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생 나합 (羅閤) 이야기》 조선후기나합(羅閤) 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나주 출신 기생으 로 조선 후기 안동김문 세가의 우두머리 김좌근(金左根 1797~1869)의 첩이었다. 지략과 술수가 많은 데다 인사성도 빨라 그 독(毒) 에 빠져든 김좌근은 이 여인과 함께 국정을 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의 손에서 수령(首領 : 한 당파나 무리의 우두 머리)과 방백(方伯: 관찰 사, 요즘의 도지사)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황현의 <매천야록> ) 암군으로 꼽히는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6조 판서를 섭렵하고 영의정을 세 차례나 지낸 김좌근을 손아귀에 넣을 만큼 절대권력을 휘두른 요망한 여인은 남편 몰래 빈객들과 간통을 하기도 했다. 파락호 시절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조차 김좌근의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옆에 있는 첩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아첨배들은 이 여인을 삼정승에게나 붙이는 존칭인 합하(閤下 : 나주 출신 합하를 줄여 나합으로 부름)라고 불렀고, 뒷전에선 ‘나주 조개’라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다. 나합은 당대 최고 권력자의 위세를 업고 매관매직 등 국정농단으로 엄청난 돈을 긁어모은 탓에 평판이 나빴지만 나주 사람들에겐 구세주였다. 전국이 혹독한 세금과 기근으로 허덕일 때 나합이 김좌근을 구슬려 나주 지방에 구휼미(救恤米)를 풀었기 때문이다. 나주 사람들은 관아 터에 김좌근을 칭송하는 공덕비(영의정 김공 좌근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과거 공덕비 건립을 금하도록 왕에게 건의까지 했던 자 자신의 공덕비다. 왕이 어리거나 무능하면 권력과 돈을 거머쥐려고 설치는 자들이 측근에 들끓게 마련이다. 삼정이 문란했던 그 시절 탐관오리들은 군역을 내지 못해 도망친 사람의 군포를 이웃에게 부과하는 인족침징(隣族侵徵), 젖먹이 어린애까지 군적에 올려 세금을 내게 하는 황구첨정(黃口簽丁), 죽은 사람을 군적에 올려놓고 세금을 받아내는 백골징포(白骨徵布) 등으로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무지렁이 백성들은 고향을 떠나 유랑하거나 도둑이 되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기녀의 신분에서 합하로 소쿠리비행기를 타던 나합도 1863년 고종의 등극과 이하응의 대원군 집정으로 몰락한 김좌근과 함께 날개를 접어야 했다. 고종의 섭정이 된 신정왕후 조대비는 나합에게 닷새 안에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그 틈에 대원군은 조대비의 명령을 철회하도록 해 주겠다며 고종의 결혼 비용으로 10만 냥, 경복궁 중건비로 10만 냥씩의 거액을 뜯어 갔다고 한다. 참 대단한 술수와 배짱이다. 몰락한 왕족으로 ‘상갓집 개’ 취급을 당하며 건달 생활을 하던 이하응이 어느 날 술집에서 한 무관에게 뺨을 얻어맞은 일이 있었다. 기생 춘홍(春紅)의 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옆자리의 금군별장(禁軍別將) 이장렴(李章濂)과 시비가 붙었다. 이하응이 “그래도 내가 왕족인데 일개 무관이 무례하다”며 화를 냈다. 이장렴은 그의 뺨을 후려치면서 “왕실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외상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야 되겠소?”라고 호통을 쳤다. 뺨을 맞고도 할 말이 없어진 이하응은 하릴없이 술집을 떠났다. 뒷날 섭정이 된 대원군이 이장렴을 운현궁으로 불렀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유언장까지 써 놓고 간 그에게 대원군이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장렴은 ”대감께서 그때와 같은 행동을 하신다면 이 장렴의 손을 장렴의 마음이 누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원군은 ”오늘 좋은 인재를 한 사람 얻었다“고 무릎을 치면서 장렴에게 극진히 술대접을 했다. 이장렴이 돌아갈 때 대원군은 하인들에게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으로 모셔라”고 일렀다. 한양을 지키는 금위영의 수장 자리를 즉석에서 구두 임명한 것이다. 금위대장은 무반으로는 가장 높은 지위인 종2품으로 오늘날 수도방위사령관 쯤 된다. 잘못을 빌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대신 의기와 지조를 지킨 덕분에 장렴은 목숨도 건지고 무장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한 세기 반 전에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왕은 우매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고, 국권은 외척 세도가와 그들의 기생첩이 주무르고, 관료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 핏발을 세우고, 법은 힘 있는 자들이 만들고, 사리를 탐하는 자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위해 아부와 상납을 일삼고, 이해관계가 돈독한 자에게만 특혜를 주거나 구휼하고, 힘없는 우맹(愚氓)은 도탄에 빠졌다. 그로부터 3반 세기도 안 돼 나라는 절멸(絶滅)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패닉 상태가 된 요즘 상황은 그때와 흡사하다.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민망하고 참담하여 넋을 잃고 할 말을 잊을 정도이다. 나라가 난리 굿판이 되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최합(崔閤)’의 비리를 고발한 측근이 있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고, 방탕한 왕족의 뺨을 갈긴 의기 있는 장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로지 정권쟁탈을 위한 일부 모리배들의 무한투쟁만이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고사가 도움이 될까?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곽(郭)나라를 정벌한 뒤 그 나라 원로들에게 “곽은 왜 망했소?”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 임금은 선을 선이라 하고, 악을 악이라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현군인데 어떻게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렀소?” 하고 환공이 되묻자 원로들은 “곽 왕은 선을 선이라 했지만 활용하지 못했고, 악을 악이라 했으나 제거하지 못해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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