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고산지대로 힐링여행 떠난 후기

베트남의 휴양지로 알려진 고산지대 사파에서 (휴양 대신) 2박 3일간 트레킹을 하고 돌아왔다.

흐느적거리는 다리와 정신을 부여잡고 한 줄 여행 소감을 정리하자면,

‘이중적인 의미에서 환상적이었다’고 하겠다. 환상적으로 힘들지만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곳.


고생길의 서막, 그깟 힐링이 뭐라고

사파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고산지대 마을이다. 해발 3143m의 판시판 산과 무수히 펼쳐지는 계단식 논밭을 볼 수 있어 베트남 여행의 꽃이라 불린다. 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트레킹을 꼽는다.

찾아보니 당일치기부터 길게는 일주일씩 가는 트레킹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소수민족과 함께 트레킹하며 그들의 마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투어도 있었다. ‘바로 이거야! 내가 갈 길이다.’ a.k.a. 뒷동산 등산러는 다소 충동적으로 사파 시스터즈(Sapa Sisters) 트레킹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하노이에서 뒹굴뒹굴하며 포동포동한 나날을 보내고, 밤기차로 9시간을 달려 라오까이(Lao Cai) 역에 도착했다. 미리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1시간, 마침내 사파에 왔는데 비가 온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잠시 생각했다. ‘비 맞으며 트레킹? 으히히, 엄청 재밌겠네.’ 네, 다음 無경험자.

비를 맞으며 등산해본 적은 없는 자의 짧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무구한 자연을 기대했기에 사파에 대한 첫인상은 다소 어색했다. 사파 시내는 한창 공사 중이라 온갖 쇳소리와 망치 소리가 진동했거든. 기사의 안내로 어느 호텔에 들어가 트레킹에 알맞은 복장으로 갈아입고 캐리어에서 조그마한 등산 가방을 꺼냈다.

작고 아담한 가방 안에 수건 한 개에 옷 한 벌, 카메라를 넣자 곧 터질 것 같았다. 안 돼… 여유로운 대자연 속에서 읽으려고 책도 가져왔단 말이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넣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욕심을 버리고 카운터로 나가 가이드를 찾았다.

내 가이드는 ‘샘’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나와 25살 동갑내기였다. 그녀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루트를 정했다. 중간중간 들를 경유지는 정해져 있지만 가는 길의 난이도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지·미디엄·하드 셋 중의 하나를 고르란다.

이틀간 나의 동행이 되어준 가이드 샘과 흐몽족 할머니.

뒷동산 등산러로서 쉬운 길을 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미디엄 코스를 선택했다. “알겠어! 하지만 지금 비가 와서 길이 많이 미끄러울 거야. 이지 코스는 아스팔트로 길이 닦여 있어서 괜찮은데… 트레킹 처음 해보는 거면 이지 코스로 하는 게 어때?” 샘이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단히 묶인 운동화 끈을 괜히 풀었다 다시 묶으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이윽고 찢어질 것처럼 얇은 우비를 걸쳐 입고 길을 나섰다. 관리소에서 트레킹을 위한 허가증을 받은 뒤, 사파 시장을 지나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점점 불안해졌다.

왜 내리막길이 끝이 없을까. 혼자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도중 코너를 돌자마자 광활한 계단식 논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동공에 짙은 녹빛이 반짝하고 들어섰다. 백시 현상인가 할 정도의 강렬함. 나는 여기야말로 힐링의 메카 아니냐며 들떠서 샘에게 말했다. 얼마 후 힐링이라는 단어를 내려놓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 채. 그깟 힐링이 뭐라고.

잠시 쉬는 동안 베트남 전통 커피 드리퍼인 핀(phin)으로 내려 진하게 한 잔.

산길을 넘어 흐몽족의 마을로

트레킹 초반을 지나자 온통 진흙길 뿐이었다. 동행에 나선 왜소한 몸집의 흐몽족 할머니는 내 신발을 보며 ‟아 유 오케이?”를 100번 정도 물었다. 괜찮다고 하며 할머니의 검은 손을 잡았다. 손이 검은 이유를 물었더니,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의 손을 인디고 염료로 검게 물들이는 것이 흐몽족의 풍습이라고 덤덤히 설명해 주셨다.

몇 시간이 지나자, 나는 할머니의 검은 손에 의존해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트레킹을 이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육중한 내 몸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실 만큼 힘이 셌다. 신발 따위는 진작 포기했고 넘어져서 얼굴을 진흙에 파묻지 않을 방법에만 집중했다. 미디엄 코스가 이다지도 힘든데 하드 코스는 오죽할까.

