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듯 오만한 서평 매뉴얼 <서평 쓰는 법>, 이원석 著


<서평 쓰는 법>을 장바구니에 넣은 이유


한동안 책을 읽고도 감상을 글로 남기지 않은 채 다음 책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한 두번은 별로 만족스러운 책이 아니었기에, 또 한 두번은 다른 책과 함께 읽는 중이라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해서.. 어떤 경우엔 빨리 다음 책을 읽고 싶은 조바심에.. 그리고 마침내 '에이 그냥 나혼자 읽은 걸로 됐지 뭐..' 라는 오그라든 변명.


책을 읽고 쓰는 감상이던, 사적인 일기던 글쓰기는 습관입니다. 습관은 한창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엔진과 같아서 그 엔진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는 관성적으로 습관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약간의 노력과 성실성이 받춰준다면 평생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고가 났건, 어떤 이유에서 급제동을 했건 간에 구르던 바퀴가 멎고, 엔진이 식어버리면 다시 바퀴를 움직이는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빙글이나 다른 블로그에 글을 쓰진 않았지만 텀블러에 짧은 단상들은 꾸준히 끄적이며 손가락이 아주 굳어버리는 것을 막아왔었죠. 손가락이 굳는다는 것은 생각이 멈추는 것이고, 생각이 멈추면 살아도 사는게 아니란 신념이랄까.


빈 화면을 앞에 두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면 삶의 균형이 깨지고, 내 스스로 중용을 유지하지 못한 채 한없이 육체적 욕망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버릴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그래.. 다시 좀 써보자. 그동안 책읽고 책수다를 적는 것을 멈췄다면, 다시 시작하는 지점도 서평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내가 주문한 적이 없는 가제본 책이 서비스로 왔나?


<서평 쓰는 법>의 첫인상은 황당함이었습니다. 5-6권을 주문했는데 사은품으로 온 북커버와 알라딘 다이어리를 빼고 나니 뭔가 박스가 휑합니다. 게다가 전에 받은 경험이 있는 미니북 스타일의 얇팍한 책이 낯설게 들어있습니다. 어.. 근데 이 책 제목이 <서평 쓰는 법>입니다. 페이퍼백 문고판처럼 나온데다 두께도 주석까지 다 합쳐 180페이지 정도. 그런데 가격은 10,000원!


제가 요즘 책값에 좀 둔감하긴 했나 봅니다. 보통 다른 책들이 14,000~17,000원 정도이니 10,000원이면 그래도 저렴한 편일텐데, 첫인상은 뭔가 '사기'당한 서운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크게 히트친 책이 <거대한 사기극> (https://www.vingle.net/posts/1495747) 이었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당시에 리뷰를 썼을 때도 다소 까칠한 시각으로 어설픈 평을 남겼습니다만..


콘텐츠의 가치를 물리적 양으로 평가하는 우매한 짓을 한 거였지만, 아무튼 첫인상은 충격적으로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보면 얇은 책이기 때문에 가볍게 덤벼들수 있었고 부담없이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읽으면서 반감이 생겼던 몇 가지 지점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할까 합니다.


모순1. 서평가는 아무나 하나 vs. 모두가 읽고 써야 한다.


저자는 두가지 모순된 주장을 하나의 책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작가 소개에 보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모두가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고 굳게 믿기에"라 되어 있고, 맺음말에도 발터 벤야민을 원용하며 "국가를 이루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필수적인 선택"(p.168) 이라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서평과 독후감은 다르다' 라는 주장을 시종일관합니다. 독후감은 정서적이고 내향적이며 일방적인 독백에 불과한 반면, 서평은 논리적이고 외향적이며 관계적인 대화라는 이분법입니다. 독후감은 개인적인 정서의 치유에 머물지만, 서평은 독자를 설득하고 통찰의 경험을 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을 긋고, 서평에 필요한 지적 토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선 문법과 언어의 기본 수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또한 문자를 넘어서 그 맥락을 파악하고 저자의 심층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해당 도서가 자리하는 맥락(전공)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의 도서관 혹은 인덱스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p.73)


네, 사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서평을 쓰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은 읽은 책을 공시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동시에 통시적으로 읽은 책이 위치하는 지점을 파악하여 가로축, 세로축으로 엮어서 파악할 수 있는 지적 배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민주시민 누구나 서평을 쓰기 위해 그런 지적배경을 갖출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이원석에게 감도는 특권의식의 악취를 살짝 맡았다고 하면 저의 자의식 과잉일까요.


