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내려갈 때 본다. 올라갈 때 못 본 꽃

ⓒ 송해용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오늘'이 특별하다 느낄 때

사랑 행복 꿈…삶에서 가장 중요한건 언제나 공짜인데

2017 새해가 도래하면서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육신이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쳐졌다.

현기증이 동반되었고, 입맛이 없어 통 먹지를 못하니 기운이 없어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졌다. 심신이 피곤하니 종일 잠만 잤다. 취미로 하는 악기레슨도 운동도 줄줄이 펑크내었다. 웃음은 사라지고 삶의 질은 곤두박질 쳐졌다.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했지만, 저혈압에 빈혈이라는 말 외에는 뾰족한 대안을 주지 없었다.

며칠이 그렇게 지속되니 기분도 우울해졌다. 남편과 딸아이가 잠들고 나면 홀로 어둠속에 눈을 뜬 채 눈물을 흘렸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어떤 병이 찾아온게 틀림없었다. 만약의 경우 내가 이 세상을 뜬다면, 남겨질 남편과 이이 걱정에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어른은 어른대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이제 다섯살인 내 딸아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살아갈까를 생각하니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워 베개가 축축해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절박한 상황이 닥치니, 현재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렷이 살아나고, 매일같이 반복되던 그다지 특별하지 않던 나날들이 얼마나 빛나고 소중한 하루하루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은 축복이자 신이 내린 가장 큰 선물이었다. 단지 무수히 반복되며 다가오는 나날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기 때문에 소중한것들의 의미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늘'은 수많은 하루들 중에 오직 한번뿐인데 말이다.

ⓒ 송해용

그렇게 무채색의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딸아이의 스케치북을 사주러 마트에 들렀다. 시식코너의 기름냄새에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아팠다. 몸이 아프니 신경도 날카롭고 후각도 예민해졌다.

분식코너를 지나치는데, 뽀얗게 삶아낸 국수다발이 보였다. 갑자기 맹렬한 허기가 몰아쳤다. 돌돌 만 사리를 그릇에 담아 김가루를 뿌리고 신김치를 송송 썰어 올렸다. 그리곤 뜨거운 멸치육수에 토렴했다. 빼앗듯 받아들고는 폭풍처럼 국수를 흡입했다. 5초도 걸리지 않은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배가 많이 고팠냐며 웃었다. 그 순간, 번개가 들이치는 듯한 뜨악한 어떤 깨달음!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했다. 집으로 달려가 실험을 했더니 선명한 두 줄의 양성반응이 나왔다. 임신이었다. 그동안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모든 증상들은 바로 입덧이었다.

둘째아이는 계획하지도 않았고, 첫 아이와 부부위주의 삶을 살았기에 아이를 가진줄도 모르고 그토록 아둔하게 몸에 병이 찾아왔다고 혼자 슬퍼하며 고통받았던 것이었다.

남편조차 나의 무지함에 경약을 금치 못했다.

둘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 첫 아이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초보엄마다운 실수도 많이 하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키웠었다.

아이가 귀여운지도 잘 몰랐다. 그저 책과 주변의 지식을 동원하여 서투르게 부모의 의무를 다하였던 것 같다. 휘몰아치 듯 흘러가는 좌충우돌의 서툰 육아가 조금씩 손에 익고, 이제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며 좀 편안해지나 싶었는데 계획에 없던 둘째가 찾아와 버렸다.

여러 고비를 넘고넘어 이제 내리막길을 타는가 했더니, 또 큰 산이 다가왔다.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중간중간 변수도 있으며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만 아는 것.

ⓒ 송해용

둘째 아이는 신이 내게 한번 더 자식의 사랑스러움을 느껴보고, 내가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아보라고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고 혼자 상상하며 보냈던 지옥같던 요 며칠, 그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보석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지켜야 하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언인지 더 오롯이 깨닫게 되었다. 시련을 거치고 나면 사람은 한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고은 선생의 시 중에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내려갈 때 본다. 올라갈 때 못 본 꽃"

곱씹어 볼수록 우러나는 문장이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많다. 더 큰 고화질TV, 최신형 컴퓨터, 신상 의류, 그 옷에 걸맞는 구두, 셀러브리티들에게 인기있는 가방들, 한정판 운동화, 전문가용 자전거, 럭셔리한 여행 등등.

그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가 소비해야 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속에 흘려보내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

물질이 주는 위안은 일시적이고, 더 큰 갈증을 부른다. 반면에 좋은 정서가 쌓여서 주는 위안은 흔들림이 없고, 멀리 보는 혜안(慧眼)까지 덤으로 준다.

나는 이제 알고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많이 가지는 것보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갖추어야 그것들의 가치가 더 발휘되는 것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공짜이거나 거의 헐값이고, 가장 큰 사랑은 댓가가 없는 것이다.

畵 : 송해용

*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개인전24회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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