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본초 (袁紹 本初) A.D.154? ~ 202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저 말을 저승에서 1,815년간 느끼며 이승을 내려다 봤을 인물..

삼국지연의 속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다 망한 찌질이로 그려진,

그러나 실제는 전혀 절대 그러지 않았던 안타까운 거물,

"원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오히려 수혜자를 꼽는 게 빠를만큼

피해자들이 범람하는데, 물론 작가인 나관중의 소설적 재미를

위한 각색도 적잖았지만 나관중이 수집한 여러 민담과 구전들

속에도 그런 사례들이 많다보니 꼭 나관중만의 가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아무튼 나관중이 저승으로 가자 멱살잡이 하고자 늘어선 줄의

앞열에 섰을 인물이 또 원소다.

그럼 왜 원소가 억울한지, 본래 역사속의 그는 어땠는지를

살펴보자.


참고로 오늘은 유독 지루하고 길지 모르며,

원소는 그의 역사적 자취 등에 비해 인기나 네임밸류가

현세에서 그닥이다보니 삽화도 그리 많지 않아서

첨부이미지를 많이 못 구했고, 그래서 글이 더 길다보니

오늘은 좀 더 평소보다 길게 느껴질 듯 싶어 양해를...T-T


전에 댓글보니 몇몇분들이 지루해도 좋으니 길게길게

써달라셨는데 이번 칼럼 재미없어도 내 탓 아니고

다 그분들 탓이당ㅎㅎ




삼국지연의 꽤 초반부터 등장하는 네임드군주이며,

삼국의 건국자 중 가장 그레이트한 조조의 생애에서

가장 위협적이던 라이벌


비록 조조가 자신일생 가장 큰 군세를 동원했고 또 날렸던

적벽대전이 있지만, 조조는 적벽의 패전으로 인한 데미지로

위의 기반이 흔들린 것은 아니였으나..

원소와의 관도대전은 비록 승리했을지언정, 전쟁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패망의 기로에서 스트레스 받았고 모든 걸 던진

혼신의 사투 끝에 승리했다.


"얼자(孼子)"

'얼자'가 뭐냐?

여러분들 '서자'는 들어봤지?(사극에서 하도 많이 나오니)

알기 쉽게, 여러분들의 거의 대부분은 여러분 아빠의

첫째(이자 유일한) 아내의 자식들일텐데 그럼 '적자'다.

(그리고 여러분들 존재 자체가 부모님들께 적자)

아빠의 둘째(또는 그 이하 순) 아내, 즉 첩의 자식이 '서자'.

(서자의 대표적 아이콘으로는 홍길동이 있지.)

그럼 얼자는 뭐냐면, 둘째나 셋째 아내가 아닌...

"여자노비의 아들"

여자노비, 다시 말해 여종의 아들이라는건데...

노비도 천한 마당에 노비아들인들 어떻겠나. ..


"사대삼공의 가문"

수식어가 붙는데, 이는 원소의 고조부부터 원소의 부친까지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


요즘에 비유하면 고조부부터 부친까지 4대가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경제부장관 등을 역임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사도는 정치와 행정전반, 사마는 군사, 사공은

국가전체의 각종 토목건축 등을 맡는 자리였기에,

사공은 지금으로 치면 국토교통부지만 현세 헬조선의

국교부와 후한의 그것의 위신차는 넘사벽이였기에 사공은

지금으로치면 국토교통부 + 산업통상자원부 + 행정자치부를

합친 것 이상의 자리였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아무튼 원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못할 어마무시한

명문가였고, 저런 배경지식 없이 사대삼공이라면 의례,

'그냥 좀 사는 집 아들인갑네~' 했을 원소는 금수저를 넘어

플래티늄과 다이아도 부족.. 거의 비브라늄수저로 표현된

것이였다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숟가락, 젓가락 이상 무거운 건

안들어봤고 한 번 입은 옷은 안입고, 맨날 파티나 여는

패리스 힐튼스러운 삶을 살았을 거 같지만....

그건 위에서 언급한 적자~서자일 때고, 원소는 말 그대로

'얼자'여서 어릴 때는 그냥 결국 노비나 진배없는

개같은 어린시절 보냈다.

"낙양"

집안이 집안이니만큼 응당 수도이자 최대도시태생인

차도남 원소는 출생이 154년이란 설이 지배적이지만,

명확친 않은데,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노비의 아들인지라...

