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성지’ 이스라엘의 교훈…정주영 말고, ‘요시 바르디’ 배워라

[스타트업런웨이] 한국-이스라엘 합작 액셀러레이터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의 박대진 대표가 말하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


이스라엘은 서쪽으론 지중해와 맞닿아 있고 나머지 삼면은 적대적 아랍 국가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나라다. 인구는 한국의 6분의 1 수준인 860만명. 총면적은 2만770km²로 경상도(약 3만km²)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수 시장이 작은 데다 주변국과 달리 석유도 나지 않아 ‘자원 빈국(貧國)’으로도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엔 ‘스타트업 선진국’이란 타이틀이 늘 따라붙는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인 스타트업은 6,000여곳. 인구 1,400명당 1개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은 총 94곳(올해 2월 기준)으로 미국·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비율에서도 수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종교 성지’에서 ‘창업 성지’로 떠오른 이스라엘. 좁은 내수 시장, 척박한 천연자원 등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이스라엘 합작 액셀러레이터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이하 ‘KSP’)의 박대진(나이·사진) 대표는 비즈업과의 인터뷰에서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집결지가 형성되며 창업 생태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며 “그 생태계가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한 배경엔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대부’ 요시 바르디의 창업가 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16살에 이스라엘로 건너간 ‘국내 1호 이스라엘 유학생’으로, 코트라(KOTRA) 텔아비브무역관에서 근무한 뒤 경영컨설팅 업체 ‘코이스라’를 창업했다. 지난 2014년 이스라엘의 연쇄 창업가 아비람 제닉 등과 손잡고 이스라엘의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초기 기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KSP를 설립해 이끌어오고 있다. 


(박대진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 공동대표 )


인구 1,900명당 스타트업 1곳

하이테크 집결한 중동의 창업 오아시스,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서쪽, 지중해와 인접한 경제 수도 텔아비브의 중심가엔 중동 최대의 벤처 집결지 ‘실리콘 와디(Wadi·히브리어로 ‘계곡’이란 뜻)’가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생명과학 등 첨단산업 분야의 벤처기업 4,000여곳이 모여 있어 ‘하이테크 오아시스’란 별칭도 따라붙는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200개 이상의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투자 기관)와 인큐베이터(초기 기업 육성 기관), 벤처투자자,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도 이 지역에 밀집해 있다.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이란 뜻의 텔아비브에 그야말로 스타트업 ‘봄동산’이 들어선 것. 박 대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실리콘와디가 가장 창업하기 좋은 공간일 것”이라며 “1990년대 초 정부의 주도로 이곳에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를 다룬 IT 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의 다큐멘터리 [출처=Wired UL 유튜브])



실리콘와디의 기틀이 만들어진 건 지난 1993년. 이스라엘 정부는 당시 경기침체를 타개할 새로운 동력으로 스타트업에 주목했다. 특히 첨단기술 산업을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1,000만달러 규모의 민관합작 펀드 ‘요즈마(Yozma) 펀드’가 결성됐고,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도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총 9개의 요즈마 펀드를 추가로 결성하며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한 벤처 바람을 이어나갔다. 박 대표는 그러나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은 생태계 성장에 스파크(불씨)를 만들어주는 수준이었고 그 불씨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건 민간의 역할이었다”며 “특히 요시 바르디가 몰고 온 창업 열풍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창업가가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요시 바르디입니다. 20대였던 1960년대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뒀고 개발부 장관도 지낸 인물이죠. 요시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창업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자기 아들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선뜻 거액을 투자하며 도전을 독려해줬습니다. 제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기 아들에게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요시는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죠.”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요시 바르디(Yossi Vardi))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대부’ 요시 바르디


아버지의 돈을 밑천 삼아 요시의 아들이 설립한 회사는 ‘미라빌리스’(Mirabilis)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다. 미라빌리스는 ‘MSN 메신저’, ‘네이트온’ 등 대다수 메신저 프로그램의 모태가 된 세계 최초의 인터넷 메신저 ‘ICQ’를 개발했고, 창업 19개월만인 지난 1998년 미국 최대의 PC통신 기업 ‘아메리카온라인’(AOL)에 4억달러(약 4,700억원)에 인수됐다. 75만달러(약 9억원)를 투자해 500배가 넘는 규모의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요시는 이후 이스라엘 스타트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미라빌리스를 필두로 요시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신생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같은 창업 열풍을 “미라빌리스 효과”(the Mirabilis Effect)라 표현했다. 박 대표는 “이스라엘 국민은 요시를 통해 취직보다 창업이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목격했다”며 “이때부터 의사, 변호사 대신 장래 희망으로 창업가를 선택한 청년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에 스타트업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 요시. 총 86개(2016년 1월 기준) 스타트업에 투자해 25곳을 성공적으로 엑시트시킨 그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맞춤형 글로벌 전략’을 꼽았다. 이스라엘은 내수 시장이 작아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는데, 자신이 키운 회사들은 초반부터 해외 시장을 적절히 공략해 ‘대박’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 


