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4. 사랑해요, 의 의미.

“그래서 확인할 게 뭔데.”
“이 가게에서 확인할 건 아니고. 점심 잘 챙겨 드세요. 그럼 전 이만!”
“뭐어-? 그럼?!”
“북어국 식기 전에 드세요! 뜨끈뜨끈할 때 먹어야 해장이 잘 되지.”



그러곤 휙, 가게를 나서버리는 도헌. 로라는 그런 도헌을 의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다 이내 도헌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 그러곤 어딘가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도헌의 뒷모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야! 구도발! 너 어디서 사고치고 다니면 죽는다!”




그런 로라의 목소리를 들은 도헌은 걷던 걸음을 멈추곤 로라를 돌아보며 자신이 알아서 다-, 한단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찝찝한 로라였다. 무슨 꿍꿍이야 대체. 하며 로라가 입을 쭉 내밀곤 걱정스런 얼굴로 한참이나 도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는데,



“어라…?”



그때 보았던 여자였다. 지난 번 현우와 담판을 지었던 날 밤. 세찬 비를 홀딱 맞은 채, 마감 시간이 다 되어 자신의 가게에서 옷을 사갔던 여자. 여전히 신선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보단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짙긴 했지만. 로라는 상가 안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자신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근데 저 여잔…저번에두 여기 나타나더니? 여기서 일하나?”



로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네킹 디피를 바꾸기 위해 오늘 들어온 신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자의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만 같았다. 로라는 마네킹의 팔을 빼다 말고 다시금 가게 밖을 돌아보았다.



“느낌이 이쌍하단 말이지-. 저번에도 그렇고…뭔가 저 여자를 보면 느낌이 쎄 한데.”



* * *



“수의사랬지? 이 근처일 텐데…”



도헌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상가 안을 훑었다. 어슬렁거리며 상가 안을 지나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도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아침부터 누구래. 도헌은 가만히 모르는 번호를 내려다보다 이내 다시금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원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도헌이었다.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도헌은 다시 기태의 병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는데, 벨소리가 끊겼다 다시금 울렸다. 아까와 같은 번호였다. 어디 급한 데인가. 도헌은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고민했다. 받을까, 말까.




“여보세요.”



고민하다 도헌은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댔다.



“도헌…아.”



구 여친 한지혜였다.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 도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도헌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이대로 그냥 끊을까, 말까. 도헌은 망설였다.



“얘기 좀 하자. 내가 파리로 갈게.”
“그만하자고 했잖아.”
“그만…못하겠어. 너랑…끝 못내겠다구.”
“그럼 왜 그런 짓을 한건데.”



도헌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해졌다. 그 말을 내뱉는 도헌의 목소리도, 굳어 있었다. 지혜는 단번에 도헌이 화가 나 있음을, 그리고 그 화가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3년을 만나온 도헌은 언제나 장난기도 많고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뿐더러 쉽게 마음을 풀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구도헌.”
“미안하단 말. 별로 안 듣고 싶고 그 말로도 소용없단 거 니가 더 잘 알잖냐.”
“기다릴게. 니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너 기다리고 있을게.”



지혜의 말에 도헌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실컷 바람피우고, 다른 남자랑 놀아나고. 내 마음, 내 진심, 모두 짓밟아 놓고 나서는 고작 한단 소리가 미안하다고, 기다린다고?”
“도헌아…”
“진짜.”
“…….”
“욕 나온다.”
“…….”
“그래도 사랑했던 너니까. 차마 그런 너한테 쌍욕은 하고 싶지 않다. 끊어라. 다신 전화 하지 말고.”



하고 도헌이 전화를 끊으려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냈는데, 순간.



“사랑해…!”



지혜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도헌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해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한 여자의 조그마한 목소리. 도헌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



왠 여자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을 하고서 한 남자 앞에 서 있었다. 도헌은 다시금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 채,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 미안해…그러니까…그만하란 말은 하지 말아줘.”



지혜가 애원했다. 하지만 도헌의 귀엔 지혜의 목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도헌은 사랑해요, 라며 낮게 읊조리고 있는 슬픈 표정의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 여자 역시, 지혜와 같은 말을 남자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그만하란 말은 하지 말아줘요.”



도헌은 굳은 표정으로 여자를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여자가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도헌을 바라보았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도헌. 도헌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지혜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좀. 꺼져라, 한지혜.”




그러곤 전화를 뚝, 끊었다.



“그냥 지금 마음이 좀 어지러워서 그래. 그러니 일단 돌아가. 연락할게.”



