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기 물타기

연애 사이. 겨울과 여름 사이. 봄바람을 닮은 달달한 썸이 그와 나 사이에 오고가는 계절. 연예의 계절에서 썸은 봄이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한 무렵, 출근길에 만난 개나리의 꽃봉오리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시간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저절로 봄을 맞이하겠지만 그와 나의 관계를 사심 없이 무위자연하기에는 차오르는 욕망이 점점 거세진다. 밀물이고 썰물이고 모르겠고 수위를 넘어 모래사장으로 돌진하고 싶은 파도처럼.




파도는 모래사장으로 밀어붙일 듯이 나아갔다가, 너무 나갔다 싶으면 다시 바다로 빠져 나간다. 이제 바다로 뛰어들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한발 짝 내밀어 보는데 다시 빠지는 파도. 아무래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사랑을 고백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일부를 짓밟아도 좋다고 승낙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견고히 쌓아 올린 체면과 자존심은 상대의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에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랑고백은 밑지는 장사이자 자아정체성의 목숨 건 도박이기 십상이다. 손해보고 망신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썸만 타는 건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쿨 하게 감정을 노출시키고 큰 손해 입지 않을 만큼의 시간과 돈을 적당히 배팅하는 것.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 슬슬 찔러보며 마음을 주다가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아무 일도 없던 척,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냥 착각이었네’ 자조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사랑을 어렵게 여기게 되는 것. 천진했던 마음 한 꺼풀이 딱딱하고 건조해지는 것. “난 썸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 몰라. 키스했으면 1일, 우리 사귀자" 라던 <쌈, 마이웨이>에서의 시원한 고백은 그냥 드라마 속 이야기구나, 역시나 지어낸 이야기로구나, 라며 시니컬해지는 것. 그래서 결국엔 그에게 물어보면 한방에 끝날 말을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된다. “남자가 이러는데 나한테 관심 있는 건가?” 면전에 대놓고 ‘그냥 어장관리인거 같은데.’라고 잘라버릴 지인들은 제외하고 최대한 둥글둥글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잘해봐.”라며 나 듣기 좋으라고 격려해줄 사람들. 직접 듣고 싶은 고백을 에둘러, 간접적으로 표현해줄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봄으로써 이 썸 타는 기분에 달달하게 취해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연애냐 아니냐의 선을 가르기 전의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건지도. 일단 전면전에 나서면 진짜 사귀게 될 수도 있지만 ‘착각에 불과했다’는 팩트 폭력을 당할 수도 있으니 몸을 사려야 한다. 그러나 이미, 나의 미래에는 그가 도착해 있는 것만 같다. 시간이 흘러 미래가 오늘이 됐을 때 그가 없다면 많이 허전할 것 같다. 썸은 어쩌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랑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고백은 남자가 하는 거라 믿었던 시대가 뒤로 물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점점 ‘백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로 결의를 다지지 않게 되었다. ‘나무’라는 목표를 설정해 두고 일방적으로 ‘찍어 내리는’ 식의 방식을 인간관계에 채택하기에는 쌍방향 소통을 중요시하는 SNS 시대에 밀어붙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워서일까. 썸이 남용되면 어장관리가 되거나 매번 썸에서만 그치는, 사랑의 초반부에만 능숙한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지만 좋게 본다면 우리의 촉이 상대의 감성과 감정에 더 민감해졌다는 뜻도 된다. 상대의 눈빛을 살피고 그 감정을 추측하며 상호 간의 니즈를 맞춰나가는 관계의 방식은 때론 내 감정이 상대의 감정에 이입되어 과잉해석 되버릴 여지도 있지만 때론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신비로운 만남이기도 하다. ‘신비롭다’는 말로 좋게 뭉뚱그려 결론 내리기에는 어딘가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구석도 있지만, 썸은 사랑에 목매기엔 더 열심히 목매야 할 것들이 많아진 청춘들의 가성비 좋은 연애놀이인지도 모른다. 막상 썸을 타기 시작하면 가성비니 절약이니 하는 건조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지만. 먹고 살기 힘든 청춘들에게 썸이라도 없으면 이 사막을 어떻게 견디겠나. 살다보면 좀 촉촉한 초코칩 같은 코너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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