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독살하는 스파이의 기술

Fact



▲11년 전인 2006년 겨울, 러시아 정보요원 알렉산더 리트비넨코(Alexander Litvinenko·43)가 누군가로부터 독살 당했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독극물은 ‘초소형 핵폭탄’으로 불리는 ‘폴로늄 210’이었다. ▲폴로늄 210엔 한번 감염되면 끝이다. 해독제도 없다. ▲2016년 ‘리트비넨코 암살 진상조사위원회’는 리트비넨코 암살 작전이 푸틴의 최종 승인으로 시행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View


리트비넨코 암살 사건을 통해 본 '스파이의 세계' #1. ‘심각하다.’ 그는 직감으로 느꼈다. 아직 별다른 이상을 감지하진 못했다. 하지만 명백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정보요원으로 잔뼈가 굵어온 그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당신은 독극물에 중독됐어.’ 국제도시 런던의 중심가 피카딜리 서커스. 러시아 정보요원이었던 그는 2006년 11월 1일, 일식집 ‘이추’에서 이탈리아 학자 마리오 스카라말라를 만나고 있었다. 마리오는 그에게 4쪽 분량의 영문 자료를 건넸다. 자료엔 러시아 신문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48)의 암살 배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안나는 그와 함께 푸틴의 체첸 정책을 비판해온 친구이자 동지였다. 그는 2006년 10월 7일 암살된 안나의 배후를 추적하고 있었다. ‘당신은 곧 죽을지 몰라.’ 그의 본능이 다시 말했다. 그는 일식집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때였다. 가슴이 울컥거리더니, 묵직한 것이 치고 올라왔다. 구토였다. ‘서둘러. 위 세척을 해야 해. 어서!’ 본능이 다시 외쳤다. 그는 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다리가 풀린 상태였다. “병원, 병원으로….”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가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이미 맥이 빠져 있었다. 그는 런던의 바르셋 병원으로 옮겨졌다. 위 세척을 받았지만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그의 몸은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3주 뒤인 그해 11월 23일, 그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1급 정보요원 리트비넨코는 왜 독살됐나?



#2.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리트비넨코(Alexander Litvinenko·43). 러시아 정보기관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의 1급 요원이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가려 뽑는다는 FSB의 정예 요원이 왜 2006년 초겨울에 런던에서 독살됐을까?



‘악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SB 요원이던 그는 “(당시 FSB 수장이던) 푸틴이 러시아 재력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암살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충격적인 증언에 세상은 경악했다. 그가 무사했을 리 없었다. 그는 곧바로 수감됐다. 부패 혐의였다. 그는 이듬해 풀려났지만 다시 체포됐고, 얼마 뒤 또 다시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세 번째 소송이 진행되던 2000년 10월, 그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아내 마리나, 아들 아나톨리와 함께였다.



영국으로 망명한 리트비넨코는 푸틴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02년 ‘러시아 폭파-내부로부터의 테러’란 책을 내고 “300명 이상 숨진 1999년의 러시아 아파트 폭발사건은 FSB의 자작극”이라고 재차 폭로했다. 푸틴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푸틴은 당시 수상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체첸 분리주의자의 소행”이라 주장하면서 2주 뒤 군대를 동원해 체첸에 쳐들어갔다. 2차 체첸 전쟁이었다. 다음해인 2000년 3월, 푸틴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크렘린 궁의 주인이 됐다.



리트비넨코에겐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한 명의 동지가 있었다.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새 신문’ 이란 의미)의 안나 기자였다. 안나는 푸틴의 체첸 정책에 강력히 비판했던 탐사 전문기자였다. 그러나 이젠 그녀도 사라지고 말았다.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2006년 10월 7일 살해된 것이었다. 누가 안나를 죽였을까? 리트비넨코는 그 배후로 크렘린을 지목했다. 그는 친구를 숨지게 한 범인을 쫓기 시작했다. 


암살 배후는 푸틴?



