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다른 시간

얼마전 이야기다.

친정에서 머물던 며칠, 월요일 아침 혼자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들어온 적이 있다.

결혼 전에 다니던 대청역에 있는 사우나를 향하던 시간은 공교롭게 딱 출근시간.

정장차림을 하고 쟁쟁 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 가운데 쟁쟁 걸음으로 사우나를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출근하는 많은 무리중의 한사람처럼 보이지만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이었으니..


목욕을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또 한번의 묘한 기분을 느꼈다.

선릉역에 유명한 일본라멘집을 찾아갔는데 공교롭게 그때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시간..


사원카드를 목에 건 테헤란로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내가 간 식당에서도 동료들끼리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는 사이 나는 혼자 유유히 2인용 테이블에 앉아 라멘을 먹으며 '아, 나는 지금 이들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구나' 생각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건 워낙에 익숙한 일이지만 내가 있었던 장소와 시간이 평소의 자연스러움과 다른 생경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와 동시에 나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요즘 나는, 내 마음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척척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내가 계획한 것과 어긋나버릴 때가 많은..


상황을 어느정도 통제가능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데 그럴 수 없어서 무력감을 종종 느낀다.


봄희를 낳기 전에는 아가의 낮잠시간이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 꿀같은 시간이 얼마나 휘리릭 끝나버리는지,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뜨끈한 탕에 몸을 담구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랐다.


매이는 것을 두려워하던 나에게는..요즘 부쩍 자기 의지가 강해진 봄희와 함께하는 이 시간..밥먹는 것부터 자는 것 쉬는 것 집안일하는 것 책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외출하는 것 사람만나는 것 등 사소한 것 한가지도 제약이 따르는 시간 자체가 날마다의 도전이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이 되면 유난히 하고 싶은 게 많아지듯이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는 하고 싶고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 법..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봄희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18개월 동안 무수한 성장과 도약의 시기를 거치며 폭풍같던 시간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다가도 평온한 순간이 불현듯 찾아오고, 평온한 순간의 달콤함을 잠시 느끼다가도 이내 다시 정신없는 시간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이랄까..


출산 전과는 많이 다른 지금의 시간..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중심이 옮겨지고 많은 영향을 받는 시간..나를 의지하는 존재와 24시간 붙어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는 시간..내가 최대치로 발휘하는 인내심보다 항상 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시간..한 존재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온전히 경험하는 시간..나란 존재가 깎여지고 그만큼 또 넓어지는 시간..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게 되는 시간..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고 특별한 노하우없이 어설픔이 많지만 이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덧붙여서...사우나를 하고 일본라멘을 먹은 다음에는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후 폭풍수다를 쏟아놓는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햇살을 한껏 받으며 꿀같은 여유를 즐겼다는..후일담

산들바람을 닮고 싶은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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