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와 성(性)…‘문제의 책, 문제의 대목’ 전문은 이랬다


fact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남자란 무엇인가’(2016년)라는 책에서 쓴 글의 내용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언론은 책의 내용을 부분 발췌하며 ①“아내는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 ②“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③“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④“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사내의 생리다” 등 4가지 대목을 지적했다. ▲광고없는언론 팩트올은 책의 전체적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남자란 무엇인가’를 구입, 내용을 살펴봤다.



view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경환(69)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2016년 11월 출간된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에 등장하는 내용 때문이다. 언론들은 안 후보자의 책이 성매매를 두둔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고, 그가 여성비하와 여성혐오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가세해 “임명을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안 후보의 책을 정독한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페이스북에 “일부 언론이 악마적 발췌편집을 했다”는 글을 올리고 안경환 후보자의 입장을 옹호했다. 한 교수는 “발췌편집을 하여 본뜻을 왜곡하고, 인사청문회의 먹잇감으로 삼는 짓거리에 대해서는 질타를 먹여야 할 것이다. 현명한 시민은, 언론의 현혹과 낙인찍기에 속절없이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인섭 교수는 이날 팩트올과의 통화에서 “(남자란 무엇인가) 책뿐만 아니라 다른 (안경환 후보의) 책들도 앞뒤 잘 읽어보면…”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짧게만 말했다.


언론들이 전체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의 한 부분만 발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지적이 맞는지, 아니면 한인섭 교수의 주장이 맞는 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의 전체 내용을 모두 읽어봐야 한다. 광고없는 언론 팩트올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책을 구입, ‘논란 내용’이 들어있는 4개 챕터의 전문을 그대로 옮겼다.


언론이 지적한 논란 대목은 크게 ①“아내는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 ②“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③“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④“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사내의 생리다” 등 4가지로 요약된다.


① “문제된 법관의 연령이라면 대개 결혼한 지 15년 내지 20년이다. 아내는 한국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녀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


안경환 후보자는 책에서 중년의 성에 대해 논하면서 한 부장판사의 사례를 인용했다. 연합뉴스는 13일 “성매매를 하다가 경찰에 단속된 판사의 사례를 거론하며 두둔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도 지적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14일 “배우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듯한 글귀”라고 했다. 1번 문장은 책의 후반부에 나온다. ‘중년의 사랑과 성’이라는 제목의 챕터다. 다음은 전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도쿄에서 암울한 여건 속에서도 장래의 꿈을 키우던 성실한 고학생 청년이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청년은 후일 재벌기업의 총수가 된다. 최고의 중년 남자다. 시오노 나나미의 성공한 남자에게 바치는 예찬은 마치 그에게 건네는 헌사처럼 느껴진다.


‘롯데’라는, 그가 창업하여 일본과 고국에서 성공한 기업의 브랜드는 괴테의 여주인공 ‘샤를 로테’의 애칭이라고 한다. 그는 실제로 작품의 여주인공 샤를 로테의 현신을 현실에서 구했다. 1977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는 그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청년 시절 그의 의식을 지배해왔던 청순한 여주인공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한 어린 여성을 찾아냈고, 끈질긴 구애 끝에 아내로 맞는다. 그에게는 지극히 정당한 낭만적 사랑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재물에 가려진 사랑으로 비친다고 해서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의 긴 인생에서 이루었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취였을지 모른다. 이제 정신의 줄기가 송두리째 흐트러진 만년의 그에게 서른일곱 살 아래인 중년의 아내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랑도 권력 관계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느냐에 따라 갑을관계가 결정된다. 대개는 젊고 예쁜 여자가 갑이고, 나이 든 남자가 을이다. 이 관계를 대등하게 만들거나 역전시키는 방법은 돈이다. 중년 남자가 사랑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남자가 돈을 쥐고 있는 한 ‘원조교제’가 있다. 원조교제는 철저한 자본주의 윤리와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남녀관계다.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일종의 사회제도로 공인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20세기 초중반에 미국의 대중잡지가 창조해낸 환상이기도 하다. 남녀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 키도, 가슴도 큰 젊은 쇼걸을 옆에 거느린 키 작고 배가 불룩 나온 중년 남자의 모습은 ‘돈과 섹스, 지갑과 가슴의 결합’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상을 묘사할 때 ‘큰 가슴’과 ‘비싸다’는 두 단어의 의미가 연결되어 있다. 사내는 고액의 비용을 기꺼이 감당함으로써 자본의 권력을 과시한다. 소비문화와 상품화를 부추기는 지극히 미국적인 세계관이다. 인류학자 마가레트 미드(Margaret Mead)는 1940년대 미국의 연애 관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남자는 새로 산 자동차를 몰고 나가듯이 여자를 데리고 외출한다. 그런데 표정이 무덤덤하다. 자동차는 오랫동안 본인의 소유겠지만 여자는 잠시 동안만 소유한다.”