남자가 도헌만큼이나 싸늘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그 말을 내뱉곤 이내 뒤돌아섰다. 동시에 도헌 역시 등을 돌려 기태의 병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남자가 휘적휘적 빠른 걸음으로 도헌의 옆을 지나쳤다. 그러곤 도헌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문을 열고 휙, 사라졌다. 도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지나치는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훤칠한 그런데 조금은 익숙한 실루엣, 그리고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듯한 향수 냄새. 도헌은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투게더…동물…병원….”



동물 병원 안으로 남자가 들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도헌은 직감적으로 방금 자신을 지나쳐 저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기태란 걸 느꼈다. 꾹 쥐고 있던 주먹에, 스르륵 힘이 풀려버렸다.


사랑해요, 라고 기태에게 말을 했던 그 여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지난 밤, 기태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어가던 그 여자와 동일 인물이었을까. 사랑해요, 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여자 친구라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만하란 말은 하지 말아달란 말이, 헤어지잔 말은 하지 말아 달란 말인지. 아님 혼자 하는 사랑마저 그만해달란 말은 하지 말아달란 말인지. 도헌은 생각이 많아졌다. 우두커니 서서 굳게 닫힌 동물 병원의 문만 바라보다 문득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



그 여자 역시, 그 자리에 도헌처럼 우두커니 서서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 저 남자와 무슨 사이냐고 물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럴 자격은 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도헌의 머릿속을 스쳤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이 순간 왜 오로라의 얼굴이 도헌의 눈앞에 그려지는 것인지. 또 한 번, 뒤죽박죽 모든 생각들이 섞여져 버렸다. 그때,



“어이! 구도발!”



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슬픈 표정의 여자 역시, 고개를 들어 로라를 돌아보았다. 상가 끝에서 분무기를 든 채 휘적휘적 도헌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로라가 보였다. 도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여자를 한 번, 로라를 한 번 바라보았다.



“오…호라.”
“너! 뭐해, 여기서! 내가 사고치고 다니지 말랬지! 왜 상가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어?!”



오호라가 본 건 아니겠지…, 도헌은 순간 로라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민 없는 평온한 얼굴. 도헌은 조심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라는 휘적휘적 도헌 앞에 다가와선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도헌을 향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너. 무슨 꿍꿍인지 말해.”
“그런 거 없어. 확인할 게 있어, 온 거 였고. 확인 할 거 다했고.”
“그래서 그 확인할 게 뭐냐구. 왜 말 안 해줘, 나한텐?”
“그냥 내 개인적인 일이니까? 한가한가 봐요? 가게 비워두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말이야.”



도헌은 애써 웃어 보였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로라는 그런 도헌을 의미심장한 얼굴로 빤히 올려다보다 흠…, 하며 시선을 거두었는데. 어랏? 아까 그 여자가 저기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저 여자야? 로라는 속으로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여자는 로라를 알아보는 것인 지, 아닌 것인 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로라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뒤돌아섰다.



“이상하게…말이야. 저 여자만 보면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지…”
“…왜?”



로라의 중얼거리는 말에 도헌은 로라를 바라보았다. 한 쪽 눈을 게슴츠레 뜨곤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로라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저번에 나 이현우 그 노무 시끼랑 끝장을 낼 때.”
“…….”
“비가 억수로 내렸었거든? 그때, 마감시간 다 돼서 와가지구 옷을 2분만인가? 급하게 사가지고 갔었어.”
“근데…?”
“몰라. 그게 단데. 나 왜 자꾸 저 여자 보면 기분이 이상해지지?”
“…….”
“뭔가 생긴것두 묘…하게 이쁘고? 아! 뭐 물론! 저 여자보다 내가 더 예쁘지만? 눈 코, 다 뜯어보면 저 여자는 만들어진 아름다움이구, 난 태생의 그 선천적인 아름다움이구? 그건 뭐 굳이 얘기 안해두 너도 느낄 거라 생각해.”
“뭐…래.”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여자가 사라질 때까지 빤히 바라보는 로라를 도헌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생각 없고…걱정 없고…긍정적이고…단순하고…순수하고…맑은 사람인데. 도헌은 혼자 궁시렁 거리는 로라를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도 점점 멀어져가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랑해요…란 의미가.”
“뭐?”
“뭘까?”
“뭐래는 거야.”
“그만하란 말은 말아달란…그 말의 의미는 뭘까…”
“뭐야. 너 혹시 구 여친 전화 왔었니? 전화 와선 사랑한데? 그러니 그만하란 말은 그만 해 달래?”



