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8. 낮보다는 밤에 더 좋은 당신(1)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라면. 시작을 하려고 하는 거라면.”
“…….”
“그 시작 하지 마요. 나, 오빠 못 놔줘요.”



수정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렸다. 기태는 그런 수정을 들고 있던 찻잔을 놓으며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그녀의 확고한 모습과 확고한 말투에 기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앙다물었다. 수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짙고 흔들림 없었다.



“결혼은 오빠 말대로 우리 둘이 하는 거지만.”
“…….”
“오빠도 원했잖아. 그리고 오빤 나 아님 안 돼요. 오빨 맞춰줄 여자 없어. 오빠도 인정했잖아.”
“수정아.”
“더 안 들을 거예요. 맞아요. 나 지금 보채고 있는 거야. 오빠 붙잡으려고 만나자고 했어요. 마지막 인사? 아뇨. 나 지금 오빠와 이별하러 온 게 아니라, 오빨 붙잡아 두려고 온 거야.”



그리고 수정은 그 말을 씩씩하게 무사히 내뱉고 나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랬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말았다. 기태는 그런 수정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수정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며 검지로 자신의 눈물을 꾹 훔쳤다.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 니가 잘 알잖냐.”
“알아요. 이렇게 내가 다시 붙잡아 시작되는 연애라면 지금까지보다 더 외롭고 아프고 슬플 거라는 거, 오빠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붙잡는 이유는.”
“…….”
“그만큼 간절하니까요.”



기태는 그녀의 말을 듣고 머뭇거렸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한 번도 본적 없었던 그녀의 확고하고 단호한 모습이었기에 무슨 대답으로 그녀와의 이 관계를 끝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혔다. 예상했던 그녀의 대답이 아니었기에 기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것도 아니고. 나의 무슨 행동으로 인해 오빠가…마음이 멀어진 게 아니라.” “…….”
“단지 내 익숙함보다 오빠에게 다가오려는 그 새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서, 마음이 흔들려서 그러는 거라면.”
“…….”
“나는 못 놔요, 오빠. 시작도 그 중간도 모두 오빠가 오빠 마음대로 날 쥐고 흔들었잖아.”
“…….”
“그러니 끝은 그렇게 못 해.”
“…….”
“시작은 오빠 마음대로 시작했을 진 몰라도. 끝은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리고 수정은 뒤돌아서서 카페를 나섰다. 기태는 덩그러니 카페에 남아 멀어져가는 수정의 모습을 쇼윈도를 통해 돌아보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늘은 확실히 끝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거 였음 얼마나 좋겠냐, 수정아. 그래 너도…참 예쁘고…맑고…착한 사람이지. 그런데…이젠…그런 것 역시 모두 내게 의미가 없게 되어 버린 걸.”



기태는 씁쓸해져 오는 마음을 뒤로한 채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잔을 손에 쥐었다. 따뜻한 커피의 온기대신 차가운 유리잔의 냉기만이 기태의 손을 감쌌다. 기태는 가만히 까만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게 하지 않는 까만색의 액체. 기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제…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기태는 마른 한숨만,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 *


“그런데 말이야…그 여자…너무도 슬퍼보였거든.”



로라는 쇼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로준은 먼저 방에 들어가 잠이 들어 버렸고 로라와 도헌은 쇼파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로라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까의 그 여자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도헌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다, 로라를 돌아보았다.



“그 여자?”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라도 한 걸까? 아님 썸 남이랑 잘 안됐던 걸까?”
“뭐래는 거야, 혼자서…”



로라는 중얼중얼 거리다 툭, 아이스크림을 바지 위에 흘려버렸다. 도헌은 그런 로라를 바라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튼 칠칠맞긴.”



‘내가 아까 전에 그 여자한테도 이렇게 휴지를 건넸었는데…괜한 오지랖이었을까?’



“못 볼 거라도 봤데요? 왜 그런데?”
“…아니. 그냥. 괜히 나까지 울적해져서 말이야.”



하며 로라는 다시금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도헌은 그런 로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가, 왜 울적하단 거지? 혹시 그 남자의…얼굴이라도 본 건 아닐까. 덩달아 심각해진 도헌이었다.



“왜…? 왜 울적해져?”
“원래 이별하면…그렇게 가슴 아프게 우는 게 맞잖아.”
“…….”
“근데…왜 난 그러지 못했나…싶기도 해서.”
“뭐래…이 아줌마가.”
“이별하고 나서 그렇게 가슴 아프게 우는 게…어쩌면 덜 슬픈 건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어서.”
“…….”
“이별을 하고 나면…사랑하는 사람과 끝이 났다는 거니까…그럼 슬픈 게 당연한데,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는 게 당연한데…왜…나는 끝이 났는데도…이별을 했는데도.”
“…….”
“그렇게 아파하지…못했을까. 사귀는 내내…어쩌면 난…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그 생각이 들어서.”
“…….”
“지난날의 나에게…너무 미안하기도 하고…애쓴 내 사랑에…수고했다, 말이라도 해줘야 할까 싶어서.”




제법 심각해졌다. 로라는 그렇게 중얼중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헌은 입에 아이스크림을 문 채, 이 누나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로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튼.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네.”
“…오호라 누나 잘 밤에 생각 많이 하면 머리카락 다 빠져요.”
“아냐. 오늘은 애써 밀려오는 생각을 부정하지 않겠어. 잘 자라. 나는 조금 더 사색에 잠겼다가 잠들 테니.”



그러곤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로라. 도헌은 그런 로라의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루하루 아주 살 얼음판을 걷는 것 같네. 내가 봤을 땐 그 남자…여친 있는 거 빼박인데. 시한폭탄 터지는 건…시간문제잖아.”



* * *



로라는 침대에 곧게 누워 천장만 10분 째 끔뻑, 끔뻑,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쓰레기, 개차반이라며 헤어진 ‘이현우’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그에 따른 슬픈 감정이 아니라. 그냥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파왔다. 로라는 슬픈 표정으로 천장만 바라보며 숨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띵동’하는 메신저 알림음이 울리고 로라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 이 노래 듣고 있는 데 로라씨가 생각이 나서요. 같이 들어줄래요.



‘무슨 노래이기에, 내 생각이 났단 거지?’


‘널 처음 본 순간 그냥 나도 모르게 멍하니 웃고만 있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내게 무얼 한 건지. 너만 보게 돼. 시간이 갈수록 내 모든 세상은 온통 너로 물들어 갔고. 이제 나의 하루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너로 시작 되는 거야.’


감미롭다 못해 달달함이 터져 나왔다. 가사는 또 어떻고. 달달함을 넘어 아름다움으로 진득진득하게 물들어버린 가사에, 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로라는 감았던 눈을 떠 싱긋, 미소 지었다.



“이 노랠 들으면…내 생각이 난다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풋풋한 설렘과 떨림이었다. 10대도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20대도 아니면서. 30대의 무뚝뚝해 보이기만 한 남자에게 이런 소녀 같은 감성이 담겨 있었다니. 의외라는 생각과 함께 로라는 또 한 번, 기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이런 감성적인 사람과 함께라면…내가 너무도 행복할 것 같아.”



로라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행복에 겨워 몸부림 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달달함에 로라는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아까의 우울과 슬픔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기태가 들어보라고 전해준 노래와 간지러운 설렘, 그리고 하루 온 종일 떨쳐지지 않는 기태의 미소 짓는 얼굴만이 로라의 곁을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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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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