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잔재 중 사라지지 않고 잘 지켜지는 것

일제강점기 잔재 중 사라지지 않고 잘 지켜지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삼베 수의와 장례 예법과 절차이다.


원래 우리 전통은 죽은 이에게 삼베를 입히지 않았고 이는 예법에 완전 어긋난다고 한다.

왜냐면 거친 삼베는 흉복(凶服)에 쓰였기 때문에 죄인에게 입히는 옷이었고

주로 죄인이나 고인이 가족들이 ('부모를 여읜 죄인'이라는 의미로..)들이 삼베옷을 입었기 때문..!

(죽은 이에게 삼베를 입힌다는 것을 예법에 따라 돌아가신 분을 죄인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삼베옷은 아주 가난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입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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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의(襲衣)염의(殮衣)

가장 귀한 옷

고부 이씨 묘 출토 17세기 접음단치마

청주 한씨 묘 출토 1500년대 후반 의례용 치마

충정공 정응두 묘 출토 1500년대 단령

이익정 묘 출토 심의


유물 출처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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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랑 한참 동떨어진 삼베 수의를 사용하게 된 건 일제강점기시대고 삼베 수의 말고도 완장, 국화 장식, 영정사진, 리본, 근조화환 이런 것도 전부 일제의 잔재이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민족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 일환중의 하나인 '의례준칙'을 발표하면서 장례 예법도 바꿔버리고 수의도 가장 싼 것인 포목(삼베와 무명)만 쓰게 만든 것!!. 에잇..엠병할 놈들..ㅠㅠ

원래 팔에 완장을 차지도, 가슴에 리본을 달지도,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로 장식하지도, 영정사진을 사용하지도, 근조화환을 세우지도 않았는데!!...ㅂㄷㅂㄷ

장례 날짜도 예법과 전혀 다르게 지정되었고, 장례 방식과 상복도 일제 입맛대로 제정..

전통 상여 행렬을 억제하기 위해 자동차 사용을 허가했고, 상여소리를 하지 않고 엄숙하게 치르도록 했다.

상제례 의식을 약화시킴으로써 효를 중요시하는 전통이나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걸 막으려 한 의도인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전통장례는 꽃은 상여에 종이꽃을 단 게 전부고, 영좌 뒤에는 그림이나 글씨 없이 흰 종이나 천을 바른 병풍인 소병(素屛)을 세웠다. 유족을 위로하고, 슬픔을 역으로 표현하고, 산역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기 위해 일부러 장례를 시끌벅적하게 치뤄졌으며 종이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이끌고 상여소리를 내며 행렬이 이어졌고, 밤을 새우며 선소리, 달구질소리, 상여래, 빈상여놀이 등 다양한 놀이판을 벌였다. 망자를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다같이 이겨낸다는 의미나 의식도 있었는데, 그걸 다 없애고 예법과 완전히 어긋나는 형태로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만 남겨버렸다..일본놈들이..


가족묘를 없애고 공동묘지를 만든 것도 이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상여 보면 되게 화려하다.>>> 이건 시골에서 그나마 근근이 남아있었다는..


일제는 전통 문화를 아예 무시해가며 장례 문화와 용어, 예법까지 자기들 입맛대로 바꿨고, 그건 현대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삼베 수의랑 국화 장식은 진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법에 따르면 이는 고인을 죄인 취급하는 것이며,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장식하는 것을 이어나가게 되는 셈이니까..

출처 : 더쿠



그래서 이런 거 아는 어르신들은 절대 자기 삼베수의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새로 고운 한복 맞추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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