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꿈을 쫓은 게임 개발자들

회사 하나가 5년을 버티면 중견으로 인정받습니다. 10년을 버티면 장수했다고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여기, 올해로 결성 17년 차를 맞이한 독립 개발팀이 있습니다.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 <릴리스: 두 개의 달>, <송 오브 더 월드> 등을 만든 개발사 '팀 D.T.R'의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인디 지원 프로그램 '헬로인디즈'에 선정돼 화제가 됐죠.

PC 통신 시절, 취미로 게임을 만들던 동인팀은 17년 후, 직접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까지 하는 독립 개발사가 되었습니다. 강산이 변하고 남을 시간이 흘렀어도, 팀과 팀원들이 사회에서 여러 아픔을 겪었음에도 D.T.R의 게임엔 항상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과연 D.T.R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17년을 버틴 것일까요? D.T.R의 윤선, 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오른쪽부터 팀 D.T.R의 김윤선 대표(이하 윤선), 서상균 PD(이하 쿄)

팀 D.T.R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야기꾼'입니다. 팀의 데뷔작인 <티어즈> 시리즈는 물론, 이후 선보인 <릴리스: 두 개의 달>,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송 오브 더 월드> 모두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릴리스: 두 개의 달>은 런 게임인데도 이렇습니다.

D.T.R은 PC 통신 시절, '쿄'와 프로그래머 '스네일'이 만든 <티어즈 - 콘택트>와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로부터 시작된 팀입니다. 특히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는 꿈을 이루기 불가능한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 많은 유저들을 울렸죠. D.T.R의 대표이자 아트디렉터인 '윤선'은 이 게임에 반해 D.T.R에 합류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D.T.R의 색을 좋아하는 이들이, 혹은 팀원들과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 지금의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D.T.R은 마음 맞는 사람들이 취미로 게임을 만드는 동인팀이었습니다. 멤버들은 저마다 일하는 회사가 있었고, 만들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다같이 모여 짬짬이 만드는 식이었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왠지 모를 갈증이 느껴졌습니다.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 수 없으니까요. 당연한 얘기죠. 회사에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 나아가 회사 전체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적당히 타협하며 만들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생이 너무 재미 없는 거에요. 어느 순간, 왜 게임을 만드냐는 고민이 들 정도로요."

D.T.R의 PD이자 이야기꾼 '쿄'의 이야기입니다. 마침 D.T.R의 멤버 대부분이 여러 이유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멤버들은 설사 빨리 죽더라도,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10여 년 간 유지되던 동인팀은 그렇게 독립 개발사가 되었습니다.

▲ 팀 D.T.R의 대표작 중 하나인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

# <티어즈>부터 <송 오브 더 월드>까지, 17년 간 만든 '약자'들의 이야기

그렇다면 D.T.R 멤버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은 어떤 게임일까요? '윤선'은 유저들에게 이야기를, 나아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게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멤버들이 게임을 접한 90년대는 이야기의 천국이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나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이 쏟아졌습니다. 멤버들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체험했고 감동받았습니다. D.T.R의 꿈은 이런 경험을 요즘 유저들에게도 전하는 것입니다. 

D.T.R의 작품 대부분은 '소외된 약자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는 태생과 환경 때문에 꿈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가 주인공이고, 웹툰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뒤떨어지는 아이가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송 오브 더 월드>의 어떤 지역엔 '형제복지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요.

'쿄'의 꿈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유저들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나아가 이런 것들이 쌓여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는 것입니다. 팀 D.T.R이라는 이름도 이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Dream To Reality)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이런 성향 때문에 운동권이냐는 질문도 많이 들어요. (웃음) 하지만 저희는 이런 메시지를 담는데 게임만한 그릇이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게임에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잖아요."

▲ 최신작 <송 오브 더 월드>도 무게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 독립 개발사로서의 첫 작품, 그리고 첫 서비스 종료

D.T.R의 이런 바람은 모바일 중심의 요즘 트렌드와는 어울리기 힘든 꿈입니다. 실제로 D.T.R은 2013년 출시한 <릴리스: 두 개의 달>에서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릴리스: 두 개의 달>은 당시 유행하던 다른 런 게임과 달리, 스토리에 큰 비중을 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암울한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주인공 캐릭터인 사생아 공주와 기억을 잃은 전사, 시간을 건너 뛴 엘프 사이에서 얽히고 설킨 이야기는 열렬한 마니아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토리에 신경 쓰는 유저는 극소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의 유행은 런 게임에서 RPG로 바뀌었습니다. D.T.R의 5명 전원이 밤잠 줄이며 업데이트에 매달렸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퍼블리셔는 사업적인 이유로 서비스 종료를 결정합니다. D.T.R이 <릴리스: 두 개의 달>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렇게 끊겼습니다.

"서비스 마지막 날, '쿄'님과 마무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컴퓨터에서 '그래 우리 함께'라는 곡이 나오는 거에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둘 다 펑펑 울었어요. 정말 자식 같은 게임이었고, 여전히 게임을 좋아해 주시는 유저 분들도 계셨거든요. 얼마 전에 유저 분들께 손 편지 썼던 기억이 훤한데. 그런데 이렇게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이 너무도 속상하고 죄송했어요."

