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정치

민중의 정치 [3.1절을 기념하며, 정치사를 정리하려 합니다. 늘 그래왔듯이, 지금부터 저의 글은 어떠한 경제적, 역사적 기반이 없이 현실적 시각으로만 정리합니다. 설사 그것이 시대의 조류와 불화를 일으키거나, 학문의 주류와 대치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수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제가 느끼는 그대로 정리하는 것인바, 누구와도 일치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향후의 결과가 어찌되었든, 지금의 세상은 현실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방치하며, 사람의 가능성이 관념의 굴레에 갇혀 있고, 스스로의 존재이유와 도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정치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이유입니다. 지금부터 정치의 의미를 정리하려 합니다.] 많은 이들은 세상의 문제를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남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정치가 왜 필요한가?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국민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래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소망해서? 현실은 어떠한가? 질문을 다시 하자. 현실을 살펴보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가가 왜 정치를 하는가?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다. 현실을 살펴보는 또 다른 방법은, 역설적 가정을 세우는 것이다. 정치가가 최저수준의 임금을 받고, 아침마다 국회의사당을 청소해야 하고, 일년에 3개월이상을 봉사활동을 해야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국회의원이 하고 싶을까?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공개하고, 회의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공개하며, 회계사용을 10원도 빠짐없이 공개해야 한다면, 그래도 정치가 하고 싶을까? 본격적으로 현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언어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현실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는 수단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사람은, 논리를 단순화하고, 순차적으로 나열한다. 그것이 언어를 통해서, 논리를 세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점차 논리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것이다. 분야를 나누고, 범위를 구분하고, 역할을 세분화하는 것이 처음으로 현실을 단순화하는 방법이다. 그 다음은, 각 분야의 과정을 다시 단순화하여 논리를 세운다. 그것이 법칙 또는 원리, 이론이다. 하나의 이론이 체계를 세우면, 다른 분야의 논리, 이론과 비교 검토한다. 수많은 논리들 중, 상충하는 것을 빼고, 상호연결되는 것을 다시 추출한다.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 이론, 논리가 된다. 다음은 아까 빼버렸던, 상충하는 논리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다. 역설과 모순 역시, 보편적인 것이 존재한다. 역설과 모순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핵심이다. 현실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논리를 밝혀내서, 가다듬으면 그것이 현실을 이해하는 가장 유력한 도구가 된다. 보편적 논리와 모순된 논리, 이 두 가지가 현실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제 이것을 언어 사용에 어떻게 접목할지 생각해보자. 모든 문제의 핵심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상충되는 논리를 끄집어내야만 한다. 문제는 서로 다른 논리의 충돌로 발생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서 명확히 하면, 모순을 찾을 수 있다. 찾아낸 모순이 다시 보편적 논리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모순을 만들어낸 두가지, 또는 세가지의 논리 중 잘못된 논리를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과학적인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귀납법, 연역법, 변증법은 모순을 짚어내는 방식을 세분화한 것이다. 실제 사고는 세 가지 방법을 즉각적으로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정치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실을 왜곡하는 이유는, 정신을 미신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만족감을 위해 정치를 하는 이들은, 물질적 이익이 없어도 정치를 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효용이라 하여,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정신을 실체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국민들의 기대, 지지, 선망이 더없는 만족감을 주기에 정치를 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알다시피 돈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경우이다. 돈으로 단순화 하기보다, 정서적 활동범위로 구분하자면, 엘리트 집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인정받아야 효용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학에서는 주거 집단을 기준으로 사회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이것은 유력한 연구방법이라 할 수 있다. 