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가는 길; 인천~이르쿠츠크 직항이 있다. 가격은 6개월전에 예매할 경우 1인당 약 55만원. ▲이르쿠츠크~알혼 섬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했다. ▲선착장에서 알혼섬까지는 배로 10~15분 정도 걸린다. 선박 이용료는 무료다. ▲알혼 섬에서 한 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불칸 바위에 도착한다. ▲붉은 색과 흰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세계 샤머니즘의 발상지다.
View
칭기스칸의 전설을 품고 있는 세계 최대 담수호
6개월 전부터 준비… 1인당 130만원으로 해결
이번 여행을 위해 6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다. 항공권을 미리 예매해 둔 덕에 1인당 비행기 값을 55만원으로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1인당 총 비용은 130만원 정도 들었다. 왕복 항공료, 2번의 버스 대절, 가이드 비용, 7번의 외식, 알혼 섬 북부 투어 등의 일정이었다. 참고로, 한국 국적기는 3월부터 9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운항한다. 그것도 밤 비행기 밖에 없어서 현지 도착하면 자정이 된다.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 중간 쯤에 위치한 알혼섬.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혼섬에 있는 ‘불칸’(또는 부르한) 바위였다. 칭기스칸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이 거대한 바위는 샤머니즘의 성소로도 불린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여행사에서 18인승 버스를 공항에 보내 왔다. 여기서 불칸 바위로 가려면 알혼 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이칼 호수에는 20여개의 섬이 있는데, 이 중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알혼섬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 입구까지 버스로 약 4시간이 걸렸다. 첫 배가 뜨는 시간은 아침 8시.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공항 인근 슈퍼마켓에 들러 느긋하게 장을 보고 갔다. 그랬는데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새벽 4시 반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일출을 보기로 하고, 선착장 옆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올라갔다.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장관 속에서 ‘내 자신은 어떤 존재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경이로운 새벽을 맞았다.
떠오르는 태양이 잔잔한 호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를 감싸고 있던 구름도 덩달아 불그스럼하게 변했다. 이윽고 태양의 꼬리가 일직선이 되더니, 거대한 붉은 기둥을 만들어 냈다. 일행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알혼섬 불칸 바위에서 명상
선착장에서 알혼섬까지는 배로 10~15분이 소요된다. 신기한 것은 러시아 수송선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자동차까지 함께 수송해주는 큰 배 3척이 그냥 공짜다. 우리나라 같으면 1인당 만원, 차는 10만쯤 받지 않을까. 엄청난 돈벌이가 될텐데도 모두 공짜다. 단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 만으로는 이해가 안됐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始原)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이칼 호수. 우리와 그들은 원래 한 뿌리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드디어 알혼섬에 내렸다. 알혼 섬, 그 명칭마저 정답게 느껴졌다. 러시아어가 아니라, 우리 말 ‘알’과 ‘혼’이 합쳐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잉태한 알, 그 속에서 각 개성이 드러나는 뿌리가 혼이다. 즉 지구의 생명 기원이면서 각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뿌리가 이 섬이란 뜻 일 게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한 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불칸 바위에 도착했다. 불칸 바위 뒤쪽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불칸의 ‘칸’은 크고 거대함을 상징한다. 칭기스칸의 ‘칸’ 또한 불칸의 ‘칸’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불칸 바위는 붉은 색과 흰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는 방향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바위가 희게 보이는 장소가 있다. 수십 명의 사진작가들이 카메라 포즈를 취하고, 헬리콥터가 매일 뜨고 내리면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자리다.
이 바위 언덕에는 13개의 샤먼 기둥이 서 있다. 각 기둥마다 오색 천이 둘둘 말려 있다. 천지의 기운이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샤먼 기둥은 어릴 때 시골에서 보았던 서낭당과 흡사하다는 느낌이다. 서낭당의 모습에서 고향이 느껴지지 않던가. 샤먼 기둥들 밑에는 소원을 빌며 제물로 던진 동전들이 널려 있었다.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풍경이 한국이나, 유럽이나, 바이칼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수명이 열흘 늘어난다
불칸 바위 밑으로 가보았다. 호수물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빛났다. 일행은 너도나도 물에 손-발을 담갔다. ‘한번만 물에 몸을 담가도 수명이 열흘은 늘어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예 팬티 차림으로 호수에 몸을 던진 일행도 있었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호수의 경건함을 몸으로 체험했다.
숙소에서 미리 준비해 간 햇반과 밑반찬으로 종종 식사를 해결했다. 이곳 숙소와 음식은 추천하기엔 좀 민망한 수준이다. 방갈로 형태의 2인 1실이 1박에 약 5만원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침 식사다. 빵과 우유, 죽 한 그릇이 나오는 데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우리는 불칸 바위 옆에서 각자 방석을 깔고 아침과 저녁으로 명상을 했다. 구도자들에게 명상 장소는 특히 중요하다. 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한 장소에서는 감각이 훨씬 잘 작동되기 때문이다. 우연히 홍콩에서 온 한국인 미혼 여성도 만났다. 혼자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 갔다가 바이칼로 온 서른 두 살의 이 여성은 “영혼의 짝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펼쳐지는 바이칼호의 저녁 노을에 탄성
바이칼 호수의 전경은 동이 트는 아침 뿐 아니라 노을이 지는 저녁에도 대단했다. 석양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붉은 노을이 하늘의 절반을 뒤덮었다. 한 시간 정도 펼쳐지는 빛의 향연에 우리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좀 더 운치를 즐기려면 높은 곳에 있는 러시아 카페로 가면 된다. 진한 커피 한잔을 곁들이면 행복감에 저절로 빠져든다.
우리는 명상 틈틈이 투어에 나섰다. 장갑차 같은 8인승 미니버스를 이용했다. 낡았지만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데는 제격이었다. 알혼섬 북부 투어를 위해 버스 2대를 불렀다. 운전기사는 부리야트족 출신이라고 했다. 부리야트족은 한민족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소수민족이다.
“부리야트족 출신 운전기사 통해 한민족 뿌리 느껴”
관광지에 내려 해안을 구경하던 도중, 운전기사 목에 매달려 있는 징 같은 동그라미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냐”고 물었다. 운전기사는 “딩그리 신의 보호문장”이라고 말했다. ‘딩그리’라면 단군을 다르게 부르는 말 아닌가. 카자흐스탄 일부와, 중국의 위구르족, 중앙 아시아의 소수 민족 일부에서 ‘딩그리’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바이칼의 알혼에서 단군의 흔적을 만났다는 데에서 작은 위안을 받았다.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생이란 과연 뭘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보았다. 열흘 간의 바이칼 명상 여행에서 이런 답을 얻었다. “인생은 ‘몸’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혼’이라는 도화지에 기록해 나가는 여정 아닐까?” (김종업, 사단법인 도나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