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드지아 동굴 도시 | 그루지야, 아스핀드자 | Vardzia Cave City

산허리를 파내어 지은 도시

그루지야의 외딴 시골 땅에, 소(小)카프카스 산맥의 육중한 절벽 표면을 파서 만든 복잡한 구멍들로 이루어진 벌집 같은 형상이 무크바리 강변으로부터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올라 있다. 이는 12세기에 이곳에 형성된 광대한 동굴 도시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흔적이다. 외부적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장관이지만, 바위투성이 표면 뒤에 숨겨진 도시의 야망과 구조에는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무슬림 투르크인의 침입이 항상 골칫거리였을 때, 그루지야의 기독교 왕 기오르기 3세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궁경 가까운 곳에 있는 바르드지아를 군사 요새로 삼고자 계획했다. ‘바르드지아’라는 이름은 기오르기 왕의 딸인 타마르가 동굴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자 외쳤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오르기가 1184년 죽자, 타마르가 이 계획을 이어받아 바르드지아를 요새화된 수도원으로 변모시켰다. 여왕이 된 그녀는 그루지야가 강력하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위대한 시기를 다스렸으며, 바르드지아는 그녀의 미래상을 표출하는 데 잘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다. 바르드지아는 그 동굴 건축으로 알려진 가장 뛰어난 장소였다.


전성기에 다다랐을 때 이 도시는 기적적인 창조물로 여겨졌으며, 열세 단에 이르는 수천 개의 방은 5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안에 연회장, 마구간, 도서관, 빵집, 목욕탕, 와인 저장고, 그리고 웅장한 주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북쪽 벽에는 타마르와 그녀의 아버지를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정교한 관개 체계가 물을 공급해 주었고 경작 중인 계단식 밭에도 물을 주었다. 1200년대 후반에 지진이 일어나 도시 일부가 파괴되었고, 겉으로 드러난 출구는 한때 보이지 않게 가려졌으며, 1500년대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침략해 약탈을 일삼아 이 도시의 멸망을 가속화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도달하기 힘든 곳에 있는 이 유적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은 채 감춰져 있었으나, 복구 작업을 위한 최근의 노력과 홍보로 인기가 상당히 높아졌다. AK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작가 |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출판 | 마로니에북스

책으로 꾸민 초록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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