모순2. 아주 칭찬해 vs. 아주 별로야


서평은 그 책에 대해 친구로 남을거냐 적으로 돌릴거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서평은 정치적이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은 곤란하다"(p.79)고 적고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들여다보며 서평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쓸 것인가, 서평의 요소는 무엇이고 실제 방법론은 어떤가 차례대로 기술한 것을 때론 수용적으로 때론 비판적으로 읽었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가 됐다 적이 됐다를 반복했지요. 우상을 숭배할 것인가 타파할 것인가의 갈림길. 그런데 읽을 수록 자꾸 거림칙하게 와닿는 모순점때문에 결국 적에 가까운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원석은 몇몇 가까운 서평가 집단이 있는 듯 합니다. 서평가도 인간인지라 당연히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 등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 뜻이 통하는 사람에게 팔이 굽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펴낸 책이라면 최소한의 공정성은 유지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원석은 서평의 영향력에 대해 얘기하면서 "제가 읽어보니 영 아니었습니다. 당신만은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p.54) 라는 투의 서평으로 회사원 철학자 강유원이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신랄하게 비난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 거듭해서 등장합니다.


강유원의 비판적 서평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31101013630073004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유원은 고미숙의 책을 "덧붙여, 나는 고미숙의 책을 통독한 뒤 내다 바렸다."(p.55)고 적고 있습니다. 이 평에 대해 이원석은 "서평가로서 독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길 바란다면, 이러한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p.55)로 평가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미숙의 저 책을 아주 즐겁게 읽었고, 역사 속의 화석화된 인물이 아닌 친근감있는 동시대 인물로 느꼈습니다. 저 책을 통해 18세기 조선의 실학자들, 백탑파, 자주적 근대화의 가능성 등에 관심을 갖고 여러가지 책을 탐독하게 된 방아쇠가 되기도 했구요.


사실, 강유원의 비판 후에 고미숙 본인이 아닌 해당 책을 출판한 그린비의 유재건 사장이 같은 신문 칼럼난에 아래와 같은 반론을 실었습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60401012530073004


이원석의 책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고, 개인적으론 강유원의 가시돋친 독설에 가까운 감정글보다 유재건 사장의 반론이 한 수 위라고 봅니다. 판단은 링크의 글을 읽어보시고 각자 내리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저자를 적으로 돌리는 사례에 대해 자신의 서평이 아닌 강유원의 서평을 통해 자기 손에 피를 안 뭍히고 고미숙을 비난하는 반면 - "아주 별로야" - 자신을 보듬어준 서평가/출판가에 대해서는 가뜩이나 얇은 책에서 2페이지나 내용을 인용하며(p.104-105) 꼬리를 흔듭니다. - "아주 칭찬해"


해당 서평가는 한기호인데, 네이버 블로그 하던 시절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대해 그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저는 한창 애용하던 시점이라 댓글로 논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느낌은 남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꼴통 아재 정도. 그 이후론 이웃맺은 것도 끊고 아예 그의 글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모순3. 정작 자신의 서평은 허술하다


책에는 자신이 작성한 서평 사례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사례로 든 서평은 '본격서평은 아니다'(p.106) 라는 안전장치를 깔고 책제목을 쭉 나열하고 성찰의 과정은 생략한 결론 한 두줄로 마무리한 서평을 제시합니다. 물론 간단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자신은 많은 자료를 참고했다고 적고 있는데요. 제 느낌은 귀납적으로 결론이 도출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연역적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도서 목록을 주욱 적어내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독후감이냐 서평이냐


그럼 제가 쓴 이 글은 독후감일까요 서평일까요? 이원석의 분류에 따르면 서평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자격미달인거 같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발터 벤야민을 원용한 결론만 본다면 "저자와 독자의 위계가 사라진"(p.168) 공론장의 확산에 참여하는 의미에서 서평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그동안 서평이라는 단어 대신에 "책수다" 라는 표현을 즐겨썼습니다. 단순 독후감으로 자기 독백에 그치기 보다는 상대에게 수다를 떠는 형식을 취해왔기 때문입니다. 서평이라는 무게감을 감당하기엔 부족한 글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책을 읽고 수다로 마무리하니 개운하게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혜연.

1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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