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이야기

JTBC 토,일요일 20:45 드라마 대한민국 2013.03.23~2013.09.08 방송종료 정하연 (극본), 노종찬 (연출) 사랑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간 왕의 여인들의 처절한 암투를 다룬 이야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덕화 인조 역 시대가 만든 비운의 군주... 조선 제 16대왕.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의 맏아들. 비는 한준겸의 딸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며, 계비는 조창원의 딸인 장열왕후(莊烈王后)이다. 병자호란은 인조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악귀 그 자체였다. 청국의 태종, 홍타이지란 인물에게 절하고 머리를 땅에 찧었다. 피가 흘렀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던 아들과 며느리가 짐승의 땅으로 끌려갔다. 눈물이 마르지 않고 가슴을 타고 흘렀다. 치욕과 고독 속에 있던 인조 곁에 김자점이 후궁으로 자신의 딸을 궁에 들여놓는다. 얌전...그녀였다. 인조에게 있어 얌전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였고 안식처였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녀의 몸은 안으면 안을수록 성욕의 갈증이 더해갔다. 그렇게 조선의 군주이기 보다 오직 자신의 애락을 위해 살던 인조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현주 소용 조씨 역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악녀... 인조의 후궁. 조선 최고의 팜므파탈. 지독한 악녀. '숙원'에서 시작해 후궁 최고의 자리인 '귀인'의 자리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여인. 성품이 매우 엄큼하고 간사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딸도 단칼에 죽이고, 스스로의 몸도 베어낼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독하고 악랄한 여인. "그녀의 이름은 '얌전'이다" 보고들은 사람마다 입을 모으는 절세미인이었으며, 요염하고, 머리도 영리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김자점이란 인물이 은밀히 접근하고, 그녀는 이씨왕조를 무너뜨리고 김씨의 나라를 세우려는 김자점의 거대한 음모 속 일부가 되어 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궁으로 들어가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현주 소용 조씨 역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악녀... 인조의 후궁. 조선 최고의 팜므파탈. 지독한 악녀. '숙원'에서 시작해 후궁 최고의 자리인 '귀인'의 자리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여인. 성품이 매우 엄큼하고 간사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딸도 단칼에 죽이고, 스스로의 몸도 베어낼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독하고 악랄한 여인. "그녀의 이름은 '얌전'이다" 보고들은 사람마다 입을 모으는 절세미인이었으며, 요염하고, 머리도 영리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김자점이란 인물이 은밀히 접근하고, 그녀는 이씨왕조를 무너뜨리고 김씨의 나라를 세우려는 김자점의 거대한 음모 속 일부가 되어 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궁으로 들어가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송선미 민회빈 강씨 역 조선이 버린 아름다운 왕후... 소현세자의 세자빈. 학식이 풍부하고 밝고 곧은 성품의 소유자로 미모와 지성을 모두 겸비했으며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청나라에 남편, 소현과 함께 볼모로 잡혀갔지만 언제나 조선과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소현을 사랑으로 감싸는 아내로, 때로는 독한 직언도 마다않는 동지로 항상 남편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며 힘이 되어준다. 소현과 함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에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하는 꿈을 공유한다. 9년 동안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소현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그곳은 이미 그녀가 가슴에 간직했던 따듯한 고향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성운 소현세자 역 천하를 머리에 품고, 조선을 가슴에 품은 군주... 인조의 장자, 봉림대군(효종)의 형. 성품이 온화하고 진취적이고 정의롭고 의기로우며 매사에 신중한 성격으로 학문에도 뛰어나다. 그는 조선의 왕세자였다. 병자호란 직후 아우 봉림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9년간 청의 수도 심양의 세자관에서 지냈다. 인질의 신분이었지만 조선과 청의 많은 외교적 현안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면서 청국의 인사들에게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는다. 소현은 아내 강씨와 함께 청나라에서 접하게 된 뛰어난 서양의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을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성모 김자점 역 스스로 범이 되고자 했던 늑대... 조선의 3대 간신 중 한명. 인조반정의 공신. 주도면밀한 성격으로 비열하고 잔악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배신을 쉽게 하는 인물이다. 병자호란 직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인조에게 처참하게 매질을 당한 후 처형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져 유배를 당했다. 이가 갈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때부터였다. 이씨 왕조를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생각이 떠오른 것이... 절세미녀로 소문나 있던 '얌전'을 찾아내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고, 그녀를 조선 최고의 요염한 여인으로 만든 다음에 인조의 후궁으로 밀어 넣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주영 봉림대군 역 살기위해 발톱을 숨긴 범... 조선의 제 17대 임금. 인조의 차남. 소현세자의 동생. 병자호란 이후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낯선 청국 땅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형 소현과 형수 세자빈 강씨를 보필한다. 형은 청을 친구라 했으나 그에게는 적이었다. 그에게 청은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원수였고 언젠가는 반드시 정벌해야할 오랑캐였다. 9년간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전태수 남혁 역 여인의 감춰진 진실과 거짓말을 따라나선 비운의 남자... 소용조씨의 정인. 선조시대에 예조참판을 지냈던 인물의 사대부집 아들. 그러나 역적으로 몰려 집안은 몰락하고 노모와 함께 쓰러져가는 초가에 산다. 남혁은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 같이 살고 자라온 얌전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소실의 딸인 얌전과의 관계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꺾지 못하고 맴돌 뿐이다. 