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태국 국왕은 왜 ‘데미갓’으로 불리며 존경 받았나?

fact

▲태국은 탁월한 외교력으로 유명한 나라다. ▲그러나 푸미폰 태국 국왕의 정치력은 그보다 더 탁월했다. ▲푸미폰 국왕은 무려 70년간 군주로 재임하면서 총 19번의 쿠데타 기도를 무산시켰다. ▲그는 때로는 시위군중의 편에, 때로는 쿠데타군의 편에 서서 상황을 중재하며 유혈충돌을 막았다. ▲그는 70년 재임기간 동안 한 번도 부패 스캔들이나 여성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다. ▲“태국인들은 그런 국왕을 ‘데미갓(demi-god, 반신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CNN이 보도했다. ▲지혜로왔던 국왕이 서거하고, 그의 아들이 11월 29일 임금 자리를 물려받았다. ▲왕자는 여색과 도박을 즐기는 망나니로 알려졌다. ▲아버지만한 아들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view

카오솟이

세계 최장 기간 재위한 군주, 태국 푸미폰 국왕

태국은 국왕이 다스리는 국가다. 정식 명칭도 ‘타이 왕국(Kingdom of Thailand)’이다. 1932년 12월에 헌법을 공포하고 입헌군주제 국가로 정식 출발했다. 군주인 푸미폰 국왕은 1946년부터 70년 동안 태국을 다스렸다. 태국은 물론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였다.

푸미폰 국왕은 재임기간 동안 부정부패 스캔들에 단 한 번도 휘말리지 않았다. 부패가 만연한 태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사생활도 깨끗하다. 국왕은 1950년 시리낏 왕비와 결혼한 뒤로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왕위를 이어받게 될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3녀 1남 중 둘째이자, 외아들이다.

①70년 동안 부패 휘말리지 않은 ‘순정파’

푸미폰 국왕은 1961년부터 ‘국왕개발계획(Royal Development Projects)’을 실행했다. ‘태국판 새마을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태국 전역의 마을 4000곳에서 국가 인프라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보고서를

②‘태국판 새마을운동’의 지도자

스트레이트 타임스

국왕이 쿠데타에 처음 개입한 것은 1973년 10월이다. 당시 타넘 낏띠카쩐(Thanom Kittikachorn) 총리는 군부를 이끌고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진압했다. 군부는 40만 명의 학생들에게 총을 발사하고,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66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충돌이 심해지자 푸미폰 국왕은 라디오와 TV 등을 통해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며 “군부는 당장 폭력을 멈추고 타넘 총리는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민주화 시위에 동참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 경찰 본부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인콰이어는

③군부 쿠데타의 중재자

1981년 4월에는 군부의 일부 급진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프렘 틴수라논다(Prem Tinnasulanond) 당시 총리를 쫓아내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푸미폰 국왕은 이 쿠데타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프렘 총리는 국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부군을 출동시켰다. 쿠데타는 유혈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잠잠했던 군부의 급진세력은 1985년 9월에 또 다시 반란을 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왕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 지 10시간 만에 정부군에게 제압당했다.

1991년 2월, 태국 민주주의의 기틀이 잡혔다고 평가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찐다 끄라쁘라윤(Suchinda Kraprayoon) 육군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총리 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다. 이후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과 군부는 유혈충돌을 빚으며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1992년 5월에는 잠롱 스리무앙(Chamlong Srimuang) 당시 방콕시장이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이 목숨 흔쾌히 바치겠다”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러자 푸미폰 국왕이 나섰다. 그는 수찐다 전 총리와 잠롱 전 시장을 TV 방송에 불러 무릎 꿇게 했다. 그리고 심하게 호통을 쳤다. 이 방송이 태국 전역에 중계됐다. 여론은 악화됐고 수찐다 총리는 해외로 망명했다.

논문을

④부패 축출 위해 쿠데타 방조한 적도 있어

국왕이 늘 군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부패 세력을 쫓기 위해 군부의 편을 들어줄 때도 있었다.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에 대항해 일어난 군부 쿠데타가 그 중 하나다.

2001년 집권한 탁신 총리는 각종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임기 말에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2006년 4월에 “지지율이 50%가 넘으니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 없다”며 버텼다. 당시 치러진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타이 락 타이당(TRT)’의 득표수가 과반이 넘었다는 사실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자 푸미폰 국왕은 “당시 선거는 타이 락 타이당이 여러 지역구에서 단독 후보를 낸 비민주적 선거”라고 질책했다. 국왕은 탁신 총리를 불러 면담을 했고, 총리는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탁신 총리는 2개월 뒤인 2006년 6월에 어물쩍 복귀했다. 태국 군부는 결국 2006년 9월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푸미폰 국왕이 이를 눈감아줬다. 그리고 탁신 총리는 곧바로 축출당했다.

탁신의 망령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2011년에는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이 총리에 당선됐다. 그녀 역시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2년 7.2%에서 2013년 2.7%, 2014년 0.8%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시민들 10만 여명이 거리로 나왔다.

군부도 2014년 5월에 반란을 일으켰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째 군사 쿠데타였다. 푸미폰 국왕은 이번 쿠데타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잉락 전 총리의 사퇴로 이어졌다. 그녀는 현재 비리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많은 태국인들이 국왕을 ‘데미갓’이라고 생각”

CNN

태국의 모든 화폐에는 푸미폰 국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10월 13일 국왕이 서거했을 때 정부는 공식 애도기간을 1년으로 잡았다.

이제 태국의 국왕 자리는 푸미폰의 유일한 아들인 와치랄롱꼰이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본 아버지와 달리, 아들 와치랄롱꼰은 3번의 이혼 경험이 있고, 사생활도 문란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와치랄롱꼰의 셋째 부인이 팬티만 입은 채로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빌라하리 카우시칸(Bilahari Kausikan) 싱가포르 외교부 대사는 2010년 “탁신 전 총리가 와치랄롱꼰이 도박하는 데 돈을 보태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평판 나쁜 아들… “정치 분열의 씨앗 될 수도”

인디펜던트는타임지는

기자들과 후원자들이 만든 비영리 언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기 위해 이름을 ‘팩트올’로 정했습니다. 팩트체크와 탐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