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야구in 김재박 (1)] 99%의 노력이 만든 야구천재


[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국내에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5년 전인 1977년. 당시 실업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7개의 타격 부문을 모두 휩쓴 괴물 타자가 등장한 것.


이 선수는 당시 기준으로 타율, 홈런, 타점, 도루, 3관왕상(타율·타점·홈런), 신인상,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쓸며 실업야구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대호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타격 7관왕을 달성하기 전까지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한 이 타자는 바로 김재박 전 감독이다.


지난해 12월 7년 간의 경기운영위원 임기를 마치고 사임한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재박 전 감독을 지난 14일 만났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거쳐 코치, 감독, 그리고 경기운영위원을 역임하며 국내야구계 전반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김재박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야구 인생을 돌아봤다.


▲ 왜소한 체격, 발도 제일 느린 선수


김재박 전 감독의 선수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그가 야구에 관해 천부적인 센스와 신체 조건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의 얘기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했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의 말처럼 그는 왜소했던 체격 때문에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입단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당시 야구부를 창단한 대광고등학교에 진학해 야구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 그를 데려갈 실업팀이나 대학은 없었다. 김 전 감독은 그때 상황에 대해 "'야구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다시 그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왔다. 마침 영남대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했고, 김 전 감독이 창단 멤버로 들어가게 된 것. 자신에게 찾아온,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김 전 감독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발이 느렸기 때문에 육상선수들을 찾아가 함께 뛰었다. 또 저녁에는 왜소한 체격을 극복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렸다. 이런 생활을 1년동안 했다. 1년을 훈련하며 키가 10c㎝ 이상 컸다. 피나는 노력 후 시합에 나가 활약을 하기 시작했고, 가을 대학 리그에서 리딩 히터가 됐다. 대학 대표팀에 선발돼 국제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야구가 비로소 잘되고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리그에서 우승도 했다."


대학에서 비로소 야구 실력이 만개한 김 전 감독은 졸업 후 새롭게 창단된 실업팀인 한국화장품에 들어갔고, 1977년 타격 7관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우게 된다. 김 전 감독은 당시 기록에 대해 "요즘 같으면 상 3개 정도는 더 받았을 거다"라며 웃어보였다.


▲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타격 7관왕을 달성한 김 전 감독은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돼 국제대회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섰다. 1977년 결승에서 미국을 5-4로 꺾고 우승한 슈퍼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 전 감독은 타격 3관왕에 올랐다.


이후 그가 전국민적 사랑을 받게 된 순간은 1982년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였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과 만나 8회말까지 1-2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의 타석부터 기적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개구리 번트'가 나온 것이다. 그는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8회말 1사 주자 3루 상황이었다. 일본 3루 수비가 생각보다 뒤에 있어서 찬스라고 생각했고 기습번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번트를 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볼이 저 멀리 빠져서 날아오는 거다. 나도 모르게 공에 배트가 따라갔다. 운좋게 배트에 맞은 공이 3루 라인 안쪽에 떨어져서 3루 주자와 내가 모두 살았다. 이후 한대화의 3점 홈런이 터지며 극적으로 승리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감격적인 경기였다."


▲ 프로 입단, 39세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었던 힘은?


1982년 국내에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MBC 청룡에 입단한 김 전 감독은 LG트윈스, 태평양 돌핀스를 거치며 프로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야구선수로는 은퇴 시점인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김 전 감독은 도루왕(1985년), 득점왕(1986년), 5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공수주에서 맹활약했다. 그는 39세까지 플레잉코치로 현역생활을 이어갔다.


김 전 감독은 당시 오랜 시간 동안 선수로 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꼽았다. 그는 "담배, 술을 전혀 하지 않았다. 커피도 안 마셨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39세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선수 때 후배들이 코치로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나는 노력끝에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김 전 감독이지만 선수시절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있다'였다. 김 전 감독은 "아마추어 때 간직했던 스윙폼을 프로에서 바꾼 것이 아쉽다"며 "은퇴할 무렵에 '스윙폼을 교정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기록을 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스윙폼을 교정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고백했다.


[SS야구in ②] 김재박 "감독 복귀? 항상 준비하고 있다"로 이어집니다.


superpower@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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