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장강명 ㅡ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ㅡ 5년 만에 신혼여행

11월 말이면 그래도 조금은 서늘할 법도 한데 2년 전의 필리핀은 퍽이나 더웠고 반팔 반바지의 옷가지로는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아 불쾌함에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손톱 사이로 미적지근한 땟물이 스미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부산에서 마닐라 그리고 두마게티까지 이동을 하고 차를 통해 깔리까산 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둑했고 말페와 가브리엘라 남매가 사는 집에서 나는 홈스테이를 했다.

낮에는 깔리까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사전에 한국에서 모금한 금액으로 현지에서 연필과 학용품을 구매하여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 또 다함께 마을벽화를 그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밤에는 꼭 산미구엘로 병나발을 부는 등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귀국하기 전, 만족스러운 공정여행이었다며 자축하며 바라본 쿠쿠스네스트의 석양은 어떤 말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이후 새까만 밤을 수놓던 총총별들은 또 어떻게 할 거고.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사랑하는 내 여자와 깍지를 끼고 쿠쿠스네스트의 석양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밤을 함께 하는 것.

사실 ‘정말 인상적이었어.’라는 사건들은 대개 순간적이고 짤막한 법이다. 그래서일까 그때의 땀과 그때의 호흡 그때의 감동은 어쩌면 내 살찐 뇌 주름 사이사이에 파묻혀 무뎌졌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자 한다.

그런데 그 짜릿하고 자극적이던 것들이, 이제는 ‘그래 그랬었지.’하며 덤덤해진 것들이, 옴니버스처럼 그들 사이에서 아주 적절한 간격을 두고 있던 것들이, 철가루에 자석ㅡ5년 만에 신혼여행ㅡ을 가져다 댄 듯 이내 모여서 달라붙은 것이다.

작가는 그와 그의 아내 HJ가 식이 없는 혼인을 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다 ‘5년 만에 비로소 필리핀의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 아래 일어난 갖가지 일들을 본인의 입으로 살살 풀어낸다. 무엇보다도 본디 가진 시니컬함이 뚝뚝 묻어나서 좋았다.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정확히는 인생관과 결혼관이 비슷한 것 같아 그와 더 가까워지고 친해진 느낌도 들었다.

다툼 이후 HJ를 껴안고 석양 앞에서 ‘이제 나 좋아?’하며 나누는 대화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HJ는 복수할 거냐고 되묻고 그렇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많이 좋다고 하는, 그런 아기자기함과 사랑스러움이 좋았다. 공교롭게도 배경이 석양이다. 쿠쿠스네스트가 또 생각난다.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이 책을 덮기까지 얼추 보름은 걸렸다. 책장을 넘기다 말고 한동안 고향이 아닌 곳으로의 향수를 느꼈다. 장강명의 5년 만에 신혼여행은 더한 미사여구를 쓸 것도 없이 이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가 HJ의 이야기였다니. 뤼미에르 피플과 댓글부대에서도 그랬듯이 장강명의 작품은 작품과 작품사이에 은은한 고리가 있어서, 나는 그게 참 좋아서 오늘 퇴근하면 다시 책장을 뒤져보려 한다. 아, 이건 여담이다.

문지영 Hlogue 감성적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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