#3. 리트비넨코가 독극물에 중독되기 약 일주일 전인 그해 10월 말, 그는 마리오라는 이탈리아 학자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안나 암살의 배후를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리트비넨코의 친구는 “이메일에는 암살 대상자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며 “거기엔 안나는 물론 리트비넨코, 마리오, 베레조프스키가 포함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베레조프스키는 구 소련 붕괴 후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재벌이 된 사람이다. 푸틴 집권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이후 푸틴과 정치적 앙숙이 돼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리트비넨코를 도우며 푸틴을 비난해 왔다.



과연 누가 그들을 살해했을까? 죽은 사람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푸틴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리트비넨코의 가족과 친구들은 이것이 푸틴 정권의 독살극이라고 믿고 있다. 정보 관계자들도 “최고 권력자를 비난하고 다니는 인물을 러시아가 가만둘 리 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암살의 이유 역시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리트비넨코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배후로 지목하며 숨을 거둘 때까지 그를 저주했다. 그는 정신을 잃기 직전인 2006년 11월 21일, 구술로 유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유서를 통해 그는 자신을 시민으로 받아 준 영국에 감사한 뒤, 푸틴을 ‘너(You)’라고 부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너는 한 사람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네가 살아있는 동안, 전 세계의 원성이 네 귓속에서 계속 맴돌 것이다.”



리트비넨코의 아버지 월터 리트비넨코는 2006년 11월 24일, 아들의 유서를 들고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푸틴 정권은 극히 위험한 정권”이라며 “양심도, 도덕도 없는 푸틴 정권은 망할 것”이라고 극언했다.


살해도구는 ‘초소형 핵폭탄’ 폴로늄 210



#4.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리트비넨코의 모습은 언론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됐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3주 만에 머리털이 온통 빠져 버린 앙상한 그의 모습이, 불과 3주 전의 생기 넘치던 모습과 비교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진 것이었다. 의문의 초점 중 하나는 “대체 그를 살해한 독극물이 뭐냐”였다.



사건을 접수한 런던 경찰은 당초 “설명할 수 없다(unexplainable)”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됐다. 영국 보건당국(HPA)이 “리트비넨코가 사망하기 수시간 전, 그의 소변에서 ‘폴로늄 210’이란 물질을 검출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폴로늄 210은 원자로나 입자가속기를 통해 1년에 100g 정도만 생산되는 희귀물질이다. 이 물질은 자연 상태에서도 방사능을 내뿜지만 사람의 피부를 뚫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일단 인체 내부로 들어갔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력한 독성으로 내장과 백혈구를 모조리 파괴하는 ‘초소형 핵폭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콩알보다도 작은 초소형 핵폭탄을 러시아가 개발했을 것’이라는 일부의 관측이 이 사건으로 인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핵폭탄에 해독제는 없다. 폴로늄 210엔 한번 감염되면 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그래서 전 세계의 핵 시설을 대상으로 이 물질이 얼마나 추출되는지를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물질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면 입으로 먹거나 상처를 통해 투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리트비넨코가 모르고 이 물질을 먹었거나 누군가가 체내로 주입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리트비넨코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1급 요원이었다.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을 받은 청부살인자 아니면 독극물 전문가가 그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극물의 정체가 방사능 물질로 밝혀지자 런던 경찰은 폴로늄 210의 궤적을 추적했다. 리트비넨코의 전화 통화와 폐쇄회로 화면 등을 근거로 그가 다닌 지역을 따라가며 폴로늄 210의 특정 방사능을 추적한 것이다. 그러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리트비넨코의 집과, 그가 사건 당일 FSB 전 요원을 만난 밀레니엄 호텔, 피카딜리의 일식집 ‘이추’,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푸틴의 적인 베레조프스키의 사무실에서 모두 폴로늄 210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사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존 리드 영국 내무장관은 11월 24일 주영 러시아 대사를 불러 협조를 요청한 뒤, 모스크바 출장 조사를 선언했다. 리드 장관은 리트비넨코의 유서를 들이대며 “사방에 러시아 당국의 독살설이 퍼져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리트비넨코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관련설을 일축해 버렸다. 푸틴 대통령도 “리트비넨코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정치적 도발로 이용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보 관계자들은 이 사건의 배후로 푸틴 대통령 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지목했다. 하지만 리트비넨코의 주변 사람이 벌인 의외의 독살극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부에선 “푸틴의 정적이자 리트비넨코의 친구인 재력가 베레조프스키가 푸틴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친구인 리트비넨코를 죽였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러시아 측은 줄곧 베레조프스키를 사건 배후로 의심했다. 



