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효직 (法正 孝直) A.D.176 ~ 220

유비는 평소 눈물 보이는 일이 많은 편이였으나

대체로 진심에서라기보다 일종의 "쇼(Show)"였다.

자신의 이미지 중 가장 대중들에 어필되는

"인의(仁義)"


그런 유비 역시 진심에서 슬퍼 운 적이 있고

특히, 주변사람을 잃었을 때 몇 차례 그랬으며

"법정"


오늘은 유비를 진심으로 울게 한 이 남자에 대해 다룬다.

법정의 첫 커리어는 유장의 휘하였다.

그의 고향은 익주에서도 꽤 남쪽이였는데,

지금 중국의 구이저우성 남쪽이였다.


법정의 고향은 당시 유장이 다스리던

익주 관할도 아닌데다 거리도 몹시 멀었기에,

인맥과 연줄 등으로 주로 인사를 배치한

유장에게 중용되지 않았다.


더구나 성격도 물렁하니 우유부단한 편이던

유장으로서는 독설가에 행실도 좋지 못한 법정을

높이 쓸 이유가 없었다.


법정은 전략전술의 귀재인 엄청난 책사였지만,

당시 유장 치하의 익주에서는 그런 법정의 특기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다.


맹달과는 동향 사람으로, 유장에게 임관도

같이 했고, 임관 후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였던

장송과도 금방 친해졌다.


법정과 맹달, 장송 등은 셋 다 능력자들이긴 했어도

역시 셋 다 인성들은 그닥인 아웃사이더들이였고,

셋은 걸핏하면 술 마시며 유장의 비젼없는

무능함에 대해 뒷담화를 했던 걸로 보여진다.

법정의 진가는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면서부터

발휘되기 시작한다.


야망도 없고 대륙의 변방에 웅크린체,

안정과 유지를 원한 유장 아래에서

법정같은 전법에 능한 인재는 대우를 못받았으나

'한실의 부흥'

이라는 기치 아래, 조조와의 싸움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유비에게 법정같은 전략기재 충만한

책사는 실로 천금같은 재산이였다.


익주정벌 당시 봉추 방통의 전사와 그 이전에

서서의 이탈로 사실상 유비진영의 책사라고는

제갈량 혼자였으나, 유비 휘하 온갖 행정과

내치는 물론 군사관련 업무에 민생 및 치안과

외교까지 도맡던 제갈량은 이미 격무에 치이고

있던데다... 무엇보다 법정의 전술 전개방식은

유비와도 코드가 맞았었다.




전장에서의 전략전술 수행 방법이나 지론에

관해 제갈량과 법정의 스타일은 판이했다.


제갈량이 지형, 기후, 양측의 병력 등 여러 데이터들

토대로 병법의 정석대로 가는 모범생 스타일인데

비해, 법정은 적장이나 적병의 심리를 읽고 빈틈을

노린 후 임기응변을 잘 부리는 편이였다.


Ex. 량)

교실의 위치는 4층.. 점심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모두 엘리베이터로 달려가겠지만,

3층에서 한 번 멈출터이니 비상계단 통해 빨리

내려간 후, 화단을 가로 지르면 매점에 보다

빨리 당도할 수 있을 터...


Ex. 정)

아씨 귀찮고 배고프다.

그냥 양호실 간다하고 수업 째고 매점 가야겠다.




그의 이런 전술적 재능을 통해 공적을 세운 것은

유비의 익주정벌.. 그리고 무엇보다 법정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떨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유비 VS 조조의 한중쟁탈전에서 건안 24년

정군산전투에서 조조휘하의 역전의 맹장인

하후연을 격파한 다음부터다.




아깝게도 단명하여 그리 많은 전투에 참전하진

못했으나 조금만 더 살았다면 절대 방통보다

못한 책사가 아니였을 것이며, 행정과 내정의

제갈량과 전략전술의 법정으로 이원화 되지

않았을까 한다.


한중쟁탈전 이후 그 책사 많은 조조측에서도

법정을 탐냈다고 한다.

법정이 막 유비세력에 몸 담았을 당시,

제갈량은 형주에 남아 있던터라 그와 가장 먼저

"방통"

상당히 코드가 잘 맞았다.


전술적인 임기응변을 잘 활용한다는 점과

상대의 심리를 읽어 허를 찌르기를 즐기는 점,

원하는 결과 얻고자 수단방법 안가리고

도의적인 부분들도 뒤로 하는 결과지상주의 등.




반대로 법정과 제갈량의 케미는 그닥이였다.

이미 그 이전에 법정과 성향이 비슷한 방통과도

몇 차례 마찰 빚은 적 있던 제갈량은 법정과도

이따금씩 부딪히곤 했다.


익주정복 후 기존 익주의 법규들을 개정하는

과정에서도 제갈량과 법정은 의견다툼이 잦은

편이였다고 한다.




직급이나 유비 휘하에서의 경력은 응당 제갈량이

훨씬 위였으나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이후, 법정은

그런 유비나 제갈량을 크게 의식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갖은 횡포와 비리를 저저르고

다녔으며 이같은 사항들이 몇 차례나 유비에게

상소로 올라갔다.