여자와 자동차를 동일시하는 태도, 양자 모두 값비싼 물건이다. 둘 다 스타일과 모델이 다양하고 운전을 통해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가 데리고 다니는 여성은 운전하는 자동차처럼 남자의 취향과 재산을 공적으로 규정한다. 미국 남자에게 자신의 자동차를 남에게 운전하도록 맡기는 것은 마치 아내를 빌려주듯이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관념도 이렇게 형성되었다.


무라카미 류는 ‘자살보다 섹스’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중년의 사랑에 필요한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체력이다. 흔히 사랑만 있으면 나이 차이 같은 것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사랑과 체력을 바꾸어 잘못 말한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열정의 불을 지피고 싶을 때 시도하는 가장 보편적 방법이 외도다. 실제로 젊은 여성은 중년 남자가 원하는 것을 준다. 그를 존경하고, 그가 주는 것에 감사하고, 그가 되찾고 싶어 하는 장소에 따라간다.


젊은 애인과 함께하면서 중년 사내는 새로운 성적 충동에 눈뜨고, 마치 삶이 회생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내들은 경악하지만 남편은 외도한 사실에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성적 능력을 되살리는 일이 너무나 급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중년이 되면 더 이상 섹스를 통해 남성다움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청년시절에 섹스로 일원화해둔 욕구와 감정의 창구를 다원화해야 한다. 섹스가 아닌 대화로 감정을 표현하고, 섹스가 아닌 운동이나 취미생활에서 모험심을 추구하고, 섹스가 아닌 업무영역에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김형경의 교과서적인 충고다. 그러나 교과서가 제시하는 표준적 정답은 밋밋하다. 뭔가 군침이 돌 만큼 상큼한 별미를 찾는 것이 사내의 생리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지낸다. 아무리 섹스를 많이 해도 행위 뒤의 허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여자를 만나도 돌아서면 적막감의 늪에 빠진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육체적 긴장 완화 수단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남자는 헛된 시도를 되풀이한다. 그러다 청춘이 휘몰아치는 리비도 에너지가 잠드는 시기에야 섹스로 허전한 내면을 달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것은 휘몰아치는 섹스가 아니라 편안한 친밀감이었음을 깨치게 되는 것이다.”


김형경은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아버지 역할을 하는 남자와 딸 역할을 하는 여자 커플은 재양을 향해 달려갈 확률이 높다. 남자가 너무 큰 짐을 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엄마 역할을 하는 아내와 아들 역할을 하는 남자 커플 사이는 쉽게 안정을 찾는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 먹은 남자라도 그 내면에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죽을 때가지 모성을 그리워한다.”


서초동의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던 한 엘리트 판사에게 큰 일이 벌어졌다. 야근을 앞두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연일 격무에 심신이 지쳤다. 우울했다. 술 한잔을 곁들였다. 심신의 긴장이 약간 풀어졌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 속으로 분홍색 전단지가 스며들었다. 무심코 거기 적힌 번호를 눌렀다. 젊은 여성이 더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받았다. 함께 모텔에 들었다. 그런데 운이 나빴다. 경찰의 현장단속에 걸린 것이다. 성매매 처벌특별법 위반이다. 이 법은 성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는 사람도 처벌한다.


