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

작가 김탁환은 소설 말미 작가의 말을 쓰면서 리심 이전과 이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한 줄의 언급에서 시작해 작은 단서를 하나씩 '주워 가며' 쓴 이 소설은 독자만 감동시킨 게 아니라 작가 본인조차 감동시킨 모양이다. 두지강가 적성 마을에서 태어난 관기 리심은 궁중 무희가 됐고, 고종의 성은을 받고, 파란 눈의 도깨비와 만나 '양이 귀신 들린 년' 취급을 받으며 파리로 건너간다.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 직전의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의 유일한 황인종 파리지엔'으로서. 스토리는 딱 그 정도다.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여기까지만으로도 뻔하다. 황제와 외교관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아름다운 무희라니. 김탁환은 이 정도의 사료에 발품을 더해 드라마를 짠다. 실타래를 짜듯 이야기를 짜 나간다. 감동적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에 밤을 샐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난 이 책이 재미있는 소설이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때로는 추천해야만 할 것 같다는 사명감마저 드는) 소설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뭔가 조금 꺼림찍하다. 왜일까. 아마 난 아직도 김탁환이 빅토르 콜랭을 랭보가 죽어갔던 병실에 입원시켰던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베두인 전사의 마을에서 '늑대와 춤을'처럼 살아가려 했던 리심의 모습에도 짜증을 냈던 모양이다. 리심을 입체적이고 아름다운 데다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힌 개화기 조선의 여성으로 그리려는 노력이야 이해가 가지만, 조금 오버했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방각본 살인사건'도 그랬다. 붓과 벼루, 꽃과 서화 외에는 별로 무거운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 서생 김진이 갑자기 의금부도사도 쩔쩔 맸던 악한들을 때려눕히는 초인적인 장면이 끝까지 입 속의 가시처럼 남아 있었던 거다. 친구들에게 김탁환의 소설을 소개할 때 난 늘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대중 소설은 대부분 천박해. 소설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품위가 없어. 한국의 소위 순수 소설은 대부분 지루해. 지가 좋아하는 얘기만 잔뜩 쏟아놓고 그것도 예술이라고 강변해. 김탁환의 소설은 딱 그 가운데야. 정말 재미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아." 리심은 어떻게 보면 이런 김탁환 소설의 절정이다. 하지만 '오버'가 자꾸 눈에 걸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소설의 재미이기도 하다. 혼자 행하는 예술이라, 타인의 시선 대신 스스로의 고집으로만 이야기를 끌어나가도보니 생기는 아집같은 스타일, 그게 매력일 수도 있을 테니까. p.s. 나는 이 책의 초판 1쇄를 샀다. 세상에 태어나 초판 1쇄를 (저자에게 선물받은 적은 있지만) 서점에서 사보기는 처음이다. 이보다 반가울 수 없다. 기회가 닿으면 저자에게 영광스러운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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