박 대표는 “글로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빠르게 도전해 핵심 기술을 선점하고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는 게 이스라엘 창업가들의 강점”이라며 대표 사례로 구글에 인수된 ‘슬릭 로그인’(Slick Login)을 꼽았다. 음파인증 기술을 개발한 슬릭 로그인은 지난 2014년 첫 서비스를 내놓은 지 5개월 만에 수백만달러를 받으며 회사를 매각했다. 당시 슬릭 로그인이 보유했던 기술은 구글이 필요로 하던 ‘이중 보안 로그인’에 핵심이 되는 요소. 박 대표는 “슬릭 로그인의 창업가들은 사업 모델을 세울 때부터 구글에 인수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며 “한국 스타트업도 ‘맞춤형 글로벌 전략’으로 해외 시장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요시 바르디가 꼽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

‘글로벌 맞춤형 전략’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좁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인지하고 처음부터 글로벌 니즈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다”며 “글로벌 시장에 빨리 뛰어들어 그들의 ‘페인 포인트’를 일찍 간파한 게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스라엘은 인구로는 한국의 6분의 1, GDP 규모는 4분의 1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총 104건의 엑시트 사례를 남겼다. 한국보다 4배나 많은 수치로, 그 규모도 100억달러(11조1,280억 원)에 달한다. 


요시가 강조한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연쇄 창업’. 여러 번 재창업에 도전하며 사업 노하우를 쌓아온 이들이 많아지며 엑시트 규모를 키울 수 있었고, 동시에 생태계 전반도 성숙해졌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한국과 달리 이스라엘엔 ‘적당히 성공시켜 빠르게 팔고 또다시 도전하자’는 창업 문화가 있다”며 “이스라엘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창업가 정신’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정주영식 창업가 정신’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한번 시작한 사업은 끝을 봐야 하고, 내 손으로 대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거죠. 반면 이스라엘은 ‘요시 바르디’ 식입니다. 하나를 빨리 키워서 적당한 가격에 팔고 그걸 기반으로 또 다른 사업에 도전하자는 스타일이죠. 주로 첫 번째 사업에서 경험을 쌓고 두 번째, 세 번째 사업에 올인하는데, 심지어 나스닥에 상장한 다음에도 새 사업에 뛰어드는 창업가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연쇄 창업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한국과 이스라엘은 창업가 정신부터 달라

끝까지 가는 한국, 빨리 키워 서둘러 파는 이스라엘


실제 이스라엘에서 창업부터 엑시트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약 4년 반. 반면 한국에선 보통 10년 가까이 걸린다. 이처럼 빠른 엑시트, 활발한 재창업이 이뤄지다 보니 엔젤투자, 벤처캐피털 등 이스라엘의 투자 생태계도 자연스레 발달할 수 있었다.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계에 흘러들어 간 벤처투자 규모는 약 48억달러(약 5조원). 한국(2조1,503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박 대표는 “투자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결국 엑시트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며 “한국 창업가들도 ‘하나로 끝까지 간다’는 생각 대신 다양한 엑시트 모델을 그려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텔아비브에 들어선 글로벌 기업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스타트업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 박 대표는 선도적 혁신 모델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대기업의 R&D 센터를 적극 유치해 벤치마킹하고, 이를 활용한 기술 혁신으로 해외 투자자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경쟁력지수’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혁신 지수’에서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외신들은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시장 크기는 57위로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지만 혁신 지수가 높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해외 투자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전체 벤처투자의 약 87%가 이스라엘 밖에서 들어오고 있다. 박 대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엔 글로벌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해외 기업에 문을 여는데 인색해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스라엘엔 인텔,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애플,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 지사나 R&D 센터 등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다 합치면 350개 정도인데, 거기서 나오는 고용뿐 아니라 스타트업과의 협업 효과가 엄청납니다. 정부에서 생태계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도 좋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결국 민간의 자본 논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 장벽을 낮춰 좋은 기업들을 국내에 유치하고 그들을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생태계 판을 크게 가져가자는 거죠. 그래야 한국의 인재들도 큰 시장에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http://www.yes24.com/24/Category/Series/001001025008008?SeriesNumber=21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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