저런 초명문가에 노비가 한 둘이였겠으며,

그런 노비들의 출산까지 디테일하게 카운팅은 않다보니

사망일은 202년 6월 28일

출생일은 그렇지가 못 하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원소의 부친은 삼남이였는데

장,차남이 요절.. 원소의 부친도 적자는 커녕 서자도 없었던

모양인지 원소는 얼자인데도 청년기부터는 종손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저건 후한서 본문 내용이고 배송지의 주석에 의하면

원소의 부친이 차남이라 부친과 그 위 장남이 요절하여

종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몰랑~


하여간 야망큰 원소에게 자신의 출신은 크나큰 핸디캡이

아닐 수 없었고, 이걸 좀 타개해 보고자 원소는 부친의

"3년상"


3년상이 무엇인고 하니,

논어(맞나?)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나 부모의 일방적

보살핌을 벗어나 스스로 걷고 먹고 말하고 하는데까지

3년이 걸리기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걸 기려 부모의 묘를

3년간 지키며 술,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부모묘소에 삼시세끼

차려 올리고 절하며 상복을 입고 지내는건데..

써놓고보니 뭔가 간단해 보이지만, 극도의 멘탈과 체력을

요하는 고행의 길이였다고 한다.

다 치우고 조선의 12대 왕 인종이 부친의 3년상을 치르다

거식증에 의한 영양실조와 과로 등으로 붕어하셨으니

3년상의 난이도가 짐작된다.

왕도 저럴진데, 하물며 일반백성들은 오죽할까...

3년상치르다 아들이 지쳐죽고 그 아들이 다시 3년상하다

또 지쳐죽어 대가 끊기는, 무엇을 위한 3년상인지 싶은

일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원소는 자기 부친의 정실인 적모의 3년상 후,

연이어 자기가 기억도 못할 어린시절 돌아가신 부친의

상을 너무 어릴 때라 제대로 못 치렀다며 다시 3년상을 치뤄,

"6년상"

(48년 살았으면서 인생의 8분의 1을 상 치르는데 씀;;;)




당시 저 6년상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위에 기술했듯 워낙에 3년상이 고되다보니 실상 제대로

3년상을 하는 이가 손 꼽던 시절에, 하드코어 3년상을

FM대로만 해도 굉장한데, 어린시절 돌아가셔 못 챙긴

부친 3년상까지 굳이 치뤄 총 6년상을 지낸 울트라효자!

게다가 적자도 아닌 얼자에 심지어 엄마는 친모도 아닌데!

그것도 얼자일지언정 종손대우 받는 명가의 자제가!


역사가들의 추측으로는 저 6년상은 그냥 원소가 개효자라

그런게 아닌, 자신의 얼자컴플렉스를 벗기 위한 6년의

몸빵투자로 보며, 원소의 계산은 적중!

상 치르는 6년간 온갖 전국의 유력인사들은 3년상, 6년상

치르는 그 대단한 명가자제가 궁금하다며 묘역일대가

마비될만큼 모여들었다고 하며, 6년상을 치르며 원소의

인적네트워크와 명성은 만렙

지긋지긋한 6년상 마친 후, 바로 낙양으로 달려간 그는

당시 조정실세인 십상시도 겁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내며

세력을 모으다 대장군 하진의 라인을 타고 관직에 나갔고

십상시축출을 주장하며 당시 십상시무리와 함께

조정실권 양대산맥이던 하진세력의 명실상부 No.2가 된다.


원소주도로 이루어지던 십상시실각 프로젝트 와중에

위기 느낀 십상시는 하진을 암살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를 계기로 원소는 십상시 및 친십상시세력을 올킬하나

동탁에게 천자의 신변을 빼앗겨 정권장악에는 실패...


이후 당시 천자인 영제를 폐위 후, 외척이 없어 다루기 쉬울

진류왕(헌제)을 제위에 올리려는 동탁과의 마찰이 생기자

"기주의 원소"

된 것이다.



일단 기주의 발해군으로 도망은 왔지만

낙양에서 나고 자란 네이티브 낙양지앵 원소는 기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원소를 감시할 요량으로

동탁이 파견한 기주태수 한복은 매의 눈으로 원소를

살피며 겐세이의 연속이였다.

