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배론성지제천 배론성지

황사영이 머물렀던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


분류 |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천주교/성지·조선시대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23 (배론성지길 296)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의 하나로, 원래 팔송정 도점촌(陶店村)이었는데, 지형이 ‘배의 밑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렸다. 정조 15년(1791) 신해박해 이후로 많은 교우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주로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현재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이 머물렀던 토굴과 최양업(崔良業, 1821~1861) 신부의 묘, 옛 성요셉신학교가 있다.


순조 1년(1801)에 천진암(天眞庵)에서 함께 공부하였던 권철신(權哲身, 1736~1801)·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승훈(李承薰, 1756~1801)·정약종(丁若鍾, 1760~1801) 등이 순교한 뒤 1795년에 조선에 들어온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1752~1801) 신부마저 새남터에서 순교하자, 당시 천주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은 김한빈(金漢彬, 1764~1801)과 함께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김귀동(金貴同)의 옹기점 뒤쪽 언덕에 토굴을 파고 지내면서 조선의 천주교 박해 사실을 베이징[北京]의 주교에게 알리고 교회의 재건을 호소하는 ‘황사영 백서(帛書)’를 썼다.

전달자가 조선으로 돌아오다가 체포되면서 황사영은 김한빈, 황심(黃沁), 김귀동 등과 함께 붙잡혀 순교하였다. 헌종 9년(1843)에 장주기(張周基, 1803~1866)가 박해를 피해 정착하였고, 철종 6년(1855)에는 프랑스인 메스트르(J.A.Maistre, 1808~1857) 신부가 이곳에 조선 천주교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고종 3년(1866) 병인박해 때 신학교가 문제가 되어 장주기, 푸르티에(Pourthie, 1830~1866) 신부 등이 순교하고 신학교가 폐쇄되었다.


또한 조선 천주교의 2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머물며 교리를 번역하다가 1861년에 순교한 뒤 뒷산에 묻혔다.


이곳은 조선 순조 1년(1801)의 신유박해 이후 한국 천주교의 성립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작가 | 장일규

출판 | 마로니에북스

책으로 꾸민 초록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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