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통제를 풀고 자유를 허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측)의 경제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본통제와 생산통제를 풀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경제학은 자유로운 거래와 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허나, 북측의 경제체제는 중앙계획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간단히, 생산과 소득, 소비로 구분해보자. 그들에게 생산은 계획된 숫자이다. 이는 이승만이나 특히 박정희정권에서도 시행된 바 있는 방식이다. 정부에서 생산량을 계획하고 거기에 맞춰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여 설비를 만들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의 전제조건은 항상 수출이다.   생산을 해서 수출을 하겠다는 단순한 발상은 공산주의나 자유주의와 상관없이 후진적 정치행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출주도형의 경제성장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했을 때의 문제는 소득과 소비를 따져보면 바로 나타난다. 우선, 생산을 정부의 주도로 하여 그에 따른 모든 소득을 일부의 경제주체가 독점했을 때의 문제점이다. 이것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소득분배의 기능을 역행하는 것으로, 역피라미드의 형태로 소득이 분배된다. 당연히, 일반 국민소득의 증가와는 관계가 없는 총량의 증가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이러한 현상 또한, 공산주의나 자유주의와 상관없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서 독재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벌어지는 현상이다.   잠시, 정치제도로서 독재정권의 의미를 점검해보자. 독재정권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포퓰리즘으로 경기과열을 이끌거나, 또는 초인플레이션을 맞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것은 중남미 국가들의 역사가 증명한다. 독재정권의 경우는 생산량의 증가가 없이 부패하거나, 장기침체를 겪게 되고, 심한 경우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인한 내전을 겪게 된다. 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가 증명한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사례를 특이한 경우로 드는 이들이 있다. 독재여도 경제가 성장한다는 예로, 박정희 정권의 독재시기를 거론하는 것이다.   이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독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경제체라는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외환위기와 높은 물가상승률, 그와 동반한 인권탄압을 모두 덮고, 경제성장률이라는 %를 살인의 변명으로 드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중국의 공산당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정치제도가 계급화 되어 있거나,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모두 독재국가로 간주함이 마땅하고, 그러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일은, 경제학이 경제를 규정하고, 성장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방치하면, 독재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궤변이 허용되고, 국민의 희생(인권)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파시즘적 야만이 허용된다. 이는 곧장, 한 국가 체제의 분열과 반목으로 치달으며 문화적 퇴행으로 이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재국가여서 경제가 성장했다는 논리는, 전쟁으로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독재국가가 아니어도 경제는 성장한다는 반대명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말은 다시 풀면 이렇다. ‘박정희가 쿠데타에 실패했다면, 대한민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이 되고, 어쩌면 벌써 한반도의 통일이 가시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하는 역사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가 일찌감치 독립운동을 포기해서 친일파가 되었다면, 또 일제 군부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한반도를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한글이 아닌 일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어 일본제국의 국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가정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비겁한 기회주의자들이 역사에 대한 변명을 수시로 하면서 스스로의 패배주의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분단국이 된 한반도의 현실이 증명하는 처참한 역사에 있다. 남측의 비겁한 기회주의자들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재벌도 되고, 족벌도 되고, 교수도 되며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하며 역사에 대한 변명으로 스스로의 비겁함에 대한 면죄부를 스스로 발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배우는 역사이며, 우리가 읽는 신문이며,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대한(大韓)2013.08.19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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