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 선생님


방정환

方定煥


아동문학가


출생1899년 11월 9일

대한제국 대한제국 한성부 종로구 당주동

사망1931년 7월 23일(33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성부 경성제국대학교 부속 병원

필명아호는 소파(小波)

직업아동문학가,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국적대한제국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학력일본 도요 대학교 철학과 중퇴

장르아동문학, 시, 소설

부모방경주(부)

친지손병희(장인)

손병흠(처숙부)

손천민(사촌 처남)

배우자손용화(손병희의 3녀)

자녀방운용(장남), 방하용(차남)

종교천도교

웹사이트



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 ~ 1931년 7월 23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다.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소파(小波)로 일본 유학 시절에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의 아동 문학가인 이와야 사자나미(岩谷小波)의 이름과 같다. 이외에도 잔물, 잔물결, 물망초,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생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언론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1년 7월 23일, 오랜 지병과 과로로 인한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인하여 향년 33세로 타계했다.




어린이날

5월 5일

법정공휴일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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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글은 2001년 4월 26일 고대 법대문학회 홈페이지 "노땅게시판"에 게재했던 제 가벼운 글과 그에 대한 최용훈 후배의 짧은 질문, 그리고 저의 답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5월 5일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고려대학교 개교기념일? 물론 아닐 것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하는 노래만 들어도 알 수 있듯 5월 5일이면 우리 머릿 속엔 어린이날이 떠올라야 지극히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1923년 이 어린이날을 우리나라 처음으로 제정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이 놀랍게도 우리 고대법대 (보전 법과) 출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는 것 같다. 거기다 그는 어린이 보호운동가에 아동문학가를 겸하기도 했으니 고대법대생으로서 사실상 최초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편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아동문학은 뭐 문학도 아닌가? ^^). 따라서 우리 고대법대문학회의 역사 또한 어쩌면 이 소파 방정환 선생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난 가끔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우리 고대법대 출신 중에 이렇다할 재미있고 특이하고 유명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소파 방정환 선생은 고대 법학과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옛날 우리 어린 시절 처음 봤던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목덜미에 혹만 붙이면 김일성 동상과 아주 유사했다거나 -_-;; 그의 성씨가 조선일보 사주의 성씨와 똑같은 방씨라는 등의 이유로 그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충분히 우리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방정환은 1899년 서울에서 생선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이 어려워 선린상고를 다니다 중퇴하고 관청에서 사환노릇이나 하면서 푼돈을 벌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의 앞에 "저기... 도에 관심 있으심까?"하고 나타난 -_-;;; 천도교 일파에 붙들려 그는 민족운동에 관여하고 점차 의식화과정을 거치게 된다.

둥글넙쩍 잘난 얼굴과 토실토실 살찐 그럴듯한 풍채, 그리고 타고난 말빨을 무기로 의암 손병희의 딸을 꼬셔서 그의 사위가 된 방정환은 보성전문 법과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하면서 3.1 독립운동에 깊이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무참히 실패로 돌아가 장인과 보전 교장이 모두 체포되는 등 시련을 겪자 지하로 잠입한 방정환은 독립신문 비밀등사의 책임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듯 이렇게 쌔가 빠지게 고생하면서도 이론빨이 없으니까 일본애들의 논리에 번번이 말려들어가거나 그들과의 논쟁에서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방정환 역시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든 고국을 떠나 오로지 지식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대책없이 무작정 일본으로 유학길을 가게 되는데, 여기 선진 일본에서 그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철학사조를 많이 발견하고 배우게 된다.

당시 일본은 좌파 사회주의사상이 처음 꽃을 피우던 때였고, 사회혁신의 기운이 젊은 사상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이었다. 이제 막 일본에 소개되고 있던 쟝 쟈크 루쏘와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은 젊은이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이들의 이론에 따라 사회의 진정한 혁신, 진정한 개조는 아직 자연의 품에서 벗어난지 오래되지 않은 어린이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만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식인들 사이에 하나의 지적 유행으로 번져가던 참이었다.

