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 하면서 ‘덜 나쁘게’ 나이 먹는 법… 희곡 작가 김태형 제철소장

Fact



▲희곡을 고수하는 1인 출판사가 있다. ▲희곡 작가 김태형씨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 ‘제철소’다. ▲그는 다니던 대형 출판사를 그만두고 2015년 11월, 단막 희곡집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희곡을 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태형 제철소장을 18일 서울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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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에 맞는 책… 제철처럼 단단한 책

10년 다닌 출판사 그만두고 ‘희곡집’ 만들어

국내의 신진 극작가들의 단막 희곡을 모아놓은 희곡집이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창작집단 독’에 속해 있는 9명의 극작가가 공동으로 창작해 쓴 26편의 희곡을 담았다. 

문학은 출판 분야 중에서도 가장 팔리지 않는 분야로 꼽힌다. 게다가 희곡은 그 중에서도 더 안 팔리는 분야다. 그 희곡집을 첫 책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김 소장은 호기롭게(?)도 이 책의 1쇄를 3000부나 찍었다. 보통 1인 출판사 1쇄 인쇄량의 2배에 달하는 부수다. 인지도가 적고 마케팅 여력이 없는 1인 출판사들은 일반적으로 1500부 정도를 찍는다. 김 소장은 왜 이렇게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예전 회사에서 했던 대로 3000부를 찍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너털 웃음을 지었다. 김 소장은 “다니던 회사를 나와 보니 정말 나는 편집 밖에 모르는 바보였다”고 했다. 그는 “출판계에서는 나름 큰 회사에 있다 보니 편집 이외의 부분은 접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출판계에서 만난 선후배들에게 물어가며 하나하나씩 고비를 넘겼다”면서 “지금도 모든 게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매년 한편 정도는 내가 쓴 희곡이 무대에 올라”

제출소의 첫 책은 현재까지 1500부 정도 출고됐다고 한다. 김 소장은 “그래도 희곡집 치고는 선방한 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른 장르의 문학 독자들에게도 스며들길 바랐는데 아직까지는 전공자들이 주요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희곡을 출판사의 ‘메인’으로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내고 싶다”고 했다. 

김 소장이 유독 희곡집에 애정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극작을 전공한 극작가이기 때문이다. 1년에 1편 정도는 본인이 쓴 희곡이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자신이 ‘극작가’로 소개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전업으로 꾸준히 창작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극장 찾아가 직접 판매… “희곡집 치고는 선방”

그는 희곡집을 어떻게 마케팅 했을까? 김 소장은 ‘당신이 잃어버린 것’ 중에 ‘터미널’이라는 작품의 공연을 시작한 때에 맞춰 출간했다. 이후 매일 극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책을 팔았다고 한다. 그는 “마침 공연이 잘 된 덕분에 책 판매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성인용 희곡집이라면,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는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손거울’이 있다. 김 소장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연극의 교육적인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 텍스트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연극은 내년부터 초‧중‧고등학교 정식 수업 과목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김 소장은 “주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왜 너는 내리막길에 있는 일만 하느냐’는 이야기도 한다”며 “출판도 사양 산업인데다가 희곡집 등 문학 위주로 책을 만들고 있으니 우려할 만도 하다”고 했다. 

특정 콘셉트 없이 ‘시리즈’로 중심 잡아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가 “문학, 그 중에서도 희곡 책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1인 출판사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아동, 청소년 문학팀에서 10년간 있다 보니 성인 책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독립했죠. 그렇다고 뚜렷한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1인 출판사는 특정한 한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만들고 싶은 책을 내다보면 제철소만의 색깔이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기획을 합니다.” 

특정 콘셉트가 없이 출판하는 데 대한 걱정은 없을까? 그는 “이러다가 중구난방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제철소 옆 문학관’은 말 그대로 문학, ‘제철소 옆 아고라’는 인문교양, ‘제철소 옆 운동장’은 아동 청소년 라인입니다. 각 라인에 있는 책들에는 숫자를 붙이고 있어요. ‘1’이나 ‘01’이 아니라 ‘001’이라고 붙였죠. 세자리수가 될 때까지 시리즈를 쌓아 가리라는 ‘원대한’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웃음)

출판사끼리 협업 통해 ‘아무튼’ 시리즈 출간 

제철소가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아무튼’ 시리즈다. 코난북스, 위고, 제철소 등 1인 출판사 3곳이 협업으로 진행하는 시리즈 기획물이다. 

위고와 코난북스 대표들은 김 소장이 ‘푸른숲’에 다니던 때부터 알아온 인연들이다. 이들과 올 2월 만난 자리에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스치듯 나온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게 ‘아무튼’ 시리즈라고 했다. 김 소장은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라고 말했다. 

9월 25일 1차분으로 나온 총 5권의 아무튼 시리즈 중 ‘아무튼 망원동’(김민섭)과, ‘아무튼 서재’(김윤관)가 제철소에서 나온 책이다. 5권 모두 판형과 종이가 같고, 분량도 비슷하다. 가격도 9900원으로 동일하다. 또 5권 모두 같은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각 책의 개성이 잘 살도록 디자인 돼 있다. 

김 소장은 “출판계는 굉장히 폐쇄적인데다, 각 편집자마다 자신 만의 고집이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출판사가 협업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시도를 출판계 내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김 소장은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채 안됐지만, 제철소의 책은 초기 출고량이 800~900권 정도”라며 “나름 반응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책 만드는 일은 ‘덜 나쁘게’ 나이 먹는 법

1인 출판사의 상황은 800~900권 정도만 팔려도 “초기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녹록지 않다. 김 소장은 “창업하고 1년째까지는 현상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고 했다. 그는 “2년째부터 매출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1년으로 따지면 2000~3000만원 정도 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2쇄를 찍은 책은 없다”고 덧붙였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김 소장은 앞으로 계속해서 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해 초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그 일을 겪고 난 이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때부터는 저마다 천천히 나빠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그 방법이 책을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제가 만든 책을 통해서 스스로 ‘덜’ 나빠지고, 누군가도 그 책을 읽으며 천천히 나빠졌으면 좋겠습니다.” 

팩트올

기자들과 후원자들이 만든 비영리 언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기 위해 이름을 ‘팩트올’로 정했습니다. 팩트체크와 탐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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