로라는 팔짱을 낀 채, 휙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도헌은 뜨끔한 표정으로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검지를 떡, 도헌 눈앞에 펼쳐서는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별루야. 아주 별루.”
“…그런 거 아니거든?”
“그래서…어유, 흔들리셨어요 구도발?”
“…아니거든?!”
“아주 그냥 마음에 지진이 나고 염병이었나 보네. 야! 정신 차려라? 어?!”
“…….”
“무슨 그런 되도 안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렇게 고민에 빠진 얼굴로 그 말을 되씹고 있냐?”
“…아니랬다.”
“아주 그냥 개그를 하고 자빠졌네, 개그를. 사랑은 얼어 죽을 사랑이냐. 세상 사랑 다 나가 죽었냐?!”
“목소리 좀 낮춰요. 그런 거 아니랬다.”



또다시 흥분하며 씩씩대는 로라의 어깨를 쥐곤 가게 쪽으로 다시금 로라를 돌려세우는 도헌이었다. 도헌의 힘에 밀려 가게로 향하는 내내, 로라는 다혈질의 성격을 죽이지 못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여튼간에. 애인 있는 사람 꼬시는 년, 놈들이나. 애인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신다고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년, 놈들은. 아주 그냥 한꺼번에 싸잡아가지구 그 뭐냐, 밧줄에 꽁꽁 묶어서 바위를 매달아가지고 바다 깊숙이에 던져버려야 해. 아주 그냥 물고기 밥이나…”
“씁. 어디서 그런 나쁜 말을 배워가지고!”
“야. 미쳤니? 나쁜 말? 더 심한 말도 그런 년, 놈들한텐 아름다워. 나쁜 말 좋아하시네. 그러니까. 구도발 너? 그 여자 다신 만나지 마라? 만나자고 살살 꼬셔도. 절대 넘어 가지 말란 말이야!”
“…너나 잘해.”
“그 여자 다시 만난단 소리, 내 귀에 들리기만 해? 넌 그날로 당장 짐 빼야 할 줄 알아.”




로라의 말에 도헌은 피식 웃으며 로라 앞에 우두커니 섰다. 그러자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며 로라가 도헌을 휙 올려다보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요.”
“뭐?”
“그 벤츠남 말이야. 안 만나면 안 돼?”
“뭐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러니까 그 시작…안 하면 안되겠느냐고.”
“야. 니 얘기하다가 갑자기 왜 내 얘기로 튀냐?”
“확실해요? 여자 친구 없다는 거?”
“그걸 꼭 물어야 아니? 여자 친구 있는데 설마 나한테 그러겠어?!”
“…아니 그래. 만나고 말고는 누나 자유야. 근데. 확실히 하고 만나요. 아무래도 그냥 좀…그래서 그래. 여자 친구 있는 지, 없다면 언제 헤어진 건지. 확실히 하고 만나라고.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잖아.”



도헌의 말에 로라는 가만히 입술을 앙다문 채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그럴 사람 아니야. 니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아니야, 그런 사람. 그래 니 말대로 확실히 해서 나쁠 거 없으니. 물어는 볼게.”
“…….”
“근데 너 오늘…좀.”
“…네?”
“심각한 척 한다?! 쪼꼬만한 게!”




하고 도헌에게 윽박을 지르던 그때, 병원 문이 열리고 기태가 나왔다. 도헌을 향해 소리치는 로라를 발견한 기태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성큼성큼 로라 앞으로 다가섰다. 도헌은 굳은 표정으로 기태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남자가 맞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선 굳은 표정의 도헌이, 슬며시 로라를 자신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리고 그걸 본 기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도헌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주 뵙습니다.”
“그러네요.”
“로라씨와 할 말이 있는데.”



그 말에 로라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옷자락을 꾹 쥐고 있는 도헌의 손을 떼어내며 기태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구도발! 조심히 가라!”
“…….”
“그리고 내가 한 말. 명심하고!”



하며 기태와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로라를 빤히 바라보다, 도헌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오호라!”
“뭐?”
“누나도 명심해요, 내 말. 꼭이요!”




불안했다, 도헌은. 매사가 똑 부러지고 칼 같은 성격의 로라였지만,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놓아지지가 않았다. 애인 있는 사람 건드는 년, 놈이나 그런 년, 놈들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년, 놈들은 싸잡아 죽여야 한다고 부들부들 떨던 로라였는데. 어쩐지 로라가 그 년, 놈들의 손에 놀아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러다 문득 도헌은 생각했다.



“근데…나…왜 이렇게 오호라 일에 적극적이래? 오호라가…뭐라고?”




* * *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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