결국 얌전이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남혁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원희 장렬왕후 조씨 역 혹한 속에 향기를 흩날리며 피어나는 꽃... 인조의 계비. 15세의 어린 나이에 인조의 계비로 왕후에 봉해진다. 왕후에 책봉되었지만 궁과 내명부는 이미 소용조씨의 손에 있따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나이에 국모의 자리에 앉았지만, 인내심이 깊었던 그녀는 조소용의 농간에도 꿋꿋이 왕후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며, 자신을 낮추고 숨죽이며 조용히 기회를 기다린다. 그렇게 장렬왕후는 '아이'에서 조소용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맞설 수 있는 '여자'로 변해간다. 그리고 조소용을 향한 그녀의 한 맺힌 복수가 시작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삼총사 tvN 일요일 21:20 드라마 대한민국 2014.08.17~2014.11.02 방송종료 송재정 (극본), 김병수 (연출) '박달향'이 자칭 "삼총사"인 '소현세자'와 그의 호위무사 '허승포', '안민서'를 만나, 조선과 명청 교체기의 혼란했던 중국을 오가며 펼치는 호쾌한 액션 로맨스 활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용화 박달향 역 깡시골 출신, 단순 명쾌한 성격의 열혈 무사. 고집과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강릉박씨 핏줄뿐 아니라 어머니의 밑도 끝도 없는 낙천성까지 덤으로 물려받았다. 좋게 말하자면 추진력, 용맹심, 강한 신념까지, 장수가 지녀야할 모든 덕목을 지닌 타고난 무사이자 나쁘게 말하면 시골뜨기 똥고집이라 정의내릴 수 있겠다. 사랑에 있어서도 역시 저돌적이고 우직하여 어린 시절 한양에서 잠시 다니러온 깜찍한 소녀 윤서를 필생의 운명이라 철썩같이 믿고, 그녀와 혼인하기 위해 수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예를 연마한다. 마침내 5년의 시간이 흘러 무과에 급제하기 위해 한양에 올라온 그! 하지만 그의 운명적 첫사랑 윤서는 어느새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이 나라의 세자빈이 되어있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진욱 소현세자 역 부드러운 미소 속 냉철한 카리스마, 삼총사의 리더. 11살 때 아버지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뒤늦게 궁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을 궁 밖에서 보낸 연유로 보다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했던 그는, 세자가 된 이후에도 허승포 같은 죽마고우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길 좋아하고 승려 출신의 안민서를 호위무사로 뽑는 등 기존의 왕세자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걷는다. 늘 여유 있고 농담을 즐기며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로 아랫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으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속내를 갖고 있다. 정면충돌 보다는 배후에서 덫을 놓고 첩자를 쓰는 타입의 전략가. 첫사랑 미령에 대한 상처가 깊어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과 무거운 창술을 소유한 풍류 무사. 세자를 호위하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로 검술뿐 아니라 창술에 특출나다. 당대 최고의 무반 가문의 후손으로서 소현과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글공부를 하고 검을 연습하며 커온 죽마고우. 누구에게든 일단 거침없이 대하고 친구 먹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한 능글능글한 성격의 소유자. 당당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무예솜씨, 입 한번 열면 밤새도록 혼자 떠들 수 있는 현란한 입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인기까지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그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아내. 자신보다 힘 좋고 등치 좋은 아내가 무서워서 집에도 잘 못들어간다. 아니 안들어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해인 안민서 역 의도치 않게 여심을 녹이는 진지한 꽃무사. 승려 출신의 세자익위사. 정묘호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 소현과 인연이 닿아 무관이 되었으나 언제든 평화로운 시절이 오면 다시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는 것이 꿈이다. 여자보다 매끈한 피부와 아름다운 미모로 당대 난다하는 기생들의 짝사랑을 한몸에 받으나, 아무에게나 함부로 눈길 주지 않는 도도한 남자. 마음이 복잡하면 술 대신 불경을 외고, 국가적 위기가 아닌 이상 살생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승포와 교집합이라곤 전혀 없는데도 둘이 친한 것이 미스테리. 재력도 연줄도 없는 시골출신 달향에게 동질감을 느껴 은근히 알뜰살뜰 잘 챙겨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현진 강빈 역 세자빈이 되어 버린, 달향의 연서 속 첫사랑. 소현의 아내이자 달향의 첫사랑.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시골에서 만난 달향에게 한눈에 반해, 무과에 급제해 결혼하자며 먼저 프로포즈를 할 만큼 당차고 쾌활했던 소녀.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삼엄한 궁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타고난 밝고 당돌한 성격을 죽이고 쥐죽은 듯 얌전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에게 마음 한켠 내주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남편 소현으로 인해 더욱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중, 어느날 갑자기 첫사랑 달향이 무과에 급제해 당당히 자신 앞에 나타나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인영 미령 역 고혹적이나 독을 품은 백합, 세자의 첫사랑. 예조판서 윤의립의 딸. 모든 남자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소현과 첫눈에 벼락처럼 사랑에 빠졌으나 치명적 비밀로 인해 그녀 인생의 비극이 시작됐다. 사랑에 눈이 먼 그녀는 세자빈이 되고싶어 돌이킬 수 없는 짓까지 저지르고, 이로 인해 결국 소현에게 버림받고 후금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어느 날,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소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명수 인조 역 조선의 16대 왕이자 소현세자의 아버지. 조선 16대 왕. 반정으로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의 인생은 고난과 수치의 연속이었다. 반정공신 이괄의 난으로 한양을 떠나 피난해야했고,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에 패해 오랑캐라 부르던 후금에 치욕을 겪었다. 백성들은 수시로 피난길에 오른 비겁한 왕을 싫어했고, 공신들은 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이러한 가운데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의심이 많았던 그의 신경질과 불안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가,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며 무서운 망상에 시달린다. 