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내렸는데, 그는 ‘닫힘’ 버튼을…엘리베이터 '갈등'

직장인 김기동(41·가명)씨 회사는 서울 강남의 고층빌딩에 입주해 있다. 사무실이 9층에 있어 출근과 퇴근, 점심시간, 다른 층을 오갈 때 늘 엘리베이터를 탄다. 대다수 직장인에게 엘리베이터는 버스나 택시보다 많이 이용하는 ‘이동수단’이다.


"문도 안 열렸는데, 그 남자 손은 이미 '닫힘' 버튼에…"


얼마 전 이런 경험을 했다. 김씨가 타는 엘리베이터는 출입문 양쪽에 ‘층 번호’ 버튼이 설치돼 있다. 엘리베이터는 그가 내리려는 9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7층쯤 이르러 상승 속도가 느려지며 곧 멈출 거라는 신호가 감지될 무렵, ‘층 버튼’ 앞에 서 있던 남성의 손이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은 ‘닫힘’ 버튼에 올라가 있었다.


그 손가락은 “어서 내려라. 내리자마자 닫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감지해 문이 닫히기까지 1~2초 시간이 걸린다. 김씨는 “그 짧은 시간을 더 단축하려고 미리 손가락을 버튼에 올려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닫힘’ 버튼에 올라가는 손가락을 볼 때마다 그는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와 한 공간에 있던 사람이 내가 어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구나, 문이 열리자마자 빨리 내리지 않으면 저 사람은 속으로 나를 나무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김씨는 “그렇게라도 서둘러야 하는 일상의 팍팍함 같은 게 전해져 그런 손가락을 보면 웃퍼지는데(웃기면서도 슬퍼지는데), 나도 모르게 비슷한 심리를 보일 때가 있더라. 그런 나를 발견하면 화들짝 놀란다”고 말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아무도 '닫힘'을 안 누르다니…"


김씨가 말한 두 번째 경험은 엘리베이터에 네 사람이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출입문 양쪽의 층 버튼 앞에 각각 남성과 여성이 섰고, 김씨는 출입문에서 먼 안쪽에, 7층 버튼을 누른 나머지 한 명은 내릴 준비를 하며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고 그가 내렸다. 층 버튼 앞에 서 있던 두 남녀는 각각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었다. 한 사람은 카카오톡 대화를 하는 듯했고, 다른 사람은 뉴스를 읽는 모양새였다. 둘 중 아무도 ‘닫힘’ 버튼을 누르려 하지 않았다.


김씨는 7층에서 문이 열린 채 엘리베이터가 서 있는 몇 초 동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저 사람들 참 매너 없네. 층 버튼 앞에 섰으면 제 때 눌러야 할 거 아냐. 자기 일만 하고….’


곧 화들짝 놀란 것은 자신의 모습이 ‘닫힘’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던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였다. 그의 일상도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못지않게 팍팍하다는 뜻이었다.


"엘리베이터 1평 공간에서 겪는 소소한 갈등"


엘리베이터를 기다려 타고 내리는 짧은 시간에도 이처럼 여러 생각이 고개를 든다. 출근자가 몰리는 아침에 닫히려는 문을 기어이 열고 올라타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올라탈 때 짜증이 묻어나는 탑승자들 얼굴을 보면서 상반된 감정을 갖게 되고, 이는 미묘한 갈등을 제공한다.


김씨는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렸다 올라타서 9층을 눌렀는데, 허겁지겁 뒤이어 탄 사람들이 6층, 7층, 8층을 연달아 누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엘리베이터가 한 층 설 때마다 짜증이 고조되곤 한다. 뭐,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데도 그렇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할 때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에게 곁눈질로 눈치를 줄까 말까, 문이 닫히는데 누군가 타려 할 때 '열림'을 누를까 말까…. 그 작은 공간에서, 그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 많은 갈등이 순간 순간 찾아온다.


엘리베이터는 이동 시간을 단축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생활이 더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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