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와 자격지심, 열등의식

패배주의와 자격지심, 열등의식 먼저 기존의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열등감이란 것은 실제하지 않는다. 못날 열 무리 등 느낄 감. 무리 중에서 못났다고 느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생각이다. 원초적 감정이나 감각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마음이 아니라 생각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열등심이 아니라 열등감이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마음과 상관없는 비본질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화와 현재의 역사와 작금의 교육이 사람을 일방적인 사고만 하도록 길들인다. 사회관습과 국가체제가 그것을 유도하고 있다. 무리에서 서열을 매기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습성이다. 인류라는 동물 역시 사회라는 관습체계를 동물의 습성과 행태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구태, 관습, 병폐라 부르고 그러한 사람을 꼰대, 노망, 꼴통이라 부른다. 사실 민주적인 교육, 자유나 평등, 정의나 의지, 소통이나 화합을 배운 적도 없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도 지나친 면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체득한 사고와 행동을 무작정 힐난하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따져서 고쳐 나가야지, 그것을 두고 나는 옳은 사람 너는 그른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선을 긋고 서로 싸우고 패를 가를 일은 아니다. 한 인간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고 패배주의와 자격지심을 체화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인간에게 도덕을 따지고 윤리를 따지려면, 그가 속한 국가 사회가 어떠한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여 서열을 매기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인류의 모든 선진국가, 민주사회도 서열경쟁과 관료체제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수직으로 서열을 매기고 위치에 따라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국가와 사회와 조직의 효율성에 따라 매겨진 지위와 서열이 그 인간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초기 농경사회를 떠올려 보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도 협동해서 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확된 작물을 어떠한 기준으로 분배할까? 당연히 공평하게 분배한다. 누가 일을 더하고 덜했는가 누가 어떤 일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구분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복잡해진다. 전부 다 공평하게 분배하는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 생산과 분배가 공동으로 이루어질 때는 불평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누가 잘 낫고 누가 못 낫고의 차이도 의미가 없다. 문제는 개인의 사적재산권, 사적소유권을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실은 이 또한 불평등한 약탈의 과정에서 왕이나 영주, 귀족이나 양반을 기준으로 형성된 것이지, 민초나 백성, 민중이나 서민에게는 그런 거 없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결정된다. 민주주의는 본래의 공정하고 공평한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이것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의식이 왜 비루해졌을까? 이 역시 사회적 계급의 태생적 문제에 따른 것이지만,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를 1950년부터 시작한 대한민국에서 태생적 한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를 이어서 체화된 패배주의나 자격지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선생이 학생에게 그렇게 가르쳐온 것이다. 우승이나 1등, 최고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생존하기에 가장 유리한 길이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재벌을 배제하고 대한민국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학벌이다. 서민의 입장에서 학벌은 사회적 지위를 단숨에 끌어올리고 상위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대한민국에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드물고 시장을 재벌이 지배한다. 거기다 금융은 국가가 지배해서 재벌을 보조한다. 또 거기다 창업 역시 높은 진입장벽으로 성공 자체가 힘들고 그러한 장벽을 정부와 재벌이 구축한다. 명문대를 가서 의사가 되거나 고시를 패스해서 고위직이 되어서 상류층의 사위나 며느리가 되는게 창업보다 훨씬 쉽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상류층의 인맥, 혼맥관계는 단단하게 얽혀 있다. 거기에 서울대를 기준으로 한 학벌이 정치계와 법조계를 지배하고 그 들러리로 연대나 고대가 자리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패배주의, 자격지심, 열등의식이 안 생길 리 만무하다. 쉽게 말해 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나오지 않으면 패배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금수저가 아니면 전부 패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야권의 대선후보들이 명문대 출신이 아닌 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정권교체가 된다면 최소한 학벌이 다시 강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을 조롱했듯이 명문대 출신아니라고 조롱할 용감한 인간이 지금의 정치판에 또 나올까? 사람 뚜껑열리게 만드는게 뭔지 아나? 이렇게 글을 쓰고 말을 하면 자격지심에서 그런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내세울 게 부모, 아니 조부모밖에 없는 것들이 돈자랑을 하고 갑질을 하면서 국민들을 조롱하고 모욕한다. 재벌 2세, 3세들이 왜 심심하면 사고를 칠까?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이 패배주의자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오직 부모가 시키는대로 돈으로만 살아왔으니, 제 스스로가 내세울 것이 단 한개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서 자랑할 것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자부심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갑질이나 조롱 뿐이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길가는 사람 붙잡고 할 수는 없으니, 한밤에 술마시고 종업원이나 여자들에게 갑질을 부리는 것이다. 그게 패배주의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벌 2세, 3세, 4세를 양산한 것은 정치가 바로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와 독점은 정치와 경제라는 분야가 다르고, 글자가 다르다 뿐이지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그 점에서 완전히 똑같다. 돈이 많으면 갑질해도 되는 민주국가가 어디있는가? 어디서 감히 갑질 행세를 하며 폭력을 쓰고 폭언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민주공화국의 확립을 위해서 필요에 따라 보석, 감형, 사면을 줄이고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다. 돈많고 철없는 국민의 준법정신과 도덕교육을 위해서... 아무튼 민주국가에서는 패배주의나 사대주의를 따라선 안된다.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 것은 그들을 찍은 국민의 책임이다. 재벌과 부자의 갑질과 횡포에 저항하지 않고 굴복한 것은 국민 그 자신이다. 서민 코스프레와 반공 코스프레에 넘어가는 것도 국민 그 자신이다. 돈 몇 푼에 태극기를 흔드는 것도 국민 그 자신이다. 그 자식과 손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패배주의, 자격지심, 열등의식은 다 쓰잘데기없는 소리다. 다 쓰레기같은 생각이고 감정일 뿐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갑자기 바뀌고 정권만 교체되면 무엇이 달라질 줄 안다. 집안 곳곳에 다 썩어가는 쓰레기를 고이고이 모셔두고 집이 깨끗해지고 향기가 나길 바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쓰레기를 청소해야 그 다음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 담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인간은 어리석은, 얼이 썩은 인간이 아닌가? 집청소도 나중이다. 우선은 내 머릿 속, 마음 속부터 청소할 일이다. 그것이 시작이다.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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