영국 ‘리트비넨코 암살 진상조사위원회’는 2016년 “리트비넨코 암살 작전을 푸틴이 최종 승인해, 시행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진화하는 ‘살해 기술’



#5. 방사능 물질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정보요원이 사람을 살해하는 기술은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진보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흔히 사용되는 고전적 방법이 있다. 편지나 소포를 가장한 우편 폭탄이 그것이다. 미국의 스파이 전문가 H.키스 멜튼은 스파이 가이드(The Spy’s Guide, ‘루비박스’ 번역 출간)란 책을 통해 정보요원이 편지나 소포 폭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밝힌 바 있다. 그의 책에 따르면 편지나 소포 폭탄은 누군가를 살상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 방법의 하나라는 것. 



그는 “마분지 두 장 속에 뇌관을 넣고 둘둘 말아 폭발물을 만든다”며 “완성된 폭탄을 봉투에 집어넣고 입구를 막으면 봉투의 압박으로 폭탄이 터지지 않지만, 누군가가 편지를 개봉해 압박이 사라지게 되면 ‘쾅’ 하고 터지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편지 봉투가 딱딱하고 두께가 0.6~1.3㎝ 가량인 우편물이 배달되면 일단 의심해 보라”고 조언했다.



우편 폭탄보다 더 진일보한 방식도 있다. 립스틱 모양으로 생긴 총을 이용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쏘거나 독침을 만년필로 위장해 목표물을 제거하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 역시 이미 널리 알려진 ‘구태의연’한 방법이다.



이번에 불거진 리트비넨코 독살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 역시 첨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 KGB 런던 분실장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는 방사능 물질을 이용한 살해 사건에 대해 “오직 러시아 정보 당국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오직 한 사람만을 죽이기 위한 ‘초소형 핵폭탄’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미국 정보기관 CIA의 토니 멘데즈(Tony Mendez) 팀장은 ‘국제 첩보박물관(The International Spy Museum)’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목할 만한 증언을 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첩보박물관은 2002년 문을 연 스파이 전문 박물관. 증언에 따르면 현대의 스파이 과학기술이 이미 영화의 한 장면을 현실화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4~5시간쯤 공을 들여 다른 사람의 얼굴과 똑같은 가면 하나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착용하고 수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와 비슷한 것을 우리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다릅니다. 수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실제 작전에는 써먹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5~10초 안에 위장을 끝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작업을 완성했는지 여부는 밝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위장을 하고 백악관에 들어갔습니다. CIA 디렉터가 우리 기술을 대통령에게 보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통령과 CIA 책임자였던 조지 웹스터를 포함해 그 누구도 그가 제 아내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가면을 벗기 전까지 말이죠. 이 정도까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현대의 과학기술이 특정인의 목소리만 골라낼 수 있는 수준에 달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특정인의 성문(聲紋)을 컴퓨터에 입력해 놓으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감지될 때마다 기계가 알아서 스스로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자동 도청기’가 이미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첨단 스파이 기술은 이 단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성문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 모습을 입력시켜 놓으면 그 사람이 변장을 하든 안 하든, 어느 장소에 드나들든 관계없이 그 사람의 모습이 포착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그 사람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는 ‘인상식별(facial recognition)’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토니 멘데즈는 “3년 전인 2003년 미국이 이런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며 “이는 스파이에겐 대단히 위협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 방식은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팩트올은 기자들이 만든 첫 비영리언론으로, 상업광고를 받지 않습니다. 정직한 기자들의 ‘전국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뉴스와이슈 ・ 의료
기자들과 후원자들이 만든 비영리 언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기 위해 이름을 ‘팩트올’로 정했습니다. 팩트체크와 탐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