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청산도

목적지는 12월의 청산도. 아무도 없는 섬에 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덤으로 얻었다.

대학내일 인턴 6개월차, 마지막 아이템을 내라기에 섬에 가겠다고 했다. 목적지는 12월의 청산도. 아무도 없는 섬에 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덤으로 얻었다.

우리만의 인사 방법

내 얼굴 위로 자기 코를 갖다 댄다. 살짝 스친 콧등이 반들반들 한 걸 보고 어린 강아지란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에 예약해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녀석에게 ‘궁둥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날 밤엔 주인 몰래 궁둥이 목줄을 풀어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완도행 버스는 하루 세 번, 5시간 만에 완도에 도착해도 날씨 사정에 따라 섬에 들어가는 게 결정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적당한 고립감이 좋았다. 두 달 만에 다시 청산도를 가게 된 건 궁둥이 때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얼굴 보다 먼저 본 하얀 궁둥이를 토닥이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서로의 코를 대고 인사를 나눴다. 궁둥이의 얼굴을 담기 위해 친구 아버지로부터 필름 카메라를 빌렸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필름을 감았다. 궁둥이의 목줄이 나오지 않도록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궁둥이는 자신의 코를 내 코에 갖다 댔다. 처음에는 부드러웠고 점점 더 따뜻해졌다. 궁둥이가 100원짜리 소시지를 좋아한다는 슈퍼 아저씨의 말에 소시지를 10개 샀다. 2박 3일 동안 우리의 인사는 똑같았다. 내가 쪼그려 앉으면 궁둥이가 다가와 코를 댄다. 그럼 나는 주머니에서 소시지를 꺼낸다.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으로 필름을 감았다. 카메라의 초점이 잘 맞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까만 코는 제대로 담겼겠지?

청산도 명소 중 하나인 범바위, 그 밑에 가면 나침판도 방향을 잡지 못한다고 한다.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할 때 필요한 건 익숙한 이름들이다. 어부들은 배에 자식들의 이름을 새긴다. 그 이름은 하나의 나침판이자 등대가 된다. 여기서 내 이름은 ‘학생’이었다.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정한 인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12월의 청산도는 바다 건너 제주 섬과 성산 일출봉이 보일 만큼 맑았다. 사실 보인다 해도 수평선 끝 쪽에서 깨알같이 작게 보였고 내가 그걸 구분한 건 아니다. 전망대에서 만난 아저씨들이 일일이 설명해준 덕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 다정함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서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카드 결제가 안 된다고 한다. 커피를 못 마시나 싶었는데 곁에 있던 50대 중반 될 법한 부부가 커피를 대신 사주며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온 분들이야?” 청산도 건너편에 있는 완도의 경찰서장님 부부라고 했다.

고등학생이냐는 물음에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내년에 복학하면 인사할 선배가 한 명도 없는 대학 4학년생에게 고등학생이라니. 방학 때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한 덕에 학자금 대출은 없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건 아니다. 선배들은 졸업하고 나면 막내가 된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취업이 된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 이런 나의 상황과 무관하게 여기서는 아기가 된다. 범바위를 내려오면서 든 생각. 나 몇 살이었지?

나무의 속살 들여다보기

“자, 오른쪽 창문을 봅니다. 저게 바로 전복 아파트입니다.” 두 달 전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순환버스 기사 아저씨 의 말 한 마디에 전복 양식장은 ‘아파트’가 된다. 섬은 겨울이 되면 한층 더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순환버스는 텅 빈 매표소 앞에 승객이 다섯 명 정도 모이자 운행을 시작한다.

모두가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순환버스 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약속한 시간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정각에 다시 나타난다. 아저씨는 승객들에게 한겨울 개나리가 어떤 모양으로 피어나는지 묻는다. 검정 벨벳 베레모를 쓰고 사람들이 지나칠 법한 풍경을 붙잡는다.

가이드처럼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매일 지나갔을 골목과 바다 앞에서 잠시 멈춰 있을 뿐 이다. 아저씨가 또 한 번 갓길에 차를 세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바다가 반짝인다며 둘러보라고 한다. 이곳이 마음에 들면 더 오래 있어도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나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다를 보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를 따라걷기로 한다. 다 똑같은 바다인 줄 알았는데 어떤 곳은 춥고, 또 다른 곳은 햇볕 때문에 따뜻하다.

바다의 색깔도 모래의 깊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제야 매일 봤을 풍경 앞에서 새삼스럽게 감탄하는 아저씨 마음을 이해하겠다. 순환버스 막차를 타고 청산항으로 돌아오는데 바다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청산도항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걷고 있었다. 트럭 한 대가 멈 춰 서더니 창문이 열린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저씨 한 분이 조수석에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인다. 나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더니 노란 과일 두 개를 쥐어준다. 처음에는 귤인 줄 알았는데 유자였다.

그때부터 마을과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나뭇가지 사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백, 그다음에는 나무 그림자를 따라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청산중학교에서 한아름슈퍼로 가는 길에 있는 유자나무였다. 가정집 안에 자라난 나무인데 담 밖으로 나뭇가지만 보였다.

가지 끝에 매달린 유자가 떨어지지도 않고 버티고 있는 게 귀여워서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찍었다. 혼자 골목을 지나가다 유자나무와 같이 사는 식구들의 하루를 생각한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간밤에 유자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고, 손자는 발꿈치를 들어 유자 향을 맡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 한 켠이 노랗게 물들었다.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청산도 사진을 살펴봤다. 햇볕이 쏟아지는 나무,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었을 때 나무,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나무. 전부 나무였다. 나무 한 그루를 만났을 뿐인데 섬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그들은 나무와 같은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고, 밤에는 별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들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완도. 그곳에서 배를 타고 또다시 1시간을 더 들어가야 청산도가 나온다. 고립된 곳에 발이 묶이니 어쩐 일인지 한결 자유로워졌다.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걸 인정해서 그런가보다. 도착해서는 목적 없이 걷기로 했다.