자신과 달리 신중하고 현명한 아들 소현을 그나마 믿고 의지하나 점차 그 믿음마저 금이 가게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영규 김자점 역 조선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당대의 세도가.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1등 공신이자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를 누린 세도가. 빼어난 화술을 지닌 지략가로서, 왕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도구일 뿐 자신이 왕조를 위해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대대손손 완벽히 왕의 위에 서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 이를 위해 명에 붙었다 청에 붙었다 하며 치밀히 자기 세력을 구축해나간다. 심약한 인조와 달리 소현이 배포가 큰 재왕감이라는 것을 꿰뚫어보고 소현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켠 판쇠 역 사랑스러운 투덜이, 달향의 하인. 본래 승포의 하인이었으나 승포가 달향에게 선물로 보내는 바람에 졸지에 달향을 모시게 되었다. 부잣집 승포네서 나름 떵떵거리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한 시골뜨기네 집 종이 된 자신의 박복한 팔자를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입에 발린 말을 못하는 솔직한 성격으로 달향 앞에서도 늘 투덜투덜 불평을 달고 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달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게 된다. 허나 피만 보면 기절하는 등 워낙에 심약해서 도움은커녕 오히려 짐이 되기 일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성민 용골대 역 조선인들이 두려워하는 용맹한 적장, 청 최고의 무관. 만주어 이름은 타타라 잉굴다이. 용감무쌍한 기마병 출신의 군인인 동시에 조선과의 외교를 전문으로 담당했던 뛰어난 청나라의 협상가. 병자호란 때는 20만 대군의 선두에 서서 전쟁을 주도한, 조선 백성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산천이 벌벌 떤다는 악마보다 무서운 인물이었다. 이런 용골대를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치를 떨며 증오하고 나라의 원수로 여기는 건 당연지사. 그 자신 또한 조선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이나 이해심이 전무했으나, 소현세자와 그 일행들을 만나며 조선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성민 노수 역 돈만을 믿고 좇는 냉혹한 검객. 조선 최고의 실력을 지닌 검객. 선천적으로 피 보는 것을 좋아하며 나라도, 이념도, 사랑도 아무 것도 믿지 않고 오직 돈만을 따른다. 돈만 준다면 이 나라 왕이든 세자든 단번에 죽여버릴 수 있을 만큼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인물. 현재 미령에게 고용되어 있지만 더 많은 돈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그를 따를 것이다. 그의 과거나 배경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다. 김자점, 미령의 편으로 소현 무리와 대척점에 서있으며 특히 달향과는 평생의 숙적이 되어 끝까지 검을 겨누게 된다.

화정 (華政) MBC 월,화요일 22:00 드라마 대한민국 2015.04.13~2015.09.29 방송종료 김이영 (극본), 김상호 (연출) 외 1명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정명공주의 삶을 다룬 드라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차승원 광해군 역 우아한 냉혹 카리스마/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아들로 후궁인 공빈의 소생/ 태생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던 광해는 일찍이 영리하고 조숙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전란이 끝난 후 철저히 배반당하고 인생 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추악한 인간의 본질과 마주한 그는 자신을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단련시켰다. 선조가 죽고 보위에 오르면서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을 냉혹하게 처리했다. 자신을 향해 오라버니라 부르던 꽃 같은 아이, 정명까지도... 이후 조선과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은밀히 화약개발에 매진한다. 수년 후 화기도감에서 정명과 재회하지만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채,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연희 정명공주 역 하늘의 신탁을 받은 적통공주/ 조선왕조 제 14대 국왕인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통왕손이자 유일한 공주/ 왕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정명은 이복오라비인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며 비극적인 삶으로 내몰리게 된다. 하루아침에 천민 신분으로 추락하고 죽을 고비를 겪은 뒤 왜국의 유황광산에서 일하며 악착같은 짐승으로 성장했다. 이후 조선 통신사 일행으로 에도에 온 홍주원의 도움으로 조선에 돌아오게 된다. 이후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광해 정권의 심장부인 화기도감(火器島監) 에 입성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재원 인조 역 질투에 사로잡힌 야심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장남으로 훗날 반정(反正)을 일으켜 제 16대 군왕의 자리에 오르는 인물. 권좌에 대한 야심이 남다른 태생적인 권력지향형 인간. 조선 역사의 숱한 반정 모의에서 택군(擇君)된 자들 중 그처럼 적극적인 이는 없었다. 광해가 보위에 오른 뒤 서인들이 반역을 모의하며 자신이 아닌 동생 능창군을 임금감으로 지목하자 이에 모멸감을 느껴, 결국 반정 모의를 은밀히 흘린다. 결국 능창군이 반정모의로 사사당하고 아우를 대신해 서인세력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선조의 유일한 적통후손인 정명이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백성들과 조정중신들이 자신보다 정명의 뜻을 따르려 하자,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녀를 제거하려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강준 홍주원 역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 냉미남/ 조선의 유력가문 풍산(豊山) 홍씨의 일족으로 당대 최고 명문가 집안의 장자(長子). 대과에 장원 입격한 인재로 명목상 직책은 승문원 교리이나 실질적인 화기도감의 책임자. 성리학적 깊이는 물론이요, 세상에 보지 않은 서책이 있을까 싶을 만큼 박학다식해 ‘설마 이런 것까지?’ 하는 그 순간 당연히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인물. 냉철하고 과단성 있으며 고위 중신들 앞에서도 주저 없이 쓴소리와 아는 척을 서슴지 않아, 일면 오만해보이지만 그 오만함마저 설득되는 천재성을 지닌 인물로 궐 안 궁녀며 다모들 사이에선 냉미남(冷美男)이라 불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주완 강인우 역 사랑에 버림받아 흑화된 킹메이커/ 왕실 재산도 우스울 만큼의 막대한 재산을 가진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정치 따위엔 흥미가 없어 일찌감치 출사는 포기. 매일 느지막이 일어나 출몰하는 곳이라곤 도성의 하릴없는 사내들이 모여드는 활터요, 새로 문을 연 따끈따끈한 기방인데. 