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해부⑫/ ‘공돌이’ 이재명의 대학 시절… “야상과 코트, 두 벌 뿐이었다”

Fact

▲‘공돌이’ 이재명의 대학생활은 독특했다. ▲복장은 1년 내내 야상과 코트, 두 벌이었다고 한다. ▲술은 곧잘 먹었다. 중간에 가끔 필름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객기도 좀 부리곤 했다. 돌(데모)도 남들만큼 던졌다. ▲대학 동기 이영진씨의 기억이다. ▲다른 대학동기 이종은씨는 “이재명이 가장 당혹스러워 했던 과목은 교련이었다”고 했다. ▲공장 시절 프레스에 끼어 ‘6급 장애’ 판정을 받은 팔 때문에, 총검술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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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해부⑪에서 계속

기름때 묻은 공구를 만지던 이재명의 손은,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법전을 만지기 시작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공돌이에서 법대생으로 신분이 상승한” 그에게, 자유분방한 캠퍼스는 낯설고 때로 두려웠다.

당시 중앙대는 신입생을 계열별로 모집했다. 이재명의 입학 동기는 111명이었다. 법대는 2학년 때. 법학과와 행정학과로 나뉘어졌다. 여기서 잠시 다른 얘기를 좀 하자.

중대 법대 출신으로는, 농민운동가인 고 백남기(68학번)씨가 있다. 백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사경을 헤매다 2016년 9월 25일 숨졌다. 당시 백씨의 출신 학과를 두고 일부 언론은 법학과, 다른 언론은 행정학과 출신이라고 각각 보도했다. 이는 중앙대가 법학과와 행정학과를 묶어 계열별로 뽑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기름때 묻은 손이 법전 펼치는 손으로

이재명은 1학년에 입학하면서 30여년 인연을 이어갈 소중한 친구 한명을 만나게 된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살던 이영진(현재 성남문화재단 문화진흥국장)씨였다. 삼양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흙수저’ 출신인 두 사람은 서로 통했다.

이영진은 운동권에 몸을 담았다. 그는 총학생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운동권 핵심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제적-구속을 반복하다, 뒤늦게 복학해 졸업했다.

“야상과 코트, 두 벌로 지냈던 것 같다”

1월 12일 성남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이영진씨를 만났다. 그는 친구 이재명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재명이 참 독특했어요. 머리카락이 좀 붕 뜨고 눈이 쪽 찢어졌고, 많이 말랐었죠. 우리 법대학생이 아닌 듯, 약간 불량스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동기들이 111명으로 너무 많았고, 수업도 나뉘어 듣다보니 처음에는 재명이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도 눈에 좀 띄었던 것 같아요. ‘이재명이라는 애가 있는데 똑똑하다더라’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랬어요. 나중에 ‘공장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런데도 알고 보니 나 보다 더 많은 장학금을 받는 거예요.(당시 중앙대 법대 학생의 2/3 이상이 장학생이었다고 한다) 똑똑한 놈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신입생 이재명에 대해 “야상(야전상의)과 코트, 두 벌로 지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영진씨는 “법대 학생들이 대부분 비슷했는데, 재명이도 다듬어지거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었다”고 했다.

“리버럴한 성격… 술은 좀 잘 먹었다”

공장에서 거친 형들과 지냈던 이재명은 동기들 사이에 어떻게 적응해 나갔을까. 이영진씨는 “재명이가 동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며 “제가 기억하기로는 돌(데모)도 열심히 던졌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는 경찰이 대학 정문 입구에서 학생들 가방을 검사하며, ‘돌’을 던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손을 검사하던 때였다. 이영진씨의 말은 계속됐다.

“재명이는 리버럴 했어요. 술은 좀 먹었죠. 중간에 가끔 필름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고, 객기도 좀 부리고 했어요. 특별한 술버릇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재명이 가장 당황스러워 했던 과목이 하나 있었다. 교련이었다. 이제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된 교련은 당시 고등학교는 물론, 각 대학의 ‘필수 과목’이었다. 이재명은 공장 시절 프레스에 팔이 끼어 장애를 입은 탓에, 교련 과목에서 해야 하는 제식훈련 등이 수월치 않았다.

다친 팔 때문에 총검술 부자연스러워

대전에서 감정평가사를 하는 대학 동기 이종은씨는 18일 팩트올에 “나는 1학년 이후에 휴학을 해서 재명이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엔 이름 철자 순서대로 학번을 정했어요. 그래서 학번 앞뒤에 있는 친구들끼리 조금 더 친하게 됐는데, 입학해서 서로 잘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교련수업을 같이 받았어요. 재명이하고 저하고는 이름 철자가 비슷해서 교련 시범을 같이 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고등학교 교련 수업 때 기본적인 제식훈련은 조금씩 배워서 대학에 가잖아요. 하지만 재명이는 좀 달랐어요. ‘찔러 총’ 자세를 하는데 이 친구가 머뭇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너 왜 그것도 못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공장 생활하면서 검정고시를 봤다’고 하더라구요. 학교를 다니지 않고 공장을 다녀서, 총검술 기본 자세조차 배우지 못했던 겁니다.”

잔디밭에서 막걸리 마시다 눈시울 붉어져

대학의 교련 수업은 신군부 집권 중반기인 1985년 폐지됐다. 이종은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안주는 당연히 새우깡이었죠.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안주로 햄인지 참치인지 ‘캔’ 비슷한 걸 꺼냈나 봐요. 그때 재명이가 그걸 굉장히 먹고 싶어 했어요. 평소에 늘 먹고 싶었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먹었던 거죠. 그 말을 하면서 그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재명 해부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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