성욕이란 것은 모든 사내에게 숨은 절실한 욕구다. 살인, 절도, 강도와 같은 범죄는 누구나 쉽게 저지르지 않는다. 비록 음주 후 인사불성 상태에서도 이런 행위는 좀체 범하지 않는다. 오랜 학습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확실한 금기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행위는 다르다. 남자의 성은 금기가 아니다. 오히려 성행위를 조장하는 사회문화다. 다만 상시 대면하는 특정인만을 상대로 반복하고, 그 사람과 습관적으로 성행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일부일처제의 기본 규범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사내의 생체리듬에 어긋난다. 오로지 윤리와 도덕이라는 인위적인 의식의 조작을 통해 본능을 제어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내는 언제나 용감한 선택과 부자유스러운 자제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한때 판검사에게 으레 주어지던 작은 일탈에 대한 면죄부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음주운전은 가차 없이 처벌받는다.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상급기관인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검경수사권 갈등 등 때때로 경찰과 검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 때는 현직 검사의 탈선이나 비행을 찾아내는 경찰관에게는 근무 평점에서 가산점이 주어지기도 한다.


법원과 검찰 사이에 껄끄러울 때면 현직 판사의 비리에 대해 검찰의 촉수가 예민하게 작동한다. 이는 모든 권력기관의 본성이다. 당황한 대법원은 즉시 진상 조사에 나섰고,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한 유능한 법관의, 이룬 것만큼 장래도 촉망되던 법조 인생은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른 순간 사실상 끝장이 났다.


그 불행한 판사가 처했던 구체적 사정과 사건의 세부적 정황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일말의 동정을 금할 수가 없다. 판사의 일상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만큼 화려하지 않다. 서울의 젊은 판사는 대부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항상 격무에 시달리고,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나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된 법관의 연령이라면 대개 결혼한 지 15년 내지 20년이다. 아내는 한국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녀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답답한 사정이 위법과 탈선의 변명이 될 리는 없다. 다만 남자의 성욕이란 때대로 어이 없이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다. 이는 사내의 치명적 약점이다.>


(‘중년의 사랑과 성’ 270~276p쪽 인용)




②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


성매매의 배경과 관련해 안 후보자가 적은 문장이다. 이를 두고 TV조선은 13일 “여성을 원하는 게 사내의 염원이어서 성매매는 근절하기 어렵다고도 썼다”고 보도했다. 정의당은 14일 추혜선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해당 문장 등을 인용하며 “성매매를 합리화하며 저열한 성인식을 드러냈다. 무척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문장은 ‘남자가 성매매를 하는 이유’라는 챕터에 나온다. 다음은 전문이다.



<젊은 여자는 정신병자만 아니라면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구걸하느니 당당하게 매춘으로 살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려는 사내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셰익스피어의 법률 희곡 ‘자에는 자로’에는 매춘금지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도덕적 이상이며 얼마나 무모하고 무익한 정치적 시도인지를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가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등극한다. 취임 직후에 대대적인 사창 단속이 벌어진다. 마치 새로 국왕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아니면 은근히 비꼴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이듬해에 이 작품은 궁정에서 직접 상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작품 속에서 사창가의 단골손님인 한 하층민 사내가 매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비상식적 법을 탄식한다. 그는 이 법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비엔나 시의 모든 사내의 불알을 까서 자빠뜨리자는 얘기입니까?”

그의 항의는 모든 사내들의 항변이기도 하다. 세속의 법은 결코 시장의 원리나 인간의 본능을 정복하지 못한다. 육체의 본능은 이성의 통제에 저항하고 거부한다. 자신의 몸을 팔려는 여성이 있고, 성적 본능을 제어하기 힘든 사내가 있는 한 매춘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어떤 고결한 종교와 윤리적인 이상을 내세워도, 그리고 아무리 엄한 처벌을 내려도 매춘을 근절할 수는 없다.


