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얄궂지만 명쾌한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1. “소주는 다섯 잔, 맥주는 세 병까지” 영수는 민정에게 이야기한다. 그 이상은 위험하다고 당부할 만큼 영수는 민정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영수는 동네 술집에서 민정이 어떤 남자와 술을 마시고 다퉜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잘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잘 알지 못하는 소문 때문에 둘은 다투기 시작한다.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민정의 말마따나 그 이후 영수와 민정,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영수는 민정을 찾아 헤매고, 민정은 자신을 알고 있다며 다가오는 남자들을 만나 술을 마시곤 한다. 그리고 어찌어찌 민정을 다시 만나게 된 영수 앞의 그녀는 더 이상 민정이 아니란다.

“모르는 사람인데 존댓말 써야 되는 거 아니에요?”

2.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일상은 약간의 혼란을 담고 있다. 그것은 영화의 구조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민정의 장난, 거짓말 혹은 진심으로 보여지는 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저를 아세요?”

'내가 너를 알고 있다는 믿음’, 이 경험적 사실에 기댄 오만은 그녀에게그 작은 질문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 질문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하던 것(이를 테면 영수의 환상과 같은)에 대한 영화의 반문이다. 그 물음에 익숙한 관계 속 방어적으로 껴입었던 옷들이 무색해지고 다시 벌 거 벗은 시작의 순간으로 돌아가 영수는 이야기한다.

“제가 뭘 안다고 생각하고 뭘 하려고 했던 건 다 실패한 것 같아요. 정작 방해가 될 뿐이에요.”

서로에게 거슬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때문에 깨진 남녀의 소재는 뻔하다.

하지만 ‘균열이 선명한 한 번 깨졌던 것’을‘멀쩡한 새 것’으로 대체하는 이 영화의 수작은 얄궂지만 명쾌하다.

3.

‘홍상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마주할 때, 자연스레 바깥 것들을 영화로 끌고 들어와 인물에 대입시키고자 하는 3인칭의 이기심이 발동된다. 하지만 영화에 그 이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명확한 답변은 없다. 대신 작은 소동 속 인물들과 대화에 조각조각 존재할 뿐. 더 나아가 대입시키고자 하는 대상 뿐 만이 아닌 관객 자신들까지도 그 조각에 끼워 맞춰진다.

관객은 돈을 지불하고 작은 공간 속 어둠에 스스로를 가둔다. 잠시 자유를 반납한 채 현실과 잠시 단절된 시간을 지나 엔딩 크레딧을 맞이한다. 불이 켜지고 밖으로 나가면서 영화 속 공간과 시간에서 해방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 잠깐 분리됐던 시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감독은 그 정반대에 위치한다. 영화의 바깥에서 자신이 자초한 일에 대한 시선과 말에 둘러 쌓인 그는 작고 밀폐된 어두운 공간의 영화 속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렇듯 그에게 있어서 영화란 그의 세계이자 사랑이자 앎과 모름의 조화로 비춰진다.

글_ 최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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