한양 여인들이 주원을 일컬어 냉미남이라 한다면 강인우를 일러 상미남(上美男)이라 하니 그 자신 타고난 미남자이면서도 여인이라면 미추(美醜)를 가치지 않고 친절하고 관대한 미덕(?)까지 갖추었는데. 이렇듯 허랑방탕하게 인생을 탕진하는 듯 보이는 인우.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재라 불리던 인우가 이렇게 변하리라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조성하 강주선 역 강인우의 아버지/ 사역원의 부정(副正/종3품)으로 역관들을 관리, 교육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와 부친을 따라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던 탓에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지녔다. 이런 특별한 출신 환경 때문인지 그는 두드러진 당색을 갖고 있지 않아 당파와 상관없이 두루 원만하게 지내며 때론 중재자 역할은 도맡아 하곤 한다. 부호답지 않게 소탈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면모는 많은 이들의 존경과 동경을 받는 그만의 미덕이다. 주원의 아버지 홍영과도 막역지간이며 홍주원 역시 주선에 대한 신뢰가 깊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신은정 인목대비 역 선조의 계비/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아들 영창대군과 부친 김제남을 잃고 폐서인이 되는 수모를 겪게 되는 인물. 명문가의 여식으로 세상의 티 하나 묻히지 않고 그저 맑고 곱게 자랐으며 19세에 32살 차이가 나는 선조의 계비로 간택되었다. 정치적 욕망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 광해군의 냉정하지만 반듯한 성정을 믿고 의지했다. 어쩌면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내 유약한 믿음의 대가로 광해의 손에 정명공주마저 잃고 서궁에 유폐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을 오직 분노와 복수심만으로 채워나간다. 정명공주가 태중에 있을 때 남사고를 통해 예언을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전진서 영창대군 역 정명의 아우/ 선조의 유일한 적통왕자로 이로 인해 광해에게 영창대군은 제거해야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창대군은 궁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기운들을 감지할 만한 나이도 아니었고 일찍 세상을 터득할 만큼 영악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드넓은 궁궐에서 누이 정명과 재미난 놀이를 하며 노는 게 즐거울 뿐이었는데. 씩씩한 누이와는 달리 사내아이답지 않게 여리고 겁 많았던 사랑스러운 소년은 끝내 9살 어린 나이에 역모에 휘말려 죽임을 당하고 이는 정명공주의 가슴 속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게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최종환 임해군 역 선조의 첫째 서자/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아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장승조 정원군 역 능양군 인조의 아버지/광해의 이복동생/ 광해의 손에 막내아들 능창군을 잃고 이로 인한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규선 정혜옹주 역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 온 왕실의 사랑을 받는 정명 공주를 어렸을 때부터 유독 질투했다. 나중에는 김개시와 소용조씨한테 번갈아 붙으면서 이득을 취하다가, 정명이 복권된 뒤에는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려 무리수를 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여진 김개시 역 선조를 지근에서 모신 상궁/ 자신의 위치를 이용, 선조를 독살하여 광해의 집권에 공을 세운 뒤 이후 광해 정권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여인이다. 뛰어난 정치지략가로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막후공작과 사람의 심리를 이용,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광해가 측근인 이이첨보다 더 신뢰하는 정치적 동반자로 김개시는 그런 광해를 임금에 앉힌 일등공신이자 훗날 광해가 축출되는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이첨과 함께 온갖 정치공작과 악행을 자행, 드라마 중후반부까지 정명공주에게 가장 강력한 적대세력 중 하나가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웅인 이이첨 역 광해군을 옹립한 대북파의 수장/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를 폐위하는데 앞장 선 인물로 광해 정권의 최대실력자이자 정명의 가장 큰 적이다. 권력욕이 크고 저열하며 권모술수에 능해 광해 집권기 시절 숱한 옥사(獄事)는 대부분 그의 손에 의해 조작되었는데. 능글능글하고 노회한 이 실력자는 노골적인 탐욕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낸다. 그는 고상함이란 인생의 절망을 맛보지 못한, 날 때부터 좋은 제비를 뽑은 자들의 오만이라 여긴다. 하여 이이첨은 천박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천박하게라도 비열하게라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가지려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엄효섭 홍영 역 홍주원의 아버지/ 완고하며 명예를 중시하는 선비/ 부친이 대사헌까지 지낸 명가의 자손이나 광해군의 폐비론에 맞서 중앙정치에 진출하지 않는다. 이런 그에게 아들 주원의 행보는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가문을 등지고 광해를 선택한 아들을 내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강문영 윤씨부인 역 강인우의 양모/ 강주선의 부인/ 가문의 품위에 걸맞게 정숙하고 우아하며 아랫것들에게조차 험한 얼굴 한 번 보인 적 없을 정도로 자애로와 반가의 여인들 사이에 대모로 통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규방의 여론을 주도하니 그녀 덕분에 강주선의 입김은 대신들의 베갯머리 뿐 아니라 궁궐의 왕실 여인들에게도 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화폭에 먹물 하나 떨어진 격이랄까.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로 인해 계집종의 몸 속에 남편의 씨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으나 여러 달 동안의 위장을 거쳐, 인우를 자신이 낳은 아이로 만들었다. 품위로 무장했으나 실상은 위선적이며 김개시, 소용조씨와 어울리면서도 그녀들을 혐오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창완 이원익 역 선조, 광해, 인조 정권에 이르는 동안 영의정을 지낸 인물/ 당색을 넘어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의 명신. 키가 작아 늘 사람을 올려다보며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 미소로 이야기 나누곤 하지만 형형한 눈빛만은 그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다. 또한 병법과 진법에 능한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칼을 들어야할 때는 거침없이 이를 뽑아 드니, 어제의 칼을 든 노장군이 다음날엔 돗자리를 짜는 촌부가 되어 민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시대가 자신에게 준 소명에 단 한 순간도 나태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원익은 말한다. “삶의 절반은 어느 나라에 태어났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은 뻗어나갈 수 있지만 몸과 삶은 국가를 떠나지 못하지 않는가. 