인간의 몸이 재화로 거래된 역사는 길다. 노예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다.>


(‘남자가 성매매를 하는 이유’ 119~120쪽 인용)



③ “남자의 세계에서는 술이 있는 곳에 여자가 있다. 술과 여자는 분리할 수 없는 보완재다.” “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술과 성(性)에 대해 조명하면서 쓴 문장이다. 세계일보는 14일 “‘술자리엔 여성이’ 라고 해 파문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같은 날 “여성 비하적 성격이 짙은 표현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문장은 ‘술, 여자, 그리고 에로티시즘’ 챕터에 등장한다. 다음은 전문이다.



<남자의 세계에서는 술이 있는 곳에 여자가 있다. 술과 여자는 분리할 수 없는 보완재다. 여자 없는 술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내 혼자 마시는 술은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고, 사내들만의 폭음은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위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한다. 정 없으면 장모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다. 이는 만국에 공통된 음주문화다. 여성이 술꾼들을 잘 다루기 때문이다. 진지한 이야기든 실없는 이야기든 여성은 사내들의 사연을 잘 들어주고 반응해준다. 왜 사내들이 술집 마담에게 아내나 자신의 비밀을 쉽게 털어놓는 것일까?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김형경은 ‘남자를 위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단둘이 있을 때, 혹은 남자들끼리만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파괴적이 되는지……. 화제는 저열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작은 일로도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곧잘 파괴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곳에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남자들은 부드러워지고 신사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게임의 룰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대체로 수긍할 만한 관찰이다. 우리 세대 사내들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섹스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밝은 곳에서는 전혀 욕망이 일지 않는 사내도 많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고, 오랫동안 몸에 배인 습관이 되었다.

사실 성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이다. 함부로 드러내놓는 게 아니다. 말하기도, 실행에 옮기기에도 왠지 쑥스럽고 계면쩍은 일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취기를 빌지 않고는 사랑을 고백할 용기도 내지 못했던 민춤한 세대의 사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벌건 대낮에 벌이는 ‘불륜 행각’은 짐승의 짓거리나 다를 바 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요즘 세대처럼 섹스는 건전한 일상이 아니라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에로티시즘은 디오니소스 신의 축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통음과 난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축제였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 축제의 신, 위반의 신, 광기의 신이다. 평상시에 금기였던 행위를 축제에서는 위반할 수 있었다.

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는 동물적 광기가 신성의 체험으로 구현되는 황홀경의 절정이었다. 종교가 요구하는 것은 과잉이요, 희생이요, 축제다. 황홀경은 고뇌와 죄의식을 동반한다. 이렇듯 디오니소스 축제는 평상시의 인간 질서를 초월하는 종교적 신성의 체험이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교는 로마제국 초기에 기독교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다가 기독교의 번성과 함께 소멸했다.

기독교의 역사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징벌의 역사다. 영원한 왕국인 낙원은 내세에나 이를 수 있는 곳이다. 성실하고 근면한 노동을 방해하는 현세의 쾌락, 지상의 낙원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는 배격되어야 했다. 다음은 보들레르의 명시 ‘악의 꽃’의 구절이다.


지상의 관능은, 그리고 유일한 관능은 확실하게 악을 자행하는 데 있다.


보들레르의 악은 현세의 낙원인 술, 섹스, 마약 등 각종 환각제의 실험실이다. 르네상스는 기독교가 지배하기 이전의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활이자, 한마디로 에로티시즘의 부활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오늘날 성의 담론이 풍부해진 원인을 신의 죽음에서 찾았다. 현대사회에서 신을 죽이면 죽일수록 성의 표현은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술, 여자, 그리고 에로티시즘’ 261~263쪽 인용)


④“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사내의 생리다”


안경환 후보가 남성의 데이트 폭력을 지적하면서 쓴 문장이다. 한겨레는 14일 이 문장에 대해 “남성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하진 않았지만, 남성의 행위를 생물학적인 본능으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장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이라는 챕터에 나온다. 다음은 전문이다.



