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으로 | 생명의 아픔 | 박경리

세상이 무섭게 변해간다는 것은 요즘 누구나 하는 얘기로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인 것이 못 된다. 매사는 그 빈도가 거듭될수록 신선함, 격렬함이 사라지게 마련이고 타성에 빠지게 돼 있다. 지속적이지 못한 것은 에너지하고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응이 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살아남을 수도 있고 소멸돼버릴 수도 있다는 양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의 명운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얘기는 좀 달라지지만 민족주의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과거 일제가 내 민족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삶의 터전을 강점했을 때 민족주의에는 당위성이 있었고 도덕적이며 또한 정의였다. 반면 타민족을 도륙하고 국토를 강탈한 일본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는 그 당위성을 인정할 수 없고 부도덕하며 불의였다. 그러나 힘의 논리로 가치 기준을 삼는 사람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말한다. 물론 그것은 호도에 불과한 것, 기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생명들은 생존할 만큼 취할 뿐이므로 욕망 무한의 인간이나 집단이 내세우는 약육강식은 내용적으로 그 개념이 다르다.


힘의 논리에 의하면 남을 정벌하여 나를, 국가를 부강하게 했다면 그것은 애국이며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은 치욕이라. 그러니까 살인자, 강도도 영광이요 피해자는 전리품이라는 가치 전도, 이른바 군국주의의 강변인데, 그곳에는 문화가 있을 수 없다. 동물에게 문화가 없듯이. 세계화, 세계주의에도 양면성은 있다. 일찍이 알렉산더가, 가깝게는 일본, 독일의 히틀러가 전쟁을 전제로 세계 정복을 꾀했지만 사실 세계주의는 인류 마지막의 꿈이기도 하다. 세계정부를 구심점으로 전쟁 없는 평화, 인종 간의 약탈 없는 평등을 이상으로 한 꿈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세계화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불분명하다.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출정가처럼 울려 퍼지고 실제 무역 전쟁이라는 용어까지 나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 다음에 다가올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무한경쟁의 끝은 어디메일까. 요즘 세계 추세를 보면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와 세계화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주의와 세계화가 다르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과거 식민지 쟁탈의 악몽 같은 시대가 연상된다. 영토에서 경제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 쟁탈전은 여전하니 말이다.


물론 우리는 과거의 쓰라림,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며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위해 미래를 희생시킬 수 없는 것 또한 절실한 문제다. 이 딜레마를 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작업이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의식주를 받쳐주는 생산보다 소위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산업의 생산고가 훨씬 앞지르고 있는 오늘,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삶의 질을 높인다는 바로 그것(문명) 때문에 인류는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의식주는 자연과 더불어 순환하고 환원되는 것이지만 기본을 넘은 여타의 것은, 그것에 쏟아부은 인력과 자원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며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결국 쓰레기로 남아서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고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돌아갈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화의 방향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인류가 더불어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고도의 기술이 지구 복원에 집약되어야 하고, 순환하고 환원되는 새로운 질서를 강구해야 하며, 삶의 질을 내용에서 높여가야 지구 사막화 인간 사막화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 수난기에 선도적 역할, 민족의 희망이기도 했던 동아일보는 오늘 어떤 위상일까. 생각해보면 영상매체나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신문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럴 때 신문은 다시 선도적 역할, 희망적 존재로서, 인류 생존을 위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 삶의 터전에다 말뚝을 박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생명의 아픔

작가 | 박경리

출판 | 마로니에북스

책으로 꾸민 초록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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