삼국지연의나 게임만 한 분들은 삼국지 시나리오 초기에

등장하는 약소군주 한복이 사실 원소의 상급자였다는거

잘 모르셨을 듯ㅎ


허나 동탁도 개의치않던 원소인지라 한복을 개량한복

취급해 버리며 그간 쌓은 명성을 이용해 인재와 군사를

모으는 한편, '개객끼 동탁을 다구리 놓자'며 전국으로

격문을 띄웠고 18로의 제후들이 모여 이것이 바로

"반동탁 연합군"

한 번 달래보려 오히려 벼슬도 줬건만, 그 벼슬을 지렛대로

오히려 자신에게 덤빌 세를 모으자 딥빡친 동탁은 낙양에

있는 원씨일족을 싹 다 올킬...


물론, 원소는 이를 예측 못 했을리 없음에도 반동탁연합을

주도한 것을 보면 자신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서라면

거칠것없는 냉혈한임을 알 수 있고 앞서 언급한 6년상도

역시 목적이 아닌 수단이였음을 알 수 있다.

원소는 사대삼공의 명문가 공자 + 6년상 지낸 슈퍼효자 +

그간 쌓은 인적네트워크 + 슈퍼빌런 동탁에게 덤빈 용자 +

하진세력의 No.2 + 18로 제후의 응집자 등등의 온갖

버프덕에 만장일치로 반동탁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으며 민심 또한 대의를 위하려다 일가친족을 모두

잃은 동정표까지 더해져 원소의 동탁 향한 원기옥에 힘을

실어줬고, 원소는 이런 위세를 등에 업고 반동탁을 넘어..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당시 동탁이 영제를 폐위하고 즉위시킨 9살의 헌제는

동탁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한황실 또한 그런 동탁과

헌제의 명분없는 괴뢰정부라 정통성을 인정 못 하니

그 무렵 상당한 인망을 얻고 있던 황족인 "유우"를 천자로

추대하여 새로운 정권을 만들려는 것이 그것이였다.


물론, 원소라고 순수한 의도는 아니였고...

비록 덕망은 높으나 정치,군사적으로는 무능에 가까웠던

유우를 옹립해 프랜차이즈화하여 자신이 후한이라는

판을 자신 위주로 다시 짜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


이미 중국 전역에서도 동탁의 폭정은 뉴스와 인터넷이 없는

시절임에도 자자했고 그런 동탁이 멋대로 골라 앉힌 헌제와

그의 한황실도 정통성같은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다들 별 대응책 못 찾던 터에 원소는 누구보다 먼저

대세를 뒤집어 볼 공격적 전략을 시도했던 터였는데,

원소 & 유우와는 상극이던 공손찬과 역시 자기 위주 아니면

다 싫고 같은 집안 얼자새끼가 나대는 것에 아니꼽던 원술,

아직 이때만 해도 한황실에 대한 충심이 남아있던 조조 등..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다 떠나서 정작 당사자 유우가 적극 거부하여 끝내 무산.

유우는 진정 대인배답게 한황실에 대한 도리와 예를

져버릴 수 없다며 오히려 원소에게 황실에 대한 진심의

충성을 권유 하는 등......

아무튼 원소의 플랜A는 이렇게 나가리.



그 후 동상이몽의 교과서와도 같던 18로 제후들의

반동탁 연합이 용두사미가 되어 근거지인 발해로 컴백한

원소는 거슬리던 한복의 기주를 따먹고 본격적인

하북강자의 포지션을 향해 나아갔으며, 원소의 모사진들 중

핵심인재인 전풍과 저수도 이 때 한복의 수하에서,

원소측으로 넘어오게 된다.



"공손찬"

공손찬은 정말 여러분들이 단순 연의만 읽어 아는

그런 양반이 아닌 진짜 굉장한 강자로...

황건의 잔당, 오환, 흉노 할 거 없이 공손찬이 이끄는

기마군단이 지나가면 시체월드가 되었고

30여 만의 황건잔당들을 단 2만의 기병대로 지워버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강려크한 공손찬을 끝내 꺾고 세력을 키워가는 와중...


"동탁의 사망"

당시 원소측 참모진에서는 동탁 사후 장안을 탈출,

낙양으로 돌아가던 헌제를 옹립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왔었다.


하지만 원소는 이미 헌제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다른 황족으로 천자를 갈아치우려던 이라 거부....