<“키스를 받은 입술은 윤기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달처럼 더욱 빛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에 나오는 말이다. 첫 키스는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사람을 친밀한 이성으로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다. 또한 첫 키스는 곧 ‘외로움의 극복’을 상징하는 일대사건인 만큼 짜릿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짜릿한 쾌감은 순전히 신경말단의 자극과 생물학적 충동의 충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짧은 찰나일지라도 차가운 익명의 세상에서 우리를 둘러싸던 고독으로부터 벗어난 기쁨 때문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심오한 뜻이 무엇이든, 세속의 독자는 제각기 첫 키스를 추억한다. 날카로웠던 어색했든 슬펐든 당황했든, 그도 저도 아니라 별반 감흥이 없었든. 요새는 키스에서 그치지 않는 데이트가 늘어났다. 언제나 남자의 간곡하고 절박한 욕구가 원흉이다.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합의한 한계를 깨는 것은 남자다. 만약 성인 여자가 결혼할 때까지 섹스를 절대적으로 거부한다면 남자친구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괴로움, 폭력으로 강요된 침묵, 그리고 폭력에 의한 죽음,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 연속선상의 현상들이다. 지구에서는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지만 그 사건들이 인권문제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력에는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다. 그러나 젠더는 있다.”


데이트에서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전받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추행을 비롯한 크고 작은 침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강간죄를 논함에 있어서는 특히 현저한 지배자 중심의 논리가 법원 안팎에 팽배해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 법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법원은 여성에게 ‘최후까지의 저항’이 있었는가 여부로 강간죄의 성립을 판정했다.


“저항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녀가 아무리 미온적인 태도로 굴복했다고 할지라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부녀의 승낙이 아무리 늦게 주어졌다 할지라도 또는 아무리 강력한 물리력이 동원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강간이 아니다.”


데이트 폭력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친밀한 상대의 폭력으로 병원이나 무덤까지 간다. 남자는 성적 욕망과 함께 그 욕망이 거부될지도 모르는 불안을 함께 품고 여자에게 접근한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 사내의 생리다. 거부되면 불안은 분노로 전환된다.


불안의 분노와 욕망은 항상 함께 존재하며, 두 가지가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된 상태에서는 언제든지 에로스가 타나도스로, 사랑이 죽음으로 바뀔지 모르는 위험이 존재한다. 강간에 저항하는 여성은 ‘강간을 당한’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한다. 미국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강간(Rape)’은 정곡을 찌른다.


경관이 하나 있다. 그는 강간 예비범이고 가장이다.

그는 당신의 이웃이고 당신 오빠의 죽마고우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이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남성은 강간범이 될 수 있다. 경관으로 상징되는 세속적 권위와 물리력을 가진 사내는 힘의 철학에 산다. 남성이 자신의 존재와 힘을 과시하는 수단은 타인을 지배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성에게는 강간도 힘의 지배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가 정화를 신고 은빛 배지를 달고

말을 타고 권총에 손을 뻗을 때

그는 이미 당신에게는 타인이다.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친구, 더없이 정겨운 이웃 아저씨인 남성도 일단 가부장제의 일원이 되고 나면 즉시 지배자로 탈바꿈한다. 그러고는 피지배자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당신은 그를 잘 모르지만 그를 알아두어야만 한다.

그는 당신을 죽일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와 그의 애마가 쓰레기더미를

야전사령관마냥 헤집고 다니고

싸늘한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그의 이상은

대기에 얼어붙은 구름이 되고


남성은 모든 사회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여성의 권익은 여성 자신의 독자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성의 양보와 관용에 의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당신은 그에게 달려가야만 한다.

치한의 체액이 아직도 당신의 허벅지에 끈적거리고

당신의 분노가 미친 듯 소용돌이칠 때

당신은 그에게 자백해야만 한다.

강간당한 죄가 있노라고.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강간당한 여성을 감싸주고 약탈당한 권리를 보상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벌한다. ‘강간당한 죄’가 있노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유부녀 강간범을 ‘가정파괴범’으로 불렀다. 강간당한 사실만으로 가정파괴로 이어진다고 추정했던 것이다.