여기서 방정환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불쌍한 어린 아동들을 구시대적 유교윤리하에 얼마나 억압하고 학대해왔었는가를 깨닫게 되고, 인간의 어린 시절을 하나의 독자적인 인생기로 존중해야 할 필요성, 어린 아이들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할 필요성 같은 것을 통감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순진하고 고운 감수성을 계발하고 그들을 자연과 친화되게 함으로써 열악한 모국의 아동인권상황을 개선하고 사회진보를 이룩하겠다는 이상에까지 그는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많은 한국 지식인들은 유학 갔다 돌아오면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팔아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그러는 게 하나의 일반적인 풍조였다. 일찌기 최남선이 일본유학 도중 귀국해 한국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했던 게 그 전형적 예이다. (요즘은 뭐 안 그런가? 미국에서 공부하다 들어온 강준만이 만든 '인물과 사상', 독일에서 공부하다 들어온 진중권 등이 만든 '아웃사이더'...)

이처럼 방정환도 귀국후 천도교 조직을 기반으로 소년회를 조직하고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어린이'는 다들 알다시피 방정환이, 어른에게 공대하는 것만 가르쳤을 뿐 어린 사람을 인간으로 대접하는데는 인색했던 유교적 관습을 타파하고 얼라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자기가 직접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이다. (아~ 이 말을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처음 들었을 때... 당시 여덟살, 초롱초롱 눈을 밝히고 듣던 백경일 '어린이'의 착하고 귀엽던 모습! ^^) 이러한 방정환의 소년회운동은 아이들을 바르고 아름답게 기르는 운동, 아이들을 단순히 부모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운동이었으며, 이 불행한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2세들을 씩씩하고 진실한 인간이 되게 만드는 운동이었다.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건강한 정신과 민족적 자각을 길러가는 단체로서 소년회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면서 방정환은 전국순회 강연을 다닌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 소개된 어린이명작동화를 방정환이 우리말로 재번역해 소개하면서 잡지 '어린이'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특히 방정환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깜찍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인간이어서 -_-;;;, 타블로이드 판형에 조그만 신문 같은 잡지 '어린이'를 받아든 사람들은 누구나 예쁜 편집과 아름다운 얘기가 가득한 기사에 정신을 빼앗겼다고 한다.

방정환은 이 잡지 '어린이'에다 자기가 직접 창작한 동화를 많이 써서 발표한다. 물론 자기만 동화를 쓴 건 아니고, 학교졸업후 룸펜처럼 방바닥이나 뒹굴고 다니던 마해송 정인섭 최진순 이헌구 윤석중 이헌구 최영주 등 자기 후배들을 '색동회'란 이름으로 조직해 불러모아 여기다 동화와 동시를 쓰게 하며 돈벌이를 시켜주기도 한다.

이 당시 방정환과 그 무리들이 돈을 위해서건 뭘 위해서건 -_-;;; 열심히 썼던 그 동화들은 지금 읽어봐도 그 스토리가 꽤 괜찮다는 데 우리들은 무척 놀라게 된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기다람쥐와 도토리'-_-;;;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주아주 깊은 산속에 아기다람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나무밑에서 도토리를 만나 친구가 된다. 추운 겨울이 되자 아기다람쥐는 엄마아빠한테 얘기하고 나무밑둥에 있는 집에 도토리를 데려와 같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사이좋게 친구로서 겨울을 나게 된다.


그러다가 이런 이런... 강추위가 몰아닥쳐 아기다람쥐가 큰 병에 걸리고 만다. 곧 죽게 생겼는데 집에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엄마아빠 다람쥐는 아기다람쥐 몰래 상의해서 도토리를 죽여 아기다람쥐에게 먹이기에 이른다.


나중에 완쾌된 후 이 사실을 안 아기다람쥐는 엄마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도토리의 이름을 부르며 눈바람 몰아치는 숲속으로 혼자 들어가 자기도 죽어버린다....... (이 이야기의 주제: 어린이에게도 나름대로의 감수성이 있다. 엄마아빠들도 어린이를 위한다는 거야 좋지만 어린이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자기들 맘대로 판단해 어린이에 관련된 일을 마구 결정하지 말라... 는 것이다.)