허나 제갈량이 유비에게 올라가는 상소들을

미리 체크 후, 법정과 관련된 상소들은 필터링 후

유비에게 올렸는데, 제갈량 입장에서도 법정의

그런 권한오남용 및 전횡은 내키지 않았으나

워낙 법정의 공적이 컸고 아직 유비의 익주통치가

자리잡지 않아 혼란을 방지하고자 함이였을뿐..

제갈량은 법정을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눈치는 있었던 법정 역시 어느 정도

선부터는 제갈량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이슈는

더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전략전술의 전개방식은

유비와 잘 맞았는지는 몰라도 개인적인 성향에

있어서는 법정은 유비와도 상극이였다.


뭐 어느 세력인들 아니겠냐만...

당시 유비 세력에서 유비의 권위는 실로

대단한 것이였다.


나이도 적잖았던데다가, 유비가 그간 겪어온

산전수전공중전 속에서도 숱한 고난을 이기고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심지어 적벽대전을

통해 손권과 연합 후 그 조조와도 대등히

싸운 뒤 형주에 이어 익주까지 차지한

백전노장 유비 앞에서 문무백관들 모두

고개를 숙였으나....


유일하게 유비 앞에서도 뻣뻣하게 굴며

일절 쫄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것은 물론

유비와 언성 높여 언쟁까지 벌이는 것은

당시 2인자인 제갈량이나 의형제로 오랜 시간

유비와 함께 한 관우, 장비 등도 감히 못하던

행동이였다.


심지어 유비와 법정이 언쟁을 벌이던 중

격노한 유비가 주위를 돌아보며 법정의 입을

막고 밖으로 끌어내라 소리치자,

도리여 자신의 입을 막는다고 안될 게 될 거

같냐며,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 난 다시는

의견을 내지 않겠다며 법정도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결국 유비가 사과를 한 후에야

간신히 둘은 화해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관&장 의형제나 서열 2위 제갈량 등도

못할 말을 법정은 거침없이 했다.


조운 또한 유비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편이였으나 유비가 듣기 싫다하면

그 이상은 하지 않았지만, 법정은 유비가 화를

내거나 듣기 싫어해도 할 말은 끝까지 했고

유비가 자리를 떠버리면 같이 쫓아가 따라가며

할 말을 했다고 한다.




훗날 유비가 동오정벌을 밀어붙일 당시

이를 제지 못한 제갈량이

"법효직이 살았더라면 이를 말렸을 것을"

말도 다 이랬기에 나왔던 것이였다.


정말 법정이 살았더라면 유비에게 이치를

따져 독설을 퍼부어 유비를 제지했을 것이다.





허나, 유비도 역시 영웅은 영웅이고

대인배는 대인배였던게....

그리도 법정과 다투면서도 법정의 말이 옳고

그의 말을 따르는 게 맞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비록 울컥해서 그에게 화를 낼 지언정

반드시 뒤에 가서 사과를 했고 화를 내면서도

그의 제안은 대부분 거절 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여기에는 법정이 비록 말은 거칠지언정

유비에 대한 깊은 충정을 지녔고...

진심에서 유비를 위한 말들과 전략제안을

했다는 것이 전제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 유비와 법정은 서로 츤데레,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딱 츤데레였다.

유비 생전을 넘어, 유비의 사후까지

사실상 전장에서 지략 쓰는 책사로는

제갈량 원톱이나 진배 없었고,

또 거기에서 비롯된 한계들을 돌아볼 때...

역시 장수하지 못함이 매우 아쉬운 인물.


더구나 제갈량과는 승리를 추구하는 방식도

다르기에 더욱 안타까운 인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오히려 만만치않은

정치력과 권모술수가 있었고 제갈량과는

여러 모로 대비되며 잘 맞지 않았었기에,

그가 장수하여 보다 거물이 되었다면

촉의 파벌분화를 일으켰을 지도 모른다는

학설들도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제갈량과 달리

그는 인격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사리사욕을 좀 밝히는 편이였고

언행 자체가 거친 편이다보니 주변인들과의

마찰도 있는 편이였으며...

도의적인 부분들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체,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님?" 스타일.

게다가 원체 오만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였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주군 섬기는 방식은

주군 자체의 됨됨이를 보는 방식이였기에,

유비에 대한 충성 역시 유비가 그럴만한

사람이였기 때문이기에 유비 사후, 유선의

집권 후에도 유비에게만큼 유선에게도

충성을 다 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적을 했거나 그만큼 높아졌을 자신의

권위를 악용했을 우려도 없잖은 인성의

소유자....

내기를 좋아했던거 같다.

여러 정황들과 근거들을 토대로 나중을

예측하는 감이 상당히 좋았던 사람이였고

주식을 했으면 대박이 났을 인재였다.


제갈량과는 공적인 부분으로는 이리저리

전원책과 유시민처럼 이야기도 많았고

대립도 심했으나 어쨌건 서로 공경은 했지만

일절 개인적 교류나 사담이 없었다는 걸로

보았을 때, 사이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비와 술자리를 갖던 중, 만취하여

유비와 서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격하게

말다툼을 벌인적 있었는데, 다행히도

상대가 유비였던지라 용서를 받았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고 이듬해에 죽었는데

며칠 간 유비가 대성통곡을 하여 유비의

건강이 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놀랍게도 유비는 법정을 영입 후, 그가 죽는

순간까지 제갈량보다 법정과 독대한 횟 수가

더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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