진흙이 잔뜩 묻은 내 운동화. #나만 장화 없어

자존심이 조금만 더 셌더라면 진흙 길을 넘어 황천길을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힘듦은 미래의 나에게!”라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동안의 힘듦이 하필 지금 찾아온 건가. “샘, 내일은 이지 코스로 가요….” 눈앞이 점점 흐려지면서 이젠 정말 쉬고 싶다고 말하려는데, 점심을 먹을 식당이 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후들거리는 다리나 땅이 아닌,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옅은 안개가 낀 논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샘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계단식 논을 어떻게 구분하는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각자 집안에서 대물림 받아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표식이 있다고 했다.

소수민족들은 농사를 짓거나,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게 주 수입원이었다. 실제로 트레킹을 하다 보면 학교에 가는 대신, 팔찌와 가방을 잔뜩 이고 “이거 사면 언니라고 부를게요. 엄마라고 부를게요” 하는 간절한 눈망울의 아이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사파에서는 소수민족의 자립을 위해 되도록 구매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었다.


흐몽족 ver. 홈스테이 

트레킹을 하는 이틀 모두 흐몽족이 사는 집에서 묵었다. 직접 지은 목조 가옥은 사파의 광활한 자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멋스러웠다. 하루는 샘의 집에 묵었는데, 그 집도 샘의 남편이 직접 지은 것이라 했다. 장판도 가구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널따란 집 안을 깔깔깔 웃으며 뛰어다녔다.

홈스테이 웰컴 디시로는 몇 분 전에 딴 옥수수를!

홈스테이의 좋은 점은 현지인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나를 위해 야채볶음이나 볶은 돼지고기, 스크램블 에그 같은 반찬으로 상이 차려졌다. 왠지 평소엔 이렇지 않을 것 같아 주로 무얼 먹는지 물었다. “귀찮으면 밥에 물 말아서 먹어.” 나랑 너무 똑같아서 소름.

샘의 이웃집 가족까지 합세해 한참을 신나게 먹고 떠들었다. 혼자 여행 왔다는 사실조차 깜박 잊은 채 트레킹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마지막 날, 본래는 5시간 정도를 더 걸어 다음 마을로 가야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의 근육이 울부짖고 있었다.

현지식 요리의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홈스테이 장점  

그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며 샘에게 물었다. “다음 마을엔 뭐가 있어?” “별거 없어. 지나온 마을이랑 다 똑같아. 원하면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면 되거든.” 정말 고마워. 너도 들렸니, 나의 내적 비명이. 그렇게 짐을 싸고 시내로 가는 오토바이를 기다렸다.

부슬비가 내렸지만 종잇장처럼 얇은 내 우비는 찢어진 지 오래였다.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오토바이에 올라, 안경에 떨어지는 비를 와이퍼처럼 손으로 닦으며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엔진 소리가 커서 내 심장박동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필시 쿵쾅댔을 것이다.

오토바이는 사파의 웅장한 산맥을 뚫고 질주했다. 아쉽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보지 못한 마을을 보기 위해 조만간 또 올 것 같거든. 다시 사파로 돌아오기 위해 남겨둔 아쉬움이라 여겨야지.

여행 중 가장 많이 본 장면은 샘의 뒷모습이다. 조금만 천천히 가줘…

자연 친화적인 헤어 코사지를 달고 뛰어가던 흐몽족 어린이

흐몽족 홈스테이 가족이 차려준 한상 차림

사파 시스터즈 트레킹은?

사파 시스터즈는 소수민족 여성들이 중개인 없이 직접 운영하는 트레킹 여행사다. 2009년 2명의 예술가와 4명의 흐몽족 여성이 의기투합해 시작했는데, 여성의 인권이 바닥을 치던 흐몽족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여성 학대가 빈번하게 발생하던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진취적으로 나선 것이다.

지금은 트립 어드바이저 사파 어드밴처 카테고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여행사가 되었다. 이들은 여행사 수익으로 농지를 매입해 좀 더 튼튼한 집을 짓는가 하면,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돈을 저축한다.

투어 신청 방법 


사파 트레킹, 이것만은 꼭 챙기자!

하루에 5~7시간을 걷기 때문에 짐은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내 경우 캐리어를 끌고 갔다가 사파 시스터즈 사무실에 맡겨둔 후 작은 배낭만 메고 여행했다. 잘 찢어지지 않는 우비, 모기약, 손전등도 유용하다. 사파의 환경을 생각해 2박 3일 동안 비누로만 샤워했다. 깜빡하고 챙기지 않았더라도 트레킹 도중 조그마한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가이드에게 문의.

[827호 – TRAVEL]

Traveller


대학내일 김신지 에디터 summer@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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