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행복은 '불행'이다


가끔 보면 흥분되는 책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합니다. 물론 나머지의 시간을 실망을 하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꾸 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기대'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보다 낫기를 경제, 사회, 정치 등의 부분에서 바랍니다. 이번 정부에게는 그냥 상식만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사실 핵심은 '행복'입니다. 자주하는 비유지만 행복은 행복감과 다릅니다. 행복한 감정만을 위한다면 우린 매일 마약 같은 흥분제나 각성제를 먹어야겠지만 행복은 행복감과는 다릅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를 읽으면 그 차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하고 있습니다. 여튼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좌절하는 부분이 이 대목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행복이냐하는 것이지요. 대통령의 행복이냐, 국민의 행복이냐, 노동자의 행복이냐, 기업의 행복이냐 이 상태가 무척 애매하고 도통 나랑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행복을 말해도 내 아이의 행복과 옆집 아이의 행복이 같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입시 제도가 없어지면 모든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행복할까요. 모두의 행복이라는 어쩌면 전체주의같은 이 말에서 우리는 언제나 좌절해왔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말도 안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요. 아니 그 사람 하나 하나를 어떻게 다 챙기냐고 말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겠습니다.


4대강에 들어간 22조원의 돈을 출퇴근하는 우리의 교통 문제에 쓴다면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고생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하나 하나는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즉 행복감이 아닌 행복을 위해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공통의 조건'이 있기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없애고 임금 수준을 높이고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은 개인이 행복하기 위한 공통의 조건입니다.


갑질과 호갱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정한 계약을 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와 정치 그리고 경제 영역에서는 모두 숫자를 보고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평가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의 경기 사정이 나아지고 수출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기는 커녕 실업률만 오르고 자영업 매출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떨어지고 매출이 오른다는 수치를 발표해도 우리는 내 삶과 별로 관계없다는 것을 금방 확인하게 됩니다.


선진국 프랑스도 내일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5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런 이유로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의 투표권을 포기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삶과 전체의 삶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갖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행복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런 생각은 마치 행복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미국식 상식과 충돌합니다.


'네가 노력안해서 그래!' '그렇게 놀기만 하니 당연하지!' '네가 지금 그 모양인 건 네탓이야!' 이런 상식 말입니다.


행복은 국가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회는 승리자와 패배자 밖에 없습니다. 개인은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개인을 좌절시켜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미국이 이런 경우입니다.


미국은 개인의 행복은 개인의 노력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국가의 가치관입니다. 공동체 모두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가 어딨냐구요?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이 북구 유럽인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와 다른 이유입니다. 개인이 없는 복지국가는 숫자만 남습니다.


복지 비용은 엄청나게 투입되는데 개인들은 불행한 나라입니다.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라와 제대로 쓰는 나라의 차이입니다.


오늘은 문자로 폭염이 쏟아진다는 재난 경보가 문자로 도착한 날입니다. 이런 날이 앞으로 3달은 계속될텐데요. 국민이, 노동자가, 빈민이, 자영업자가 아닌 '개인'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노르딕 3국이라고 부르는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의 이야기를 읽어보며 개인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영상 32도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진정한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개인주의가 뭔지, 미국처럼 자기계발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일의 노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노르딕 3국처럼 여가 시간, 가족, 행복 등이 중요한 개인주의의 가치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공부안하는 개인과 국민은 결국 자기관리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어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인지도 아는 개인과 모르는 개인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성장 즉 생산의 시대에서 취향 즉 소비의 시대로 발전 했다면 이제 행복의 시대로 넘어가는 그 출발점에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처럼 더더 불행해질 것인가 아니면 노르딕 3국처럼 조금 더 행복에 다가갈 것인가의 시점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아누 파르타넨이 쓴,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입니다 소개하는 책은 아누 파르타넨이 쓴,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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