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보고


나는 운명을 믿는다. 100%는 아니고. 반만. 내게 벌어진 어떤 일이, 혹은 내 앞에 서 있는 어떤 이가 운명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운명적'이라고 생각할 땐 대개 누군가를 좋아할 때였던 것 같다. 가망없어 뵈는 관계에 특별함을 주고 싶었던 걸지도.


어쩌면 그건 진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공산이 더 크다. 뭐, 그랬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만나고 헤어지진 않았을 테니까.


한편으로 나는 기시감을 자주 느끼곤 한다. 다른 말로 데자뷰. 피곤한 상태에서의 착시란 말도 있지만, 나는 그건 운명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반반. 기시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운명이든 기시감이든 그래, 모호하다.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한다고 한들, 남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논리적이지 않고 온통 감각적인 경험들인데다 그게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니까.


게다가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까, 뭐라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오직 경험해 본 이들만이 이해해줄 뿐이다. 아, 너도 그 느낌 받았구나. 마치 꿈과 같은.


그래서 '운명적'인 일이나 기시감을 겪고 나면 잠시 몽롱하달까?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 그 장소에 딱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순간 나는 매트릭스의 네오라도 된 기분이 된다.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짜릿함과 두려움을 마구 오가다가 나중엔 그 경계가 뭉개져 흐릿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때 겪은 사건이나 느낀 감정들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글쎄? 나는 반반이라 생각한다. '운명' 혹은 기시감 같은 게 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기라고 상상해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공상에 빠질 수 있어 재밌다.


영화는 그런 공상을 마음껏 하게 한다. 한 소년과 한 소녀의 꿈을 빌어 운명을 이야기한다. 소재는 뻔한데 어째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타키와 미즈하는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바뀐다. 아니, 영혼이 바뀐 걸까. 어쨌든 둘은 꿈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임을 확인한다.


그런 꿈 아닌 꿈을 꾸고 나면(혹은 현실 아닌 현실을 겪고 나면) 종종 기억을 잃은 채 모호한 상태로 현실을 부유한다. 어제는 곧바로 모호해지고 어영부영 오늘을 보낸다.


그리고 내일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타키와 미즈하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고 운명의 끈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못된 부분을 풀어 고치려고 한다.


온통 모호한 기분으로 보내는 두 사람. 그래, 삶이란 원래 그럴진대 여태 나는 기억에 의해 삶이란 명확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운명도 그렇다. 나는 종종 착각하고 있었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져 있어서 무서운 거라고. 혹은 그래서 단념하게도 한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거라고. 지금껏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젠 아니다. 반반. 정해져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운명은 끈이 아니라 한낱 실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주어진 그 여러 가닥의 실들을 엮어 내면 내 삶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걸지도. 하나의 끈으로.


그리고 서로 기억하지 못한 채 그 끈을 함께 엮던 이를 만날 지도 모른다. 잘하면 서로의 끈을 고쳐 맬 수도 있을 테다. 서로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왠지 낯이 익고 반갑다면 이렇게 물어봐야지.


거기 누구신지? 당신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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