하여 국가를 안정시키고 부강하게 하는 것. 그것이 만백성을 위한 길이다.” 이런 그를 이덕형과 이항복도 믿고 따랐고 이들이 죽은 후, 스승을 잃은 홍주원의 멘토가 되면서 거친 욕망으로 점철된 인물들 사이에서 그 중심을 잡아주는 피난처 같은 역할을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남명렬 정인홍 역 광해를 옹립하는데 공을 세운 일등공신이자 대북파의 얼굴마담/ 이원익이 유연하게 소신을 지켜나갔던 인물이라면 정인홍은 결코 휘지 않는 대꼬챙이 같은 소신파였다. 직선적이고 엄격한 원칙주의자로 오직 광해군의 왕권안정이라는 최상의 목표를 위해 강경하고 비타협적인 노선을 견지해 여론의 불만을 초래하며 심지어 자파 문인들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제 신념의 실현을 위해 중앙정치에 나서지 않지만 자신이 곧 대북파의 수장이라 자부하는 정인홍. 허나 실상은 이이첨의 간교한 수에 이용당하는 인물로 훗날 치매기를 보이기도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성민 이덕형 역 한음 이덕형.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제학에 이어 영의정까지 지낸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자고 일어나면 직급이 달라져있더라’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타고난 천재로 임진왜란 당시 명의 기밀문서를 한 번 보고 모두 외워 선조에게 보고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원칙과 소신, 엄격한 도덕적 신념을 깐깐하게 지켜나가는 그는 신료들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못했으며 인간관계를 위한 재치나 언변도 부족해 자기세력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다. 그의 유일한 벗이라면 동문수학(同門受學) 한 오성 이항복 뿐. 홍주원의 스승으로 어린 시절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며 선조가 죽은 뒤 그의 죽음에 의혹을 품고 이를 수사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승욱 이항복 역 이덕형의 벗/ 그보다는 조금 늦게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으나 훈련도감 도제조, 체찰사의 일을 겸하는 등 군사 일에 정통한 인물이다. 해학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농담을 잘했다. 일례로 임진왜란 당시 누군가 "동인과 서인의 싸움이 전란을 불렀으니 가슴 아픈 일이오"라고 탄식하자 이항복이 “그럼 동인 서인이 싸움을 잘 하니 그들보고 왜적을 막으라고 하자.” 라고 응수했을 정도. 이덕형과는 달리 술과 사람을 찾아 밖으로 나도는 호방한 성격으로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양의 제일가는 주당이라 불렀는데 술만 사준다 하면 당색을 가리지 않고 반가워하는 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항복을 가벼이 여기지는 못한다. 배 나온 중년의 한량처럼 보여도 자신의 원칙을 밀어붙일 때는 능란하게 상대를 갖고 놀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승목 유희분 역 광해의 처남/ 광해 집권기 내내 권세의 중심에 서며 그 성격은 거칠고 오만방자하며 지극히 다혈질적이다. 이이첨과 내내 권력을 다투지만 실상 이이첨은 그를 두려워하지도 개의치도 않는다. 이이첨에게 유희분은 ‘남의 머리를 빌릴 머리도 없는 아둔한 인간’으로 분류되기 때문인데. 그러나 광해에 대한 충성심만은 우직할 만큼 두터워 그를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원상 장봉수 역 화기도감의 염초장인/ 화약제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염초의 배합과정을 총괄하는 인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의 손에 식솔들을 모두 잃고 그 한을 품은 채 화기도감에 입성한다. 이와 같은 사연 탓에 후에 왜에서 건너온 정명을 꺼려하지만 결국 그녀의 진심에 마음을 움직이며 정명과 함께 마지막까지 화기도감을 지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광규 이영부 역 반가의 자손이나 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다가 장렬히 전사한 조부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에 없는 유황광산을 찾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인물/ 가슴에 품은 거창한 뜻에 비해 다소 엉뚱하고 정신없으며 산만하지만 사람 하나는 진국이다. 정명을 만나 아들과 함께 화기도감으로 입성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조재룡 방근 역 화기도감의 감조관/ 화기도감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감시하는 관리청의 하급관리로 제조장의 공장(工匠)과 조역관들을 관리한다. 잔소리가 많고 걱정을 달고 사는 인물로 언제 폭발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화기도감의 생활에 두려움을 느낀다. 가볍고 자신의 이해에 집착하는 인물이지만 정보를 내주는 대신 건네는 돈을 거절할 정도의 의기는 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승형 이서 역 문신이나 조선의 미래를 책임질 화약개발에 관심을 두고 이에 매진한다. 광해의 폭정에 회의를 느껴 인조의 편에 서지만 화약개발에 있어서만큼은 그 뜻을 따라 훗날 정명과 함께 화약제조비법을 담은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諺解)을 편찬해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황영희 옥주 역 화기도감 소속 장인과 조역군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주방의 책임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공명 자경 역 정명이 데지마에서 만난 조선인 노예/ 오로지 악만 남은 시니컬한 소년 시절, 정명을 만나 후에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고 가장 가까운 벗이 된다. 말없이 냉정한 성격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지만 오직 정명에게만은 마음을 다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백수련 수련개 역 조선의 국무당/ 왕궁 사람들을 단골 고객으로 삼고 있다. 우매한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찬희 소년 자경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태환 어린 광해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허정은 어린 정명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찬비 소녀 정명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최권수 어린 주원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윤찬영 소년 주원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태우 어린 인우 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도규 소년 인우 역