강간범의 처벌에 관한 법리와 적용 관행도 여성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되어 있다. ‘진짜 강간(Real Rap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하버드 법대의 수전 에스트리치(Susan Estrich) 교수는 실제로 강간당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면서 지배자 남성의 윤리인 강간죄의 법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보다 앞서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가 쓴 책 ‘우리 의사를 무시하고(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의 머리말에 담긴 절규는 많은 사람의 가슴에 피를 끓게 만들었다.

“모든 남성이 끊임없이 우리를 강간한다. 그들의 몸으로, 눈으로, 그리고 뻔뻔스러운 그들의 도덕률로.”


근래 들어 여러 공공장소에서 ‘성폭행은 범죄입니다’라는 표어를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목포는 항구다’라는 옛날 가요의 제목처럼 실소를 짓게 한다.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거듭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몽매한 야만인 사내에 대해 문명사회의 이름으로 건네는 계고장이자 성폭력에 무딘 사회, 심지어 성폭력을 관용하는 문화에 대한 엄중한 경고장인 것이다.


성적 지배권을 극도로 누리던 남자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기 힘들다.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농담도 자칫 잘못하면 성희롱이 되고, 악의 없는 친밀한 신체 접촉도 성추행이 된다며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은 크게 달라졌다. 성 선택권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존감이자 특정 남자와의 관계가 끝나더라도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105~110쪽 인용)


팩트올은


기자들과 후원자들이 만든 비영리 언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기 위해 이름을 ‘팩트올’로 정했습니다. 팩트체크와 탐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Follow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롱패딩을 싫어하게 된 계기
real896pc
72
10
7
이쁜 순우리 말들
acb3114
82
122
5
짝짝짝 👏👏👏
plus68
14
1
1
황교안의 심재철 물먹이기! "역시 황교안 답다..."
philosophy78
5
1
1
[사무리] "조국이 박형철, 백원우에게 지시했다고? 그게 뭐! 당연하거 아냐!"ㅣ20191210-5
philosophy78
4
1
0
삐지지마라.
hyunToT
3
3
0
네가.. 밉다가도
hyunToT
6
3
0
미국인들이 한국 위치를 모르는 이유.jpg
ggotgye
25
2
11
보고싶다
werio
9
5
0
자라면서 점점 내성적으로 변했다는 사람들 특징
bookbanggu
5
8
0
2019년 12월 12일(목) 추천 시사만평!
csswook
9
1
1
소고기도 아니고, 돼지고기도 아니고... 애기들 급식에 스팸 넣을 정도의 급식비를 반대하다니... 이런 색히들이 세비 2억씩 받아 쳐무면서 한우 쳐묵쳐묵...ㅉㅉ 아 ...진짜 !!! 잘 좀 뽑읍시다 .... 김재원 "스팸 넣으면 삭감" 으름장 '어린이집 급식비', 결국 '찔끔 인상'? | 다음 뉴스 - https://news.v.daum.net/v/20191210162622964
plus68
11
0
8
하나님 꽉 잡고 협박하는 미친 목사
real896pc
42
4
26
교회개혁연대 "전광훈 '하나님 까불지마'? 이단 사이비가 할말"
nocutnews
5
1
6
[사무리] 황교안이 겨우 8일 굶고 장악한 자한당. "어쩌다 제1야당이 이렇게 됐을까..."ㅣ20191210-7
philosophy78
4
1
0
브릿지
vladimir76
5
1
0
판사 이래도 되나😠😡 대한민국의 법이 ...이래도 되나😠😡 수치다!!!
plus68
19
1
10
타다를 응원해주세요
Skella
9
1
1
[사무리] "왜 유재수 수사하지 않았냐고? 그런데 왜 김기현 측근비리는 수사했다고 난리야!"ㅣ20191210-4
philosophy78
5
1
0
요즘 견주들이 반려견 버리는 방법
real896pc
29
2
5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