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호의 월드컵 탈락과 어색함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종목 스포츠 축제. 4년마다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포츠 대회로 지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포츠 대회 중 하나. 바로 FIFA 월드컵이다.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불과 8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월드컵은 전 세계 축구팬들이 고대하고 있는 축제임과 동시에, 출전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4년 간 준비한 것들을 한껏 펼치는 무대다.


우리는 세계를 주름잡는 강호들의 경기를 통해 눈이 즐거웠고 수많은 감동을 느껴왔다. 그런데 곧 열릴 월드컵에서는 약간 어색할 수도 있겠다. 아이슬란드와 파나마를 비롯한 국가들이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모습을 드러내게 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를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늘 ‘강호’라고 칭해온 이탈리아와 네덜란드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많은 축구팬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유럽 지역 예선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다른 대륙과 비교해 더욱 경쟁력이 높다. 그래서 유럽 지역에서 열리는 유로 대회를 두고 ‘제 2의 월드컵’, ‘반쪽 월드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우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실패


11월 11일 오전 4시 45분(한국 시각)에 치러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이탈리아가 스웨덴에게 1대0으로 패배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에이, 설마... 그래도 이탈리아인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14일 새벽 이탈리아는 밀라노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1차전 패배를 뒤집지 못하고 본선 탈락의 쓴잔을 들이키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 60년 만이다. 14회 연속 월드컵 무대에 출석해왔지만 이번 탈락으로 그 기록 행진은 멈추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탈락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① 벤투라 감독 선임은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실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벤투라 감독의 선임은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실수라고 표현하고 싶다. 벤투라의 스웨덴전 전술적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벤투라의 감독 경험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자 한다. 벤투라는 강팀을 맡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초짜’감독은 아니다. 단지 하부리그 팀을 전문적으로 맡아온 감독이다.


1990년대 후반 세리에C1에 있던 레체와 세리에B의 칼리아리를 세리에A로 승격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헬라스 베로나를 비롯한 여러 팀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2009/10시즌에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보냈다. 당시 벤투라는 AS바리 지휘봉을 잡고 현재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축인 보누치를 키워내며 돌풍을 주도했다. 이처럼 벤투라는 하부리그에 있거나 1부 하위팀을 맡아 승격 또는 돌풍을 일으키는 데 특화되어 있는 감독이다.

벤투라 감독

물론 벤투라 감독의 선임을 두고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저지른 ‘바보 같은’ 행동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럽 무대에서 강호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대표팀을 가장 중요한 대회인 월드컵에 맡기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러한 도박이 실패해 이탈리아의 충격적인 탈락으로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감독 경력 36년차의 베테랑이라고 해도, 벤투라는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자신의 전술에 맞게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굵직한 무대를 겪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탈락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② 벤투라 감독의 전술적 패착

필자도 ‘설마’했다. 1차전에서 스웨덴의 파워 플레이와 육탄 방어에 고전하다가 무기력하게 패배하긴 했어도, 현재 세리에A 14골로 득점 1순위를 달리고 있는 치로 임모빌레를 필두로 20년 가까이 골문을 지키고 있는 부폰이 버티고 있는 이탈리아가 충분히 홈에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벤투라 감독이 사용한 3-5-2 전술은 그러한 기대마저 없애버렸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듯 3-5-2는 5백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 2차전에서 반드시 2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하는 이탈리아에게 3-5-2는 매우 소극적인 전술이었다. 결국 이러한 소극적인 전술은 이탈리아의 단조로운 공격전개로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경기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크로스에 의존한 플레이와 중원을 건너뛰는 ‘뻥축구’를 했는데, 장신의 스웨덴 선수들은 제공권에서 우위를 점하며 어렵지 않게 이를 막아냈다. (※ 스웨덴 제공권 점유횟수는 16번, 임모빌레의 헤딩 성공은 1번)

벤투라의 3-5-2 전술. 이탈리아는 좌우 풀백의 크로스에 의존한 경기를 펼쳤고 스리백에서 전방으로 이어지는 롱킥(점선 화살표) 축구를 구사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중원의 미드필더 3명의 존재(노란색 네모칸)는 크게 의미가 없게 되었다.

객관적 전력이 밀리는 약팀에서 이 전술이 먹힐지는 모르나 이탈리아는 수비와 중원에서의 빌드업이 좋은 강팀이다. 스웨덴 입장에서는 강팀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라인을 내리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단조로운 공격전개는 매우 비효율적이게 된다. (※ 위 ①번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벤투라는 하부리그 전문 감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소극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벤투라는 양쪽 윙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4-3-3을 사용했어야 했다. 4-3-3은 최근 세리에 A에서 큰 효과를 내고 있다.(ex. 나폴리) 빠른 스피드를 가진 인시녜, 엘 샤라위를 투입해 발이 느린 스웨덴 수비진을 공략했다면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하지만 벤투라는 끝까지 인시녜를 외면했고, 심지어 탈락이 거의 확정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인 데 로시를 투입하려고 했다.