대충 이런 창작동화로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우리 방정환 선생께서는 동화구연을 하셨다는 것인데, 그의 선천적인 말빨은 어찌나 탁월했던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의 구연에 눈물을 흘리며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동화구연회가 불온한 집회는 아닌지 감시하러 나온 일본경찰마저 눈물을 글썽이며 구연동화를 듣고 돌아갔다... 고 하는데 이 말은 일본경찰이 우리말을 모르는 게 보통인 이상 뻥이 아닌가 사료되지만 -_-;;; 하여튼 이런 헛소문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인기는 정말 당시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지런히 활동하고 다니며 어린이사업을 확장하던 방정환도 곧 시련기에 봉착하게 된다. 1930년대에 접어들며 대공황과 함께 일제의 탄압이 거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방정환도 출신이 독립운동 천도교 출신인지라 뻑하면 일경에 끌려들어가 고문받고 두들겨맞고 했으니, 꽤나 건강했던 그였다 할지라도 몸을 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 KBS에서는 특집극으로 '소파 방정환'이란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소파 방정환 역을 맡았던 탤런트 서인석이 일본 경찰한테 고문받던 장면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고문방법의 잔인함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일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받은 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집앞에 던져진 방정환은 아내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어댔는데,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같이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해서 방정환은 서른세살 아까운 나이에 고문후유증과 신장염 등으로 몸져누워 결국 요절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죽어가면서 우스꽝스럽게도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가야겠어, 문간에 마차가 왔군." "마차라뇨? 무슨 마차가?" "흑마차가 날 데리러 왔어." "그건 괜한 환상입니다." "아니야. 말도 새까맣고 마차도 새까매. 나는 저 마차를 타고 가야 해." .....

이처럼 불운한 선각자요, 영원한 동심이요, 아름다운 진보주의자였던 방정환 선생... 그 선생께서 약 80년 전에 제정하셨던 우리 어린이날에 나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웃기게도 나는 이 날 뒤쎌도르프에 가서 나찌반대 데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우리 80년 윗선배가 몸소 우리 얼라들의 꿈과 인권을 위해 공휴일로 제정하신 이 뜻깊은 날. 이 날에 우리 법문 후배님들께서는 이곳 독일땅에서 지금 나찌폭력이 두려워 떨고 있는 수많은 한국어린이들과 다른 소수민족 어린이들을 위해 단 1초씩만이라도 다들 기도해주시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 바이다. ^ ^;;;

2001. 4. 26.

최용훈 wrote:


"소파 방정환"이란 말을 듣고 조금은 놀랬슴다.

거의 10년이 넘도록 주변인들 중에 그사람 이름을 말하거나,,

그가 어떻게 살았다거나 등등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새삼 나이 들어서 경일형님의 글에서 이름을 보곤,,,

묘한 기분이 들었슴다.

방정환이 그렇게 괜챦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잘 몰랐거니와,,

일제시대때 그런 활동을 했다는 것도 첨 들었슴다.

제 기억으론 국민학교때 학교나 텔레비젼에서 종종 봤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이 들어서는,,,

군사정권시절의 그렇고 그런 문화정책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어쨌거나 지금까지도 그러한 문제들에게까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신

형님에 대해서 새삼 존경의 뜻을 표함다.


2001. 4. 26.

고래 wrote:

내게도 방정환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문화정책 틈새를 파고들어 재주껏 어린이용 문화상품을 개발해 힛트시킨 수완좋은 사업가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그의 명성이란 것도 그에게 옛날 신세를 져서 돈푼깨나 벌었던 아동문학가들이 자기 밥줄을 연장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장한 것인지 모른다.

그의 타협적 비폭력적 노선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당장 민중이 제국주의세력과 자본가에게 착취당해 다 죽게 생겼는데 뚱딴지같이 어린이인권운동을 벌인 것도 수상쩍고, 그와 비슷한 온건노선을 걷던 사람들이 대부분 1930년대 중반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의 불행한 요절은 오히려 그에게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사인이 정말 고문후유증이었는지도 사실은 확실치 않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의 유언만 놓고 보아도 그가 남은 평생 항일무장투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을 것 같긴 하다 (새까만 말이 끄는 새까만 마차? ^^). 고문후유증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그가 느닷없이 따발총 걸쳐메고 산으로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없었던 한 그는 국내에서 친일타협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밖에 그가 몸담았던 천도교세력이 일제말 항일독립투쟁전선에서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세력이었다는 부분이나, 그 천도교세력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 증산교, 대순진리교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아도 그의 존재의의는 그리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민족신비주의로 치닫고 있는 증산교야 그럭저럭 봐줄 수 있겠지만 지금 현재 대순진리교는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이비종교적 무리들이다.

