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입니다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남자. 그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0.

“안녕하세요. 노무현 입니다.”

아마도 20세기 말 봄 즈음. 한창 공사 중인 부산의 어느 도로.

건들건들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네는 한 남자.

“저 좀 뽑아주십시오.”

새 시대를 여는(혹은 그러자는) 그의 인사말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심드렁하다.


결국 ‘1번’이 당선된다. 허탈하다. 2번 노무현은 낙선.

그래도 부산의 절반 좀 안 되는 사람들이 답해줬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때의 일이다.



1.

이 때를 전후로 그는 줄창 낙선만 한다.

1998년에는 악연으로 엮인 이 모 씨가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자진 사퇴하며 치러진 종로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다.

그리고 2년 후의 총선에서는 당선 가능성 높은 종로구 대신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


당연히 낙선.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단 일념으로 덤벼든 노무현을 두고 네티즌들은 ‘바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 대신에 사람들을 얻었다.


대망의 2002년. 중딩이던 나야 월드컵 보느라 바쁠 때, 서해에서는 교전 때문에 바빴고,

여의도에서는 대선 때문에 또 바빴다. 이래저래 싸우는 일로 바쁘던 한 해였다.

그 해에는 대통령 선거가 국민경선제로 치러지게 되었고, 이에 노무현은 대권에 도전한다.



2.

이쯤에서 나는 만화 슬램덩크가 떠올랐다. 노무현이 강백호 같았고, 북산 같았다.

만화 속 강백호는 불량하지만 순수하기만 한 고등학생이다.

이 형용모순은 촌스럽지만 세련된 정치인 노무현과도 맥이 닿는다.


농구는 하나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려들 보는 패기.

엄청난 노력과 재능으로 일취월장하는 실력.

그럼에도 애송이라며 주변 라이벌들이 던지는 조소와 시기.

그리고 북산고의 중심전력이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를 도 대회에 나가는 모습.

그리고 유일한 승리에서 주역이 되는 모습.


이 순정마초가 겪는 고초는 그가 치르는 경기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이 지는 경기고, 이겨도 아슬아슬하다.

엎치락뒤치락. 그래, 본래 게임이란 이래야 맛이다.



3.

슬램덩크는 몇 번을 봤는데도 마지막 경기에서의 분투를 보면 금새 코끝이 찡해진다.

분명히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다시 보면 또 눈물 나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영화 속에서 주로 다루는 2002년 경선에서도 느끼게 된다.

굳이 슬램덩크가 아니라도 될 테다.

스포츠 만화라면 대체로 들어맞을 서사다.

아니, 어떤 영웅서사를 들이밀어도 그럴지 모른다.


몇 번의 실패 후 마지막이다 싶은 무모한 도전.

올곧은 신념을 밀고 가는 바보 같은 주인공.

이를 시기하다 스스로 몰락하는 경쟁자.

경쟁 속에서도 계속되는 주인공의 고뇌.


신념을 지키며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4.

영화는 잘 짠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편집이 훌륭하다.

그러고 보면 이미 훌륭한 드라마였던 그의 삶,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라 그럴 지도.

그렇다손 치더라도 영화는 순식간에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후반부쯤에는 미세먼지로 뻑뻑하던 눈이 부드러워지는 대신 뒷목이 뻣뻣해지고 코가 매워진다.

울컥, 하는 타이밍이 있다.



5.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울컥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그의 삶이 너무 애처로워서.

둘째, 그가 한 인간으로써 대단하다고 느껴서.

셋째는 내가 부끄러워서.


그는 굳은 신념이 있었고, 그걸 굽히지 않고 주장할 용기가 있었다.

또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서, 포용할 줄도 알았다.


근데 나는 그게 없다.

나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그를 잘 알아볼 수 없었으며, 그래서 이렇게 오늘날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그냥 우리나라가 꽤 세련된 나라구나, 하는 감만 가지고 있었던 그때.

그때, 난 중딩이었으니까, 하고 넘겨도 되겠지만 그게 또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는 몰랐다. 그가 죽기 전까진.

그가 얼마나 앞선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는지.

그래서 부끄럽다.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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