1차전에서의 실수를 똑같이 2차전에서 반복한 벤투라 감독. 과연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발빠른 인시녜와 엘 샤라위를 활용한 4-3-3 전술을 사용했다면 경기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 ‘오렌지 군단’의 몰락


Clockwork Orange(시계태엽 오렌지), 오렌지군단, The Flying Dutchmen(플라잉 더치맨)의 별칭을 갖고 있는 대표팀. 바로 요한 크루이프, 레이카르트, 굴리트, 반 바스텐, 베르캄프 등 수많은 레전드를 배출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축구팬들에게 네덜란드 대표팀이란 수백만에 불과한 인구수에도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강호’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내 리그(에레디비지에)와 유소년 체계가 잘 정비되어있는 네덜란드는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월드컵 준우승 3회, UEFA유로 우승 1회 등 세계무대에서 괄목한 성적을 내왔다.


하지만, ‘오렌지 군단’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초대받지 못한다. 유럽 지역예선에서 3위를 기록한 네덜란드는 조 2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진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일찌감치 탈락을 확정짓고 말았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네덜란드의 몰락을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우린 내년 월드컵에서 로번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네덜란드 대표팀의 모습 또한 볼 수 없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지휘하는 네덜란드는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철학을 앞세워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0대1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유럽 예선 8전 전승,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전 전승을 포함해 15전승을 기록했다. 이때 자리를 잡은 네덜란드식 실리축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지휘한 루이스 반 할 감독체제까지 이어졌다. 스피드를 앞세운 3백 역습축구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의 리벤지 매치에서 5대1로 완승하는 등 네덜란드의 미래는 한없이 밝아보였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자원으로 손꼽히던 선수들이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는 곧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2016 유로 예선을 기점으로 네덜란드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당시 유로 예선 A조에서 아이슬란드, 체코, 터키에게 밀리며 조 4위로 충격적인 예선 탈락을 당했다. 이어 2018 월드컵 예선에서도 탈락하며 축구팬들에게 네덜란드의 ‘메이저 대회 2연속 본선 진출 실패’라는 충격을 선사했다.


① 세대교체의 실패

해외축구를 즐겨보는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 네덜란드가 이토록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대교체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전력은 강력했다. 베테랑과 어린선수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며 메이저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네덜란드의 선전을 이끈 로번, 스네이더, 반 페르시 등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들을 대체할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멤피스 데파이는 수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경쟁에서 밀리며 전력 외 취급을 받았다.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쏘는 반 페르시와 같은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팀을 대표하는 스타 즉, 에이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세대교체 실패와 관련이 있다. 이전까지 네덜란드에는 크루이프, 베르캄프, 반 니스텔루이 등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슈퍼스타’가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 로번이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기둥이 없다. ‘베테랑’ 스네이더는 무게감이 비교적 떨어진다.


② 자국리그의 경쟁력 약화와 굴리트의 지적

한때, 네덜란드 리그는 유럽 무대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자본을 앞세운 타 리그에 밀리게 되면서 그 힘을 잃어갔다. 최근 10년간 UEFA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기록을 살펴보면 8강에 올랐던 에레디비지에 클럽은 단 한 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히딩크가 이끌던 PSV에인트호벤이 박지성, 코쿠, 이영표 등을 앞세워 4강 진출을 달성한 것이 마지막 최고의 성적일 정도다. 이렇게 서서히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네덜란드 리그는 이제 자국의 뛰어난 선수들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표팀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히딩크가 이끄는 PSV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다.

‘전설’ 굴리트는 네덜란드 축구의 몰락 원인으로 자국 유망주들의 이탈을 꼽았다. 그는 독일 일간지 ‘스포르트 빌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16세~17세 네덜란드 유망주들이 너무 빨리 해외로 나간다고 지적했다. 어린 선수들이 이른 시간에 해외로 진출하지만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량 강화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는 네덜란드 리그 베테랑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최근에는 20대의 어린 선수가 주장을 맡는 일이 빈번해짐에 따라 롤 모델이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결국 굴리트가 지적한 사항은 네덜란드가 보유한 뛰어난 유망주들의 이탈을 막지 못하게 되면서 자국리그인 에레디비지에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나아가 대표팀의 조직력 약화 및 경기력 저하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 어색함 = 예측할 수 없는 결과


내년 여름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이름을 볼 수 없다. 그들이 빠진 월드컵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이 수많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어색함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 아무리 ‘강호’라고 불리는 팀이더라도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오늘 치러진 페루와 뉴질랜드의 대륙 간 플레이오프 2차전을 끝으로 32개국의 본선 진출국이 모두 확정되었다. 지역 예선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축구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이변들이 속출했다. 월드컵 무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팀들이 탈락하게 되면서 분명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결과’가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가져다줄테니.

축구 ・ 스포츠 ・ 프리미어리그 ・ UEFA챔피언스리그
축구 기자를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emrechanfootball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