그러나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이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에 기여했는지는 뚜렷이 결론내릴 수 없다. 예를 들어 방정환의 어린이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는 거의 동일한 성격의 Jugendbewegung(소년운동)이란 것이 있었는데, 비록 나찌 집권후 잔혹하게 탄압당하고 해체되어 Hitler-Jugend운동으로 전혀 이상하게 변질되어버렸지만, 원래 이 운동은 자유롭게 자연을 벗하며 소년들이 떼지어 산속을 걸어다니고 그들만의 독자적 문화를 계발하고 기성세대에게 인격적 대우를 요구하자던, 꽤 괜찮은 운동이었다. (내가 방정환을 재평가하게 된 것도 독일의 1920년대 Jugendbewegung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 어린이날은 실제 여러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내가 알기로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위원 같은 경우는 요즘 어린애들이 너무 과보호를 받아 버르장머리가 없어지고 기가 너무 세졌다며 어린이날을 폐지하자고 주장한 바도 있었으며, 이 주장은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가 어린 시절부터 애들 기를 너무 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보수세력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한 방정환문학의 지나친 감상주의와 화려체경향, 유치찬란한 과장이나 신파 등도 그렇게까지 사람들 비위에 거슬릴 정도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뭐, 나나 너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이야 물론 아니지만, ...

최소한 방정환이 예를 들어 윤동주같은 부류에 그리 뒤떨어질 것도 없다고 나는 본다. 방정환의 출신학교인 고려대학교가 워낙 마초스럽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던 탓에 연대가 윤동주를 영웅으로 키운 반면 고대는 그를 하찮은 아동문학가로 취급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이 별로 운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물론 방정환이나 마해송 등의 동화가 약간 카프동화 비슷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엄마아빠 다람쥐는 일본제국주의/자본가의 피상적 온정주의를, 아기다람쥐는 조선민중/노동자의 자유와 자결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여튼 평생을 비교적 깨끗하고 아름답게, 뭔가 뜻있는 일을 해보려다 죽은 인간인데, 그만하면 존경할 만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학과 출신 중에 그만한 인간은 솔직히 두 눈 까뒤집고 찾아봐도 없다. 물론 그가 진짜 인간적으로 괜찮은 인간이었는지는 나도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

200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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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4주년 어린이날


어린이날 노래

윤석중

윤극영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아동복지법 제6조(어린이날 및 어린이주간)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하며,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주간으로 한다.




1923년 소파 방정환이 색동회를 창립하며, 천도교 행사와 같은 날이기도 했고 노동절에 맞추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데에서 시작되었다.[2] 이후 일제의 탄압에서 비롯한 이런 저런 사건을 거치며 없어지거나 했지만, 1946년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해 일제강점기 때 탄압받아 중단된 어린이날을 부활시키면서 5월 5일로 날짜를 바꾸어 정하였고 [3], 1975년[4]에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소파 방정환이 없었으면 어린이날은 없었을 것이고 어린이라고 불리지도 못하고 애기, 애새끼, 어린것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석가탄신일이 어린이날 구실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양력상의 5월 5일[5]을 뜻하며,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가정의 달로서의 상징 + 한국의 골든 위크와 인접함 때문인지 날짜가 토요일, 일요일에 겹칠 경우 대체 휴일제의 적용을 받는다. 정확히는 대체휴일제가 재계의 반대로 전면 실시가 지연되면서 설날, 추석, 어린이날만 한정되어 적용된 것이다.


이전에는 어린이날을 5월 5일을 낀 토요일이나 5월 첫째 주 월요일로 옮기려다 무산되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 그 때 어린이날 옮겼으면 우리도 개교기념일이 공휴일인 손해를 안 받았을 텐데......


2015년에 국회에서 어린이날을 5월 5일에서 5월 첫째 주 월요일로 옮기는 법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이 가결되면 어린이날은 매년 날짜가 바뀌는 토-일-월 3일 연휴가 된다. 이렇게 되면 고려대학교는 개교기념일과 어린이날이 겹치는 손해에서 사실상 해방된다 연휴를 만들자는 주장 중에는 어린이날을 5월 첫째 주 금요일로 옮겨 금-토-일 연휴를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어린이날이 5월 첫째 주 월요일로 옮겨질 경우 4월 30일이 일요일이면 5월 1일이 될 것이고 4월 30일이 월요일이면 5월 7일까지 밀릴 수도 있다. 어린이날을 5월 첫째 주 금요일로 옮길 경우에는 빠르게는 3일에 어린이날이 오지만, 늦게는 9일까지도 밀린다.


청소년이나 성인이 돼서는 그냥 '휴일'로 이중변질을 겪고 있는 날인데 특히 시골의 경우 어린이가 많아 봐야 10명 이내인 마을이 태반이라 더더욱 그렇다. 고려대학교 학생은 개교기념일로 3중 변질을 겪고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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