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잃고      



                           김수영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 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 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 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원주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히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김수영을 위하여----강신주

의용군 대열에서 이탈해 서울로 온것도 김현경 때문이었고 피와 살이 터지고 짓무르는 전쟁 상황에서 젊은 남편을 견디게 한 힘은 갓 결혼한 아내의 모든 것이었다. 


김수영은 6.25 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아내 김현경과의 사랑을 남몰래 키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한 일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깜깜한 바다에서 김현경은 김수영이란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등대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 하필 고교 동창 친구인 이종구를 비춘 것이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좌절이자 모욕이었다.


김수영은 모욕감을 애써 누르며, 이종구와 김현경이 살림을 차린곳에 찾아가 함께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으나 김현경이 단호하게 거부한다.


여기서 '늬', 즉 김현경은 6.25가 일어나기 전의 김현경이 아니라 그 후 2년간 김수영이 마음으로 키운 김현경이다. 그의 마음 속 현경은 온갖 시련을 이겨 내게 만든  동시에 자신이 자유를 가슴에 품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던, 여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런데 이제 여신은 존재하지 않고, 그는 홀로 버려졌다.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여인이 없는 것이다. 김현경은 이제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계속 자신의 상처를 덧내는 모욕덩어리일 뿐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울부짖는다.


"억만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억만 걸음은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인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리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인간으로서는 참기 힘든 모멸감도 참아 냈지마느 아내 김현경으로부터 받은 모멸감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전한다.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안다. 다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김수영은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서하는 순간 자신이 그녀를  이제 더는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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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삶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내가 쥐고 있던 모든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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