인조 <자>화백(和伯) 이성무 시대 조선 출생일 :1595년(선조 28) 사망일: 1649년(인조 27) 본명 :이종(李倧) 본관 :전주(全州) 서인의 무력 정변을 지원한 능양군 인조는 1595년(선조 28)에 선조의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원종으로 추존)과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연주군부인 구씨(인헌왕후로 추존)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종(倧), 자는 화백(和伯)이며, 1607년(선조 40)에 능양군에 봉해졌다. 1623년 3월 13일, 김류, 신경진(申景禛), 구굉(具宏), 이귀, 최명길(崔鳴吉) 등이 주축이 된 서인 세력이 무력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았다. 광해군의 즉위와 함께 대북 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던 서인이 다시 권력을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반정이 성공하자 능양군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반정 당일 친위부대를 이끌 만큼 거사에 깊이 개입했다. 사실 능양군은 광해군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 막냇동생 능창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 정원군은 그 일이 있은 후 화병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척 관계에 있는 신경진, 구굉 등과 함께 오랫동안 거사를 준비했다. 거사 당일의 행적을 보자. 상(인조)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에 이르러서 이서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장단의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 이귀, 심기원, 최명길, 김자점(金自點), 송영망(宋英望), 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 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으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해 곧바로 창덕궁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해 군사를 단속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 문을 통해 달아났다. - 《인조실록》 권 1, 인조 1년 3월 13일 인조로 즉위한 능양군과 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은 광해군 일가를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 유희분, 이이첨, 정인홍 등의 대북 세력을 처단한 뒤 조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이처럼 인조반정의 본질은 대북의 독주에 대한 서인들의 반발, 즉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 그러나 반정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대의명분이 필요했다. 반정 세력이 내세운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살제폐모의 패륜적 행위였고, 또 하나는 명에 대한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캐와 교분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반정 세력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단지 군주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인조 조 초기에는 각종 모역 사건과 고변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의 기반이 확고하지 못한 탓이었다. 인조의 정비인 인렬왕후(仁烈王后)는 한준겸(韓浚謙)의 딸로 1610년(광해군 2)에 당시 능양군이던 인조와 혼인했다. 인조의 자식은 6남 1녀로 그중에서 인렬왕후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을 비롯해 4명의 아들을 낳았다. 한편 1635년(인조 13)에 인렬왕후가 죽고 3년 후인 1638년(인조 16) 인조는 조창원(趙昌遠)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를 계비로 맞이했다. 장렬왕후에게는 소생이 없다. 반정공신들의 갈등이 빚어낸 이괄의 난 서인 세력은 종묘사직을 바로잡겠다며 반정의 명분을 세웠으나 그것이 무색하게 다시 권력에 안주하고 전횡의 조짐을 보였다. 반정 세력과 인조에 대한 민심이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론이 나빠지자 인조는 남인의 영수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앉히는 등 인심을 무마해 보려고 애썼다. 또한 북인 정권이 대북의 독주로 몰락한 것을 귀감으로 삼아 남인, 소북 등의 온건파들을 모아 관제야당인 남인을 조성했다. 그러던 중 이괄(李适)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괄은 반정 당일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김류를 대신해 반정군 대장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뒤늦게 김류가 나타나는 바람에 대장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이괄과 김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다 논공행상에서도 이괄은 반정에 처음부터 참가하지 않았다고 하여 2등공신으로 책봉되고, 한성판윤에 임명되었다가 평안병사 겸 부원수가 되어 영변으로 가게 되었다. 이괄은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괄을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아들과 한명련(韓明璉), 기자헌(奇自獻) 등이 함께 역모를 꾸몄다는 고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정국이 어수선해 이런저런 고변이 난무하던 차였다. 인조는 일단 자초지종을 듣겠다며 이괄의 아들과 기자헌 등을 서울로 압송할 것을 명했다. 이에 화가 난 이괄은 부하 장수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의금부도사가 다다르자 이괄은 고의로 늦게 문을 열어주고, 한편 그의 부하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 최덕문(崔德雯), 이정배(李廷培) 등을 데리고 꾀하기를 "나에게는 오직 아들 한 명밖에 없는데 그애가 잡혀가서 장차 죽음을 당할 것이니 어찌 아비가 온전할 수가 있겠는가. 일이 이미 급해졌으니 남아가 죽지 않는다면 몰라도 잡혀 죽으나 반역하다 죽으나 죽기는 일반이니, 어찌 능히 머리를 숙이고 죽음을 받겠는가." 하니, 익헌 등이 이구동성으로 "거사하려면 내려온 사자를 죽여서 군중을 위협시켜 다른 의논이 없도록 하시오." 했다. 이에 이괄이 일을 의논하려고 여러 장수를 부르니 중군(中軍) 이윤서(李胤緖), 별장 유순무(柳舜懋), 이탁, 우후(虞侯) 이신(李愼)이 모두 왔으므로 이괄이 그 계책을 말하고 칼자루를 어루만지면서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감히 어기는 자 있으면 죽이리라." 하니 좌우가 두려워하며 모두 "예, 예." 했다. - 《연려실기술》 권 24, 인조 조 고사본말 1624년(인조 2) 1월 마침내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 함께 역모를 꾸몄다고 거론되던 한명련도 군사를 이끌고 합류했다. 이괄의 반란군 규모는 1만 2천 명에 이르렀고, 이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 항복했던 왜인 130여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1월 24일 이괄은 반란군을 이끌고 영변을 출발했다. 반란군의 남하 소식이 전해지자 평양 도원수 장만을 비롯한 관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관군은 잇달아 패했고 이괄의 군대는 임진강까지 단숨에 치고 내려왔다. 급기야 인조는 서울을 떠나 공주로 피란을 가게 되었다. 반란군 때문에 왕이 도성을 비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때 인조를 따르는 백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괄의 입성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서울에 입성한 이괄은 선조의 아들인 흥안군(興安君)을 새 왕으로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곧바로 도원수 장만(張晩)이 각 지방의 관군과 연합해 서울을 포위했고, 안산 전투에서 이괄의 부대가 패함으로써 다시 전세가 역전되었다. 