알지도 못하는, 시골의 촌부가 아니라, 옆집에 사는 이웃의 말 한마디가 훨씬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4년에 한번 선거를 한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선거제도의 문제가 정치가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원인이라 말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소선거구제이든, 중대선거구제이든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소홀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정치집단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문제를 찾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먼저 대상을 관찰한다. 그 대상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관찰할수록, 대상과 일치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제 관찰을 시작해보자. 현재 공천으로 정치판이 어지럽다. 공천위원회가 결정한 공천인사가 각 지역구에서 선거에 출마한다. 복수공천의 경우, 경선을 치룬다. 선거기간이 시작되면, 유세를 시작하고, 4월 11일이면, 투표가 시행된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결과가 발표되면, 당락은 결정된다. 국회의원에 새롭게 취임하면, 4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이것이 일반적 과정이다. 이제 현실적 과정을 살펴보자.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기 위해서는 선거자금과 인력이 필요하다. 기부를 통해서든 , 자신의 사비를 털든 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주위의 친인척이나 지인을 동원하여 인력을 충원한다. 우여곡절 끝에 당선이 되면, 국고의 보조로 보좌관과 비서진을 비롯한 경비가 보장된다. 여러 곳의 상임위원회에 소속되고, 입법, 의정활동을 시작한다. 자,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기간에는 표를 받기 위해, 지하철 앞에도 서 있고, 학교졸업식에도 가고, 온갖 모임은 다 찾아간다. 그런데, 당선이 되면, 지역구를 찾아올 이유가 없다. 왜냐고? 오지 않아도 잘리지 않으니까. 답은 간단하다. 생사여탈권을 틀어쥐고 있는 쪽이 우위에 서는 것이다.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데, 굳이 지역구에 돌아와서 사람들을 찾아다닐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두고, 국회의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메아리일 뿐. 국회의원이 국민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범위를 정치가로 넓혀보자. 그 범위를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정부에 귀속된 모든 인사로 최대한 넓혀보자. 모든 공무원은 다 정치인이다. 크게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리하면, 모든 국회의원, 정당인, 국회소속 공무원, 모든 판검사, 법원, 검찰 소속 공무원, 그 외 행정부의 모든 공무원이 정치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정치가의 범주를 지금처럼, 입법부에서도 선출직에만 한정할 경우, 현실을 올바로 관찰할 수 없다. 망원경에 동전만한 구멍을 뚫고 그만큼으로만 세상을 관찰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가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다시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주어가 빠진 단어이다. 누가 누구를 바르게 다스린다는 것인가? 다른 글에서 현실적 주체와 잠재적 주체를 구분지었다. 그 중 실질적 주체는 잠재적 주체이다. 현실적 주체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다시 잠재적 가능성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은 잠재된 가능성이 발현되는 것이니, 실질적 주체는 잠재되어 있다. 잠재적 주체는 대중이라 하였다. 이제 피상적 표현인 대중이 아닌, 실질적 표현인 민중을 사용하자. 잠재적 주체는 민중이다. 그들이 실질적 주체, 실체이다. 정치는 민중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는 무엇인가? 위정자가 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바름을 다스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중을 구속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정치제도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지금이나, 백성에게 공물을 요구하는 왕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도자의 정당성이다. 걷어간 세금을 납득하는 방식으로 옳은 곳에 사용하느냐 아니냐가 정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옛날로 돌아가보자. 왕이 정치를 옳게 하지 못하고, 부정부패에 물들면, 최측근이 반란을 일으킨다. 같은 왕실의 누군가가 민심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면 개혁이다. 그보다 더한 폭정이 일어난다면, 지방의 실세 누군가가 반란을 도모한다. 자신의 군사력으로 왕을 쳐내고, 새로운 왕이 된다면 그것이 역성혁명이다. 혁명. 개혁과 혁명은 주체가 누구로 바뀌느냐로 구분된다. 같은 왕실이라면 개혁, 새로운 가문이 들어선다면 혁명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의 반응이다.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개혁도 혁명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왕에 대한 모반은 군사적인 충돌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의 이반에서 비롯한다. 정치가 스스로 힘을 발휘하려면, 그 실체가 민중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의 바른 의미이다. 왕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민심을 대변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을 착각하는 현대의 대통령은 민심의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헌데, 민심이 옳겨갈 곳이 없다. 어찌 하겠는가? 스스로 정치를 시작할 수밖에. 민중의 정치는 이제 시작되는 중이다. 추신. ‘민중의 개혁’과, ‘민중의 혁명’이 이어집니다. 2012년 3월 작성.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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