"'자기 게임에 애착 가지는 것은 프로답지 않은 태도다'라는 얘길 종종 들었어요. 근데 그러지 못하겠더라고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만들었고 그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모였잖아요. 그런데 내 이야기가, 거기서 사람들이 만든 추억이 사라지는데 어떻게 마음이 멀쩡해요. 그 일 이후, 퍼블리싱 계약이 꺼려졌어요. 만에 하나 불행한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생겨도, 이젠 끝까지 들이 받고 어떤 결론이든 직접​ 내리고 싶거든요."

▲ 런 게임이면서도 스토리에 굉장히 많이 신경썼던 <릴리스: 두 개의 달>.

# 전작 유저들을 위해 만든 게임 <송 오브 더 월드>

지금 서비스하고 있는 후속작 <송 오브 더 월드>는 이런 아쉬움 때문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릴리스: 두 개의 달>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완결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전작을 사랑해준 유저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처음 <릴리스: 두 개의 달>을 냈을 때, 일일 평균 플레이 타임이 1시간 정도 나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런 게임이니까요. 그런데 자료를 받아보니 첫 날이 90분, 나중에는 6시간까지 나오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패턴에 당황도 했지만, 그보다 우리 게임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즐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서비스를 종료하니 그 사실이 너무도 사무쳤고요. 그분들을 위한 게임을 다시 만들고 싶었어요."

<송 오브 더 월드>는 <릴리스: 두 개의 달>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의 시점에서 그린 이야기입니다. <릴리스: 두 개의 달>에서 호평 받은 이야기와 세계관 디테일은 더욱 풍성해졌고, 런 게임이었던 전작을 RPG처럼 즐겼던 유저들에게 보답하고자 이번 작품은 RPG 요소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또한 이번에는 D.T.R이 서비스까지 직접 담당합니다.

▲ 전작의 이야기를 조금 다른 시점에서 그린 <송 오브 더 월드>. 이 사실을 안 전작 유저들은 이번 작품에선 공주님(전작 주인공)이 행복해지냐고 개발진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 않던 일까지 하려니 기쁨은 10, 괴로움은 90입니다. 멤버가 5명에 불과하다 보니 서비스를 위해 모두 밤잠을 줄이며 평소 손도 대지 않았던 일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윤선'은 고객관리도 담당하고 있고, 이야기꾼인 '쿄'는 졸지에 서버와 DB까지 만지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서비스하는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 서버 툴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프로그래머인 '스네일'이 독박(?)을 쓰고 있었겠죠. 

이런 고생을 해 부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멤버들에겐 아직 밥보다 라면이 더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D.T.R이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은 다른 데선 얻을 수 없는, 90의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10의 기쁨 때문입니다.

"어떤 고생을 해도 '재미있는 게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얘기만 들으면 다 잊혀져요. <송 오브 더 월드>를 서비스 하기 전, 개발비가 모자라 소셜 펀딩을 했어요. 솔직히 10만원이나 모이긴 할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전작 유저 분들이 후속작 나왔다며 게임 친구들에게 링크를 돌리셨더라고요. 정말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더라고요. 이렇게 우리 게임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퍼블리셔가 있었던 때에 비하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죠. 이제는 우리가 밤새 게임과 서버를 체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마음은 이쪽이 더 편합니다. 우리 게임을 우리가 보살피는 것이니까요.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엔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행복 아닐까요?" 

이젠 개발자에서 운영자까지 겸하고 있는 '윤선'과 '쿄'의 이야기입니다.


# <톰 아저씨의 오두막>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팀 D.T.R이 세상에 태어난 지 17년이 지났습니다. 동인팀으로 13년을 보냈고, 독립 개발사론 4년 째입니다.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습니다. <송 오브 더 월드>를 계속 다듬어 유저들에게 더 좋은 게임을 안겨 주고 싶고, 비주얼노벨을 만들어 스팀이나 콘솔 유저들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갈 길은 멉니다. 당장 해야할 것도 잔뜩이니까요. 눈 앞에 있는 <송 오브 더 월드>의 라이브 서비스도 멤버들에겐 만만치 않습니다. 서비스가 익숙해지면 소홀했던 구작 지원도 시작해야죠. 지금도 '윤선'의 마음 속엔 여력이 없어 손도 못 댄 <티어즈 - 아홉 개, 열 개> 모바일 버전의 버그가, 서버가 날아가 플레이못하는 <티어즈 컨택트>의 리메이크가,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돌처럼 굴러 다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인 시절부터 꿈꾼 '세상을 바꾸는 게임사'라는 꿈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남북전쟁의 시발점이 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같은 작품을 만들기를 꿈꾸고 있죠. 다만 동인팀에서 독립 개발사로 전환을 하며 이에 앞서 조금 더 현실적인 꿈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꺾이고 타협할지라도, 이런 마음 만은 잊지 않길 바라는 꿈이요.

"다들 사회 경험을 할 만큼 했으니까요. 한 달에 치킨을 한 번 먹을 수 있는 생활을 꿈꾸는 입장에서 '일편단심으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라고 꿈꾸는 건 조금 현실성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저흰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잊지 않는 것입니다. 잊지만 않으면 언젠간 갈 수 있으니까요. 아, 물론 한 달에 한 번 치킨 먹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생활도 꿈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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