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서로 똑같은 ‘진보와 보수’… 권력과 인생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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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다. 치고 받는 주먹질만이 다가 아니다. 음모, 술수, 야합, 협잡, 선전, 주장, 배신, 설득, 획책, 투쟁, 비난, 선동, 모략…. 이런 단어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단어는 바로 정치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양면이 다 있기에 화합, 결단, 포용, 상생, 연합, 타협이 적용되는 정치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이다.


정치의 본질은 음양오행관계론에서 타인을 제압하고 극(克) 하는 상극관계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싸움이다. 정치의 본령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일단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 권력투쟁이 정치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선거는 그래서 전투로 묘사된다. 사회, 정치적 운동을 일컫는 캠페인(campaign) 의 다른 뜻이 ‘군사행동’인 것은 그 본질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다. 정당간의 싸움, 후보자들의 경쟁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유권자들 또한 싸움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선거전의 승자에게는 권력이, 그리고 명예가 따른다. 하지만 정당의 구성원이 아니어도, 직접적인 수혜가 없어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 싸움에 참여한다. 그것도 열심이다. 선거시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뉴스 첫머리의 대부분은 바로 정치와 관련된 소식이다. 정치인들의 행태와 잘잘못은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


정치의 싸움은 대개 양 쪽으로 나뉜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개혁과 수구. 비둘기파와 매파. 주화파와 주전파. 대의론과 현실론. 혁명과 반혁명. 공화파와 왕당파. 개화파와 척사파.


역사와 현실을 통틀어 끊임없는 양자간의 대립이 이어진다. 지금까지도 이어져왔고 현재도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싸움이다.


이 싸움의 대표 주자격인 진보와 보수를 두고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실상이 꼭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지만 이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보수와 부패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이다.


보수가 부패로 망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보수의 성공은 바로 돈벌이에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보수의 지향점이 이익 추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진보는 이와 다르다.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진보의 성공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연대와 단결로서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진보의 지향점은 정의와 명분에 더 가깝다는 말이 된다.


체용론으로 살펴보면 진보와 보수는 정확히 반대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보수는 이익을 우선하기에 분배보다 성장에 중점을 두며, 돈벌이에 걸림돌이 되는 불필요한 변화를 거부한다. 현 체제의 지속와 유지를 바라는 이유다. 체제가 불안정하면 주가는 폭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기업가들은 대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진보적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기업’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 발언도 그렇고 최근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가 말한 ‘3류 정치가 1류 기업을 깔보고 있다’는 발언도 그렇다. 밑바탕에는 기업가의 자부심이 깔려있다.


특히 혁신을 꾀하는 기업가들은 스스로 ‘진보적’이라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기업가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변화하는 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주도적으로 기업활동을 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그 본체는 일견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용은 기존의 체제를 전제로 한 틀 안에서의 활동이기에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보수’일 수 밖에 없다. 반대진영에서 제기하는 ‘탐욕스러운 기득권’이라는 공격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알고보면 서로 같은 진보와 보수


이런 평가는 ‘진보’에도 해당한다. 진보는 ‘분배와 정의’를 우선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돈벌이와 발전보다는 현 상황에서 고른 분배와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반대진영에서 보기에 ‘진보’는 가장 중요한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고, 과실을 소비한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새로운 도전과 가치창출보다 잘못을 바로잡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태도는 진보의 본체를 보수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본체가 보수적이기에 그 작용은 진보적이다. 잘못이 드러난 기존의 체제를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이를 두고 ‘안정성을 해치는 불필요한 해악’으로 보기 쉽다.


보수와 진보의 다툼은 이렇게, 본체와 작용 모두 정반대인 사람들간의 싸움이다. 나쁜 의미에서는 서로를 향해 보수적이라고 비난하며, 좋은 의미에서는 서로 자기가 진보적(또는 발전적)이라고 주장한다. 보수는 힘의 논리로 약자를 제압하는 데 능하다. 보수는 근본적으로 두려움에 근거하기에 그렇다. 겁이 많기에 힘을 추구하며 그 힘의 부패로 몰락한다.


반면 진보는 현실의 이익이나 힘이 아닌, 추상적인 가치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정의를 쫓는 자신감이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독단과 오만으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다음편에 이어진다.


김태경


오랜 시간 동안 동양학과 유불선을 공부한 동양학자. 특히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람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한의학과 명리학에 천착했다. 호주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를 졸업했으며, 한국교통방송에서 PD로 일했다. 호주에서 한의사 자격을 획득, 시드니 서울한의원의 원장을 맡았다.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과 대한불교조계종 국제포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비등단 무시집의 시인으로, ‘나’와 ‘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세상을 바로 보게 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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