이괄은 이천 묵방리까지 달아났으나 그곳에서 기익헌, 이수백 등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괄의 난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괄의 난은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 정권의 불안정성을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중앙 병력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이것은 후금의 조선 침략의 전조나 다름없었다. 서인의 분열과 원종 추숭 문제 관제야당인 남인이 서인 공신 세력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서인 내부에서 공신 세력을 견제하는 세력이 생겨났다. 이른바 '청서(淸西)'라고 하는 부류로, 척화파의 거두인 김상헌(金尙憲)을 비롯해 신흠(申欽), 오윤겸(吳允謙) 등이 주축이었다. 이로써 서인은 공서(功西)와 청서로 갈렸다. 청서는 반정 직후부터 북인과 남인의 배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강경파였으며, 김류 등 공서파에 동조하는 인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공서와 청서는 병자호란 와중에 주화(主和)와 척화(斥和)로 나뉘어 더욱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편 조정에서는 원종 추숭 문제로 공론이 분분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종법상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생부인 정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공신들은 당연히 인조의 뜻을 지지했지만 나머지 조신들은 인조가 선조의 대통을 이었으니 선조를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인조가 반정 직후에 그 사실을 생부인 정원군의 사당에 고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1626년(인조 4) 1월 14일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啓運宮) 구씨가 죽었을 때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인조가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하는 것처럼 지팡이를 짚고 3년 동안 상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1년 동안만 상복을 입을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나뉜 것이다. 인조는 당연히 자신이 상주가 되어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이의 제기로 결국 인조의 동생인 능원군(綾原君)이 상주가 되고 인조의 상복은 지팡이를 짚는 1년복의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이후 이귀, 최명길을 중심으로 정원군의 추숭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많은 대신들과 유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1632년(인조 10)에 추숭을 강행했다. 그리고 명나라의 허락을 받아 정원군을 원종으로, 계운궁 구씨는 인헌왕후로 추숭했다. 국왕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인조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병자호란 인조와 서인 정권이 들어선 후 조선의 외교 정책은 광해군이 고수한 중립외교 정책을 버리고 친명배금 정책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후금을 자극했다. 결국 1627년(인조 5)에 후금의 태종은 3만 대군을 보내 조선을 침략했다. 이것이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인조는 장만을 도체찰사로 임명해 대항하도록 했다. 그러나 후금군은 의주성을 함락한 데 이어 평산까지 진격해 왔다. 이에 놀란 인조는 강화도로, 세자는 전주로 피란을 갔다. 평산까지 진출한 후금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조선에 화의를 요구해 왔다. 결국 정묘호란은 발발한 지 2개월 만에 두 나라가 '형제의 맹약'을 맺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후금은 1636년(인조 14)에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군주의 호칭을 황제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조선에 '형제'의 관계가 아닌 '군신'의 관계를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서 조선의 조정은 청과의 관계를 화평하게 이어가자는 주화파(主和派)와 청과의 화의를 반대하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척화파(斥和派)로 갈렸다. 분위기는 척화론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제대로 척화를 주장하려면 전쟁에 대한 대비 역시 철저히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에서 싸워 이길 힘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반청의 목소리만 높였다. 그런 가운데 1636년(인조 14) 12월, 청나라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 청군은 압록강을 건넌 지 6일 만에 서울 근교까지 치고 내려왔다. 조선 조정이 미처 대비할 시간도 없었다. 도성이 함락될 위험이 있으면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청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점령해 버린 뒤였다. 피란길에 나섰다가 다시 도성으로 돌아온 인조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때 반정공신이자 대표적인 주화파인 최명길이 나섰다. 최명길은 청군의 진영을 찾아가 회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최명길이 시간을 끄는 동안 인조는 도성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45일간에 걸친 항전이 시작되었다. 12월 15일,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후 청군은 즉시 삼전도(三田渡,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 일대에 있던 나루)에 진을 쳤다. 그리고 화의를 제안하면서 청의 주력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인조도 각지의 근왕병들이 도착할 때까지 산성에서 버티고 있었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식량도 점점 떨어져 갔다. 남한산성 항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군사 1만에, 한 달간 버틸 양식밖에 없었다. 그 사이 각지의 근왕병들도 모두 궤멸하고 반격의 기회마저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강화도마저 함락되어 미리 피란 가 있던 왕비와 왕자들, 관료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청군의 포로가 되어 삼전도로 압송되어 왔다. 그러자 군사들이 척화파를 청군으로 잡아 보내라고 시위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인조는 청의 요구대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척화파들은 항복만은 안 된다며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더 이상 산성 밖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적군의 손아귀에 방치할 수도 없었다. 1637년(인조 15) 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로 향했다. 그곳에는 청 태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조는 청 태종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의식을 치렀다. 