청산도엔 제주의 올레길만큼이나 산책 코스가 많았다. 이름은 슬로길. 느림을 통해 삶에 쉼표를 그릴 수 있단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거니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다녔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찍고 온다는 서편제 촬영지와 범바위를 갈 때도 ‘완주’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정해진 목적지를 찍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와 반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무언가 대단한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착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서까지 목적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저곳을 욕심 없이 걸으며 동영상을 많이 남겼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많은 영상을 촬영한 적은 처음이었다.

갈대가 저들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건 ‘파사삭’이나 ‘푸스슥’이라는 의성어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지리 해수욕장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내 부족한 언어의 울타리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자연의 소리를 담으려는 목적뿐이었다.

계속 찍다 보니 프레임에 불쑥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촬영한 영상을 돌려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서로 거리를 두며 걷고 있었다. 청산도에는 꼭 사람이 아니어도 곁을 채워줄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곳의 여행객들은 몸과 몸을 바짝 붙이는 방법으로 상대를 확인하지 않는가보다. 그렇게 필사적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거리를 두며 걷는 풍경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청산도 사람들은 당신의 인생과 그 밖의 인생 틈에 놓인 거리를 어떻게 채워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청산초등학교 옆에 나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면 ‘구들장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여놨지만 흑백사진을 노끈에 걸어 놓은 게 끝이다. 청산도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찍은 사람들의 이름 옆에는 ‘한옥마을 락팬션 할배’, ‘스마일팬션 아줌마’라고 적혀 있다. 14명의 주민이 ‘청산도 주민 사진가 연합체’에 소속돼 활동 중이라고 한다. 깨를 털고 있는 할머니의 등에는 ‘세월’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마음씨 고운 처남과 부끄러워 표현하지 못하는 매형이 다정하게 일하는 사진의 제목은 ‘의좋은 형제’다.

흘러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렌즈에 담아 제목을 붙이고 마음을 담은 문장을 쓰니 작품이 됐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멀리서 지켜본 마음이 묻어난다. 빈 공간을 채우는 청산도 사람들의 방식이 참 다정하다.

주인 없는 곳에서의 설거지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 카페는 처음이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주인도, 손님도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 우릴 반겼다. 청산도 여행을 준비하며 검색했던 블로그 포스팅 하나가 떠올랐다. 비수기에는 카페를 비워두실 때가 많으니 이 번호로 전화해보세요.

두 차례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으셨다. 우린 말없이 주인 없는 카페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단침입 해서 잡혀가는 것 아니냐는 일행의 혼잣말을 가볍게 무시해도 좋을 만큼 나는 그곳에 푹 빠졌다. 20분 쯤 지났을까. 밖으로 나 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날 불렀다. 금방 갈 테니까 좀 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또 10분이 흘렀다. 사장님은 시종일관 느긋하셨다. 나이가 들면 한 사람의 세월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하는데, 사장님의 얼굴에 그런게 보였다. 편안함이나 넉넉함 같은 것들이. 저기 20분째 카페 모카 세 잔을 정성껏 만드시는 분은 지나온 삶과 포옹하는 법을 알고 계신 듯했다.

카페가 어쩜 이렇게 예쁘냐며 서울에서 온 처자 세 명이 호들갑을 떨자 사장님은 은은한 미소로 화답하셨다. 인테리어와 가구 사업을 하는 두 딸의 작품이라고 소개하셨다. 그중에서도 햇살로 가득 찬 주방이 가장 예뻤다. 두 딸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엄마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일 테니까.

언젠가 나도 엄마에게 이런 주방을 선물하는 딸이 될 수 있을지 상상했다. 열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에델바이스’를 리코더로 구슬프게 불며 나타났다. 손주 녀석이라고 하셨다. 볼일이 있어 서울로 올라간 엄마를 대신해 오늘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누나들한테 리코더 실력 좀 뽐내보라며 할머니표 멍석을 깔아주자 등을 휙 돌렸다. 이미 오후 3시인데 왕복 두 시간이나 걸리는 친구 집엔 절대 못 간다고 말하는 할머니가 미웠던 모양이다. 어린 소년의 마음을 달래줄 건 하늘빛 리코더뿐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한 시간 동안 직접 말린 곶감이며 약초를 우려낸 차를 살뜰히 챙겨 주셨다. 그리고는 본인은 밭을 매러 갈 테니까 놀다 가라는 말만 남기고 가셨다. 누구 한 사람 놀라지 않았다. 이곳 생활 방식에 익숙해졌나 보다. 아무도 없는 곳에 불쑥 들어온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우리의 흔적을 깨끗이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햇살을 받으며 컵과 접시를 헹궜다. 설거지가 끝날 무렵, 사장님이 불쑥 들어오셨다. 마른 수건으로 그릇을 마저 닦고 있던 내 등을 조용히 쓸어주셨다. 고맙다는 뜻인 것 같았다. 저희가 더 감사했어요. 부끄러워서 이 말을 못 전하고 가게를 나왔다. 너무 늦지 않을 때 다시 찾기로 했다. 그날의 마음이 식지 않기를 바라며.

Photographer_

대학내일 인턴 에디터 윤소진 이연재 jae@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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