컬로는 14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다. 황당하게도 진짜 ‘제목이 긴 공연’도 있다. 햄릿을 다룬 연극이다.

반대로 한 글자 공연도 적잖다. 연극 ‘챙’ ‘밥’ ‘비’ 등이다. 심벌즈 소리를 그대로 옮긴 이강백 작가의 ‘챙’은 인생과 심벌즈 연주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데 암시·역설은 물론이고 때론 문학적 의도를 고수하기도 한다”며 “공연이 끝났을 때 주제와 형식이 잘 어울려야 좋은 제목이다. 기대치가 내용과 부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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