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1.

이 칼럼은 일단 삼국지를 읽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싶다만, 분명 모두 삼국지를 읽진 않았을 수도 있고

읽긴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디테일하게 정독한 분도 계실거고, 주욱~ 요점만

훑듯 본 분도 계실거다..


혹시라도 삼국지를 이제 처음 읽을 예정이거나, 또는

다시 읽어 볼 예정인 분들을 위한 팁을 준비해봤다ㅎ

"룰"

"지식"


삼국지도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정보를 미리 알면

약간은 더 재미를 느끼고 조금은 더 몰입할 수 있을거

같다.

1. 자.

"자(字)"

이름에 자가 붙는다. (Ex. 조조 "맹덕", 여포 "봉선")


이 자는 현재는 거의 사라진 개념이라 좀 생소한데,

아마 대부분 책 읽으며 별 의문들 안갖고 그러려니~

하고들 넘겼을듯 싶다.ㅎ


지금보다 훨씬 더 예와 격을 따지던 오래전 옛날의

중국에서는 일정 나이 넘은 성인남성의 이름을

동년배이하 연하자나 아랫 사람이 함부로 부르는건

큰 결례였다.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여겨 아껴아 한다는 개념이

있었기에 되도록 상대의 이름을 부르길 자중했고

그래도 부를 려면 뭔가 명칭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자'였다.


정말 절친하지 않으면 동년배끼리도 본명은 거의

부르지 않았고, 반대로 손윗사람에게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보다는 이름으로 소개하는게 예였다.


자는 성인이 되며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안 어른, 스승, 기타 마을 어른 등의 손윗사람들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호(號)"

엇비슷한 개념인데, 호는 심지어 편히 부르고자 쓰는

저 자보다 살~짝 더 편한 명칭이고 주로 남이 지어준

자보다 주로 본인이 편히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게

차이라면 차이?

2. 당시 상황.

유구한 중국역사는 스킵하고 그냥 바로 딱 삼국지의

배경이 시작되는 후한말만 보면 한마디로 "개판"...


요즘 시스템에 비하면 지방자치or연방국가와

엇비슷하게 천자(중국의 황제의 명칭)가 있는 당시

수도인 낙양(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를 제외하면

실상 각 영지를 맡아 다스리는 군벌들이 자신의

관할지의 왕이나 진배없었고...


지역 별로 화폐단위, 법제도, 각종 행정 시스템들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명목상으로는 중앙집권형을 추구했으나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황실은 그 기능을 많이 상실했고,

각 지방 군벌들도 그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영지를

주무르다보니 백성들은 높은 세금에 시달렸으며

설상가상 거듭된 자연재해, 엉망인 치안으로 인한

창궐하는 도적떼들로 인구도 많이 줄어 있고 경제도

몹시 좋지 않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상태 저하 및 각종 전염병의

영향으로 평균 수명도 40대 초반이 될까 말까였는데,

이는 그때 사람들이 마흔 살까지 살다 다 죽는다는건

아니고, 워낙 영아 사망률이 높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Ex.) 80세 사망 A + 2세 사망 B = 평균수명 41세

(80+2)÷2=41




하여간 저렇게 살기 빡치다보니 자연스레 전국가적

"황건적의 난"

된다...

3. 위, 촉, 오의 국력 비교.

책을 보며 첨부된 지도, 또는 특히 게임하며 보는

지도에 의하면 위나 오는 거의 면적도 비슷해 보이고

촉도 생각처럼 작지 않다.(위 첫번째 지도 참조)


그러나 그건 당시의 인프라를 전혀 고려치 않은

착시나 진배없고 실제로 그 당시 세 나라의 국력을

따질 때 유효하던 영토는....(두번째 지도 참조)


저렇게 특히 촉과 오가 팍 쪼그라드는 이유는 역시

"인프라 수준"


일단 중국은 몹시 넓다.

참고로 위, 촉, 오 세 나라가 숱하게 차지하려 애쓴

대륙의 중심부의 전략요충지인 형주만 해도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넓었다.


그 넓은 면적이 첫 째, 또 당시는 개간기술도, 도로나

교통도 지금과 비교불허인 시절에 통신이란 개념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후한이 그러하듯 저 세 나라도

자신들이 명목상 차지한 영역의 구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오의 남쪽, 촉의 국토 대부분은 거칠고 험한

산악지대였다.


또 지금도 중국은 수 많은 소수민족들이 어울려

살며 아예 한족들과 많은 부분이 달라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기네 마음대로 사는 자치구들도 있다.


하물며 저 당시는 말할 것도 없어,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민족)들은 한족의 통제를 거부했다.




아무튼 저러다 보니 세 나라의 국력차는 극명했다.

당시의 인구는(정확하진 않지만) 위가 대략 450만,

오가 220만, 촉은 90만 가량...


참고로 이 인구는 당시 삼국의 자체적 인구 리서치에

의한 수치이며 역사가들은 대략 저 시기 중국내의

총 인구를 약 1,600여 만 ~ 2,000만 명 가량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해보면 세 나라의 인구, 경제, 군사 등

내셔널파워를 요즘 국가에 비해 본다면

위 = 미국 / 오 = 일본 / 촉 = 한국 정도로 보면 비슷!

4. 단위.

삼국지를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비쥬얼을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Ex.) 여덟 자 키에 범의 머리요, 원숭이같은 팔에

곰같은 상체를 한 장수가 나타났다...(괴물??..)


다른 건 주관적인 묘사니 그렇다쳐도 특히 저,

여덟 "자"의 키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건지 다들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거다.


일단 지금 기준, "한 자 = 30cm" 인데, 이걸 저기에

도입해 버리면 이건 무슨 거의 골리앗을 넘어 진격의

거인이 되어 버린다.


당시 중국 후한의 도량형에서의 한 자(척)는 23.7cm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삼국지연의 내에서 여덟 자로 표현되는

장비, 제갈량, 여포, 허저 등의 키는 189cm 가량,

아홉 자로 표현되는 관우, 화웅, 왕쌍, 정욱 등은

213cm 정도가 된다.(하킴 올라주원ㅋㅋ)


당시 중국 성인남성의 평균 키가 140후반~150초반

이였던 점을 보면 엄청난 장신들인데, 이는 그들이

정말 크기도 컸지만 영양결핍 등으로 당시 사람들이

유난히 작았던 탓도 없지 않으며...


정말 키가 크다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사료에 남은

이들은 제갈량, 관우, 정욱 등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마도 신체검사 통해 정확히 측정된 수치라기보다

어쨌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키가 크다보니 어림잡아

표현했던 걸로 추정된다.


요즘은 잘 안쓰는 "8척 장신"이란 말이 있는데,

"키가 크다"

라는 감탄조의 대명사같은 격이라 아마 저들도

그런 표현이 붙었다 보여진다.



'관우가 여든 두근의 청룡도를 휘둘렀다....'에서도

저 당시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인 600g보다 적어서

대략 200g이 좀 안되었기에 실제 청룡언월도는

대충 18kg가량으로 보지만 일단 청룡언월도는 당시

실존한 무기가 아닌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루겠음.



일단, 저런 단위 부분에서의 혼선은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저런 단위 관련 묘사들은 정사보다 주로 연의에서

많이 발견되고, 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은 삼국시대의

거의 1,100여 년 이후 사람이다보니 원이나 명 기준

도량형으로 쓰거나 하기도 했고 또 당시는 지금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으니 고증이 좀 틀린들 딴지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물들 이야기를 하는 틈틈이 이런 사건 or 이해도

높이는데 도움될 듯한 스토리들도 다루겠으니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 드립니다ㅎ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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