치욕의 순간이었다. 항복과 더불어 조선은 청나라에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치고 수많은 인질을 보내야 했다. 인질 중에는 인조의 두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로소 청나라 군대는 물러갔다. 그러나 조선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다. 1639년(인조 17)에는 청의 요구로 삼전도에 청 태종 공덕비를 세움으로써 치욕의 역사에 정점을 찍었다. 삼전도 비문은 우여곡절 끝에 이경석(李景奭)이 찬술했다. 소현세자와의 갈등, 의심이 부른 참화 1645년(인조 23),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가 8년 만에 귀국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남으로 인조반정과 함께 세자로 책봉되었고, 1627년(인조 5)에는 강석기(姜碩期)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소현세자는 정축맹약(丁丑盟約)에 따라 심양(瀋陽)에 인질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조선과 청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청의 고관들에게 줄 뇌물과 조선인 노예를 구출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리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그러나 본국에서는 이런 소현세자의 활동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굴욕적인 삼전도 항복 이후 반청의식(反淸意識)이 더욱 고조된 상황에서 인조는 청나라가 혹여 자신을 내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대신 세울 것을 걱정했다. 그러던 중 소현세자가 귀국하자 인조는 더욱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인조의 배척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병을 얻었다. 학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침을 맞았으나 소현세자는 사흘 만에 갑자기 죽어 버렸다. 이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다음과 같은 기록은 소현세자가 독살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 《인조실록》 권 46, 인조 23년 6월 27일 이러한 사실은 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던 종실 이세완(李世完)에 의해 전해졌다. 그러나 인조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 조사조차 하지 않았거니와 침을 잘못 놓아 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은 의원 이형익(李衡益)에 대해서도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세자의 장례라고 하기에는 박대에 가까울 정도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 종법대로 하자면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 석철(石鐵)을 세손으로 책봉하고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다. 그러나 인조는 원손이 어리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소현세자의 두 아우인 봉림대군과 인평대군 중에서 세자를 간택하겠다고 했다. 결국 인조의 뜻에 따라 청나라에 있던 봉림대군이 귀국해 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姜嬪)은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던 중 사약을 받아 죽었고,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소현세자의 두 아들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들의 불행은 결국 인조의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전도의 치욕까지 참으며 지킨 권력이었기에 더욱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명분도, 국익도 세우지 못했던 인조. 그는 1649년(인조 27) 5월에 54세의 나이로 죽었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장릉(長陵)이다.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장릉 출처 : doopedia.co.kr 출생-사망 1595 ~ 1649재위기간 1623년 ~ 1649년가족관계 왕비 인열왕후(仁烈王后), 장렬왕후(莊烈王后), 아버지 원종(元宗),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元)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귀(李貴)·이괄(李适) 등 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랐다.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자 일시 공주(公州)로 피난하였다가 도원수 장만(張晩)이 이를 격파한 뒤 환도하였다.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썼으므로,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자 형제의 의(義)를 맺었는데, 이것을 정묘호란이라 한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이 은연중 친명적(親明的) 태도를 취하게 되자, 1636년 국호(國號)를 청(淸)으로 고친 태종이 이를 이유로 1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항전하다가 패하여 청군(淸軍)에 항복, 군신(君臣)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하였는데, 이것을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의 내란·외침으로 국가의 기강과 경제상태가 악화되었는데도 집권당인 서인은 공서(功西)·청서(淸西)로 분열되어 싸웠고, 김자점이 척신으로 집권하여 횡포를 일삼았다. 이이(李珥)·이원익(李元翼)이 주장한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여진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대인 중강(中江)·회령(會寧)·경흥(慶興) 등지에 개시(開市)하여 그들과의 민간무역을 공인하였다. 1628년 벨테브레이(Weltevree:朴淵) 등의 표착(漂着)으로 서양 사정을 알게 되었고, 또 정두원(鄭斗源)과 소현세자를 통하여 서양의 문물에 접하게 되었다. 1634년 양전(量田:토지조사)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시정하였으며, 연등9분(年等九分)의 법을 정비하여 세제(稅制)를 합리화하였다. 1645년 볼모생활에서 들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조정은 세자 책봉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를 사사(賜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국 속에서도 군제(軍制)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 등을 신설하였으며, 북변(北邊)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신설하였다. 한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동사보편(東史補編)》 《서연비람(書筵備覽)》 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김육(金堉)·김집(金集)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능은 교하(交河)의 장릉(長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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