이후, 헌제를 끼고 국정농단으로 엄청난 실익을 챙기는

조조를 보면 저 당시 원소의 판단이 이해가 안가지만

원소로서는 헌제를 옹립못할 조조와는 다른 사정이 있던게,

당시 조조의 측근들은 대개 조조의 어린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또는 조가와 하후가의 친족들이며 조조의 근거지는

조조가 나고 자란 곳이 가까워, 헌제를 옹립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원소는 달랐다.

일단 근거지인 기주는 원소의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였고

동탁에 의해 원가 대부분이 멸살 당해 측근들 중

친족도 거의 없는데다 원소세력의 주요인사들은

아직 완전히 원소에게 녹아들지 않은 기주나 여타 지역

출신들이 많은터라...

괜히 헌제 데려왔더니 씨부랄 지는 원소가 아닌

한의 신하라느니, 한황실에 충성한다느니 이지랄들

해버리며 기주 내부에 원소파 VS 헌제파 이래 버리면

난감의 정점을 찍을 게 자명했기 때문.


심지어 원소가 그간 큰 명분 얻은 이유 역시

반동탁의 수장이였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반동탁 오야가

그 동탁이 앉혀놓고 굴려 먹던 천자를 모신다면 그야말로

가오 날아가는 일인지라, 그간의 명분이 죄 박살나기 때문.


더구나....

충격인 것은 원소는 애초에 플랜A로 유우의

천자추대가 나가리되자 플랜B로 여차하면 눈치봐서

자신이 제위에 오를 야심을 갖고 있던 자였기에

여러모로 헌제옹립은 원소로서는 택할래 택할 수 없는 길.

결국 헌제 옹립 이후부터 황실의 권위와 정통성 등에 업고

파죽지세로 세력 키우던 조조와 유, 병, 기, 청주를 토대로

하북의 기반을 확고히 한 원소는 피할 수 없는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원소는 천자를 등에 업은 조조를 상대하자니

이래저래 불리할 수 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이를 역이용!


조조를 도리여 천자를 억압하고 핍박하는 역적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여기에 환관의 자제라는 조조의 핸디캡을

버무린 프로파간다로 조조를 맹비난 하는데,

이는 황실의 정통성을 짊어진 자를 그러지 못한 자가

오히려 역명분 갖고 공격하는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원소 사후 유비도 이 스타일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써먹는다.


게다가 실제로 조조는 헌제 옹립 당시....

이미 황실과 한에 대한 충심은 엿바꿔 먹은지 오래라

헌제를 '도구'로만 인식하여 단물을 빼먹던 터였기에

원소의 이 정치적 공세는 유효타를 냈다.


게다가 당시 원소의 하북 4주에서 징집된 11여 만의

대병력은 당시 전 중국 통틀어 최대병력이였고 이에 맞선

조조군 총병력은 4~5만 여에 그쳐 전력차는 명백!


참고로 그 당시 인구는 오히려 조조의 통치지역이

원소 통치지역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다만 조조의 지역은 동탁 → 이각 & 곽사로 이어지는

폭정과 숱한 전란으로 안정화가 안된 반면...

원소의 지역은 비교적 일찍 큰 내부적 전란없이

행정적 안정이 되어 조조의 배 이상 많은 병력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관도대전 앞서 원소군 최고의 행운은

"유비"

병력도 몇 없는 잡몹 수준이였으나...

헌제의 밀명에 동승의 주도로 조조를 제끼려다 실패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유비의 합류는

천자가 없음에도 오히려 천자옹립의 조조보다

더 큰 명분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확실히 병력과 물자, 명분면에서 크게 앞서던 원소였지만

전풍, 저수, 신평, 곽도, 심배, 봉기, 허유 등

원소의 참모진들은 개개인의 면모들은 화려하나

서로 자기가 공 잡으면 슛 쏠라 드는 올스타전 멤버같은

구성이였기에 전혀 융화가 없었고

조조와의 대결구도 또한 서로 자기 마음대로 굴려 드니

이미 이때부터 슬슬 망타의 조짐은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원소군의 주력 장수는 안량과 문추 그리고

순우경같은... 무력은 굉장해도 전략기재는 집에 놔두고 온

장수들이라 역시 좋지 못 했다고 본다.




결국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병력의 8할 가까이를 잃고

기주로 돌아와서는 강한 반전론자로서, 전쟁 전부터

재수없는 소리한다며 원소가 투옥시킨 기주 최고의 책사

전풍을 죽인다.

그런데 이건 그냥 빡침의 화풀이가 아니였고...

