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꽃다발이 자아내는 고요한 시적 정취

전통적인 미술이론에서는 회화를 조용한 시로 생각한다. 이 개념은 ‘시도 그림처럼’이라는 뜻의 라틴어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 ut pictura poesis로 요약된다. 마네가 살던 때엔 시와 그림, 음악의 비교가 이루어졌고 특히 19세기 후반에는 소리와 색채의 유사성이 알려지면서 공감각 개념이 등장했다.


마네는 아버지처럼 매독에 걸려 죽음을 앞둔 말년까지도 꽃 정물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1964년에 여러 점의 모란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하나는 꽃병에 꽂힌 모란이고 다른 한 점은 외과용 가위가 있는 모란(그림 a)이다. 이 둘은 꽃다발이 미술과 유사한 것임을 암시한다. 꽃다발도 인상주의 그림처럼 밝은 색의 자연의 형태를 유쾌하게 늘여놓는다. 당시 통념과 다르게 꽃 그림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화가들에게 유익한 연습이라고 믿었던 르누아르 같은 사람도 있었다. 팡탱 라투르는 꽃 정물화를 두고 ‘꽃을 성실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우주도 그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드가의 <국화꽃과 함께 있는 여인>과 르누아르의 수작 <온실의 꽃>(그림 b)처럼 인상주의자들의 꽃 정물화는 대부분 화려하고 풍성하다. 이에 비하면 마네의 꽃 정물화는 말라르메의 시의 한 구절처럼 단순하지만 미묘하다.


[그림 a] 에두아르 마네, <외과용 가위가 있는 모란> 1864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때로 르누아르의 작품 같은 꽃 정물화는 시범 작품이었고 때로는 개인의 주택 장식을 위해 주문되기도 했다. 마네의 대형 정물화는 대부분 판매되었지만 꽃 그림들은 대개 소형이었다. 마네는 꽃 그림을 지인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그는 몸져 누워 있던 때 친구들이 가져온 꽃이나 정원에서 꺾은 꽃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작은 그림들은 마네의 사랑과 감사의 증표였다. 미술사에서 마네의 말년의 꽃 정물화만큼 능숙하고 고상하며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을 찾기 어렵다. 친구들에게 꽃 정물화를 준 것은 우정과 선물에 대한 보답일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남긴 것처럼 보인다. 큰 다발이나 화려하게 장식된 그릇에 꽂힌 꽃이 아니었다. 크리스털 화병은 물감의 산뜻한 색처럼 순수하고 꽃은 아이가 따온 듯 수수하다.


[그림 b]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온실의 꽃> 1864년, 함부르크 미술관


마네의 상황 때문에 꽃이 전달하는 감정은 더할 수 없이 심오하다. 가장 단순한 그림이 아주 감동적으로 이야기할 때, 말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갔을 때, 말이 불필요하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병문안 뒤에 있는 생각과 존재다. 그것이 마네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꽃 정물화가 자아내는 고요한 시적 정취다.


<크리스털 꽃병의 패랭이꽃과 클레머티스>, 1882년경 캔버스에 유채, 56×35.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가 | 제임스 H. 루빈

출판 | 마로니에북스

책으로 꾸민 초록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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