자신이 큰 전쟁에 패했고 이에 앞서 기주출신의

큰 호족이자 명망 있던 책사가 반전론을 펼쳤다면,

패전 후 그를 주축으로 한 기주파의 세력강화는

막을 길이 없어 세력 내부의 파벌형성 및

군주의 지위약화를 초래하기 때문이였다.

연의 속에서의 충분한 전후정황설명이 없는 경우도 많고

여러모로 조조 띄우기를 위한 폄하가 많아 그렇지,

원소는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최고의 정치고수였고

상당히 정치공학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군주였다.


"정치"

부분의 정의가 왜곡될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내에서의

'정치'의 능력치는 엄밀히 말해 '행정능력'을 말한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 다양하고 확실한 방침을

정하고 그에 따른 기준과 시스템을 만들어 업무를

처리하는 그런 부분들을 삼국지 게임에서는 정치라고

표현 해놨다..


하지만 진짜 정치란,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

상대를 이기고자, 상대를 설득하거나 상대와 타협하고자

몇 수 뒤를 가늠하고 내 이득을 취하거나 손해를 줄이고자

다양한 상황들과 대인관계를 교차계산하는 복잡한

함수를 푸는 과정이 바로 진짜 정치다.


원소는 이 부분에 있어 일말의 감정도 도덕도 양심도 없이

오로지 철저히 정치공학적인 판단을 우선하는 정치기계로,

그런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 위한 요소들인 외모, 언변,

쇼맨쉽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예컨데 원소는 저 첨부삽화들처럼 전장이건 어디건

갑옷에 투구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거대한 군세의 지도자인만큼 본인이 직접

화살 피하고 칼로 적을 벨 일은 없기도 했지만...

자신의 위엄을 뽐내고자 화려한 옷과 관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요샛말로 상당한 간지가 흐르는 멋진 외모였다고 하며,

말투나 눈빛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고 한다.



원소의 패인들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후계자 문제"

원소는 사치와 허세가 심하고 난폭한 장남 원담보다

외모가 수려하고 실속있는 성격의 셋째 원상을 총애했다.

그래서 원담은 청주로 보내고 원상은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사실상의 후계자수업을 했는데...

이를 두고 저수는 원담을 청주로 보내는건 재앙의 시작이라

경고했을 정도였고, 결국 저수 말대로 되었다.

원담은 청주로 내려감과 동시에 사실상 독자세력이

되어 원소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아끼는 원상은 당시 아직 미성년이라 많이 어설펐다.

원소 사후, 밉보였으나 장성한 장남인 원담 지지파와

아직 어리고 삼남이지만 원소가 후계로 정한 원상

지지파로 원소세력은 분열된다.



"2인자의 부재"

원소는 아들들과 병주를 맡긴 조카 고간을 제외하면

친족도 없었고 책사그룹내에서 가장 유력인사들인

전풍과 저수와는 노선도 많이 다른데다

기주외인이였던 본인과 달리 오래전부터 기주에서

터줏대감이던 둘을 굉장히 경계하여 그 둘을

견제코자 다른 책사들에게 무게를 배분하고자 했는데

이게 부작용나며 원소의 책사들은 삼국지를 통틀어

한 군주 휘하의 가장 단결 안되는 책사그룹이 되었다.



놀랍게도 위의 정치적 판단과 외모 및 쇼맨쉽 덕인지

관할영지 내에서의 백성들과 군사들의 원소를 향한

우러름은 대단했다.

원소가 죽자 기,청,유,병주의 수 많은 백성들이 눈물바다

이루고 원소의 장례를 손수 지내는 이들도 적잖았다고 한다.

그리고 원소의 사망 후에도 원소의 세력은 흩어지지 않고

원소의 아들들을 따라 조조에 끝까지 항거하다

세 아들이 죽고 나서야 온전히 조조에게 편입되었다.


참고로 원소는 관도대전 이후 크나큰 상실감을

앓다 죽었는데, 사망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보아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쇼크사로 보여진다.




장단점과 그의 일대기 등을 통틀어 볼 때

절대 우유부단한 이가 아니였고 리더쉽과 카리스마,

결단력이 대단했고 정치적 술수가 엄청났던

조조 이상의 간웅이며 야망가였다.

철저한 자신의 1인 독재체제 구축과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 백성들과 타세력 대한 선전활동 등...

지금으로 치면 구소련의 스탈린이나 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여러모로 스타일이 비슷했다.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