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인간 이야기 + 필력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들어보셨죠? 툭하면 배아프고 똥 싸는 사람들.

저는 좀 심합니다. 장 안좋은 게 집안내력인데, 저는 어려서부터 유독 심했어요.

똥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아주 재밌죠. 간혹 술자리에서 똥이 주제가 되면 자신의 숨겨왔던 똥사건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장내는 웃음의 똥바다가 되는 경우 겪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남이 들으면 배 찢어지는 똥사건이 참 많아요. 정작 본인은 죽음의 고통 속에 살지만...

자주 싸고 묽은 것을 싸는 게 문제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짧은 제한시간입니다.

일반인들도 살면서 종종 급똥의 위협이 찾아올 때가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10분 정도의 타이머가 주어지는 게 보통입니다. 현대사회에서 10분이면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개 배변을 해결할 여유가 됩니다. 근데 타이머가 3분이라면?? 10분과 3분은 산술적으로 333%의 차이이지만, 압박감은 333배에 달합니다. 333배라는 게 과장이 아닌게, 급똥의 상황이 가장 자주 연출되는 출근 지하철의 예를 들어보죠. 지하철의 역간 주행시간은 보통 2~3분 정도입니다. 10분짜리 타이머라면, 아뿔사! 급똥이다! 급똥타이머가 돌기 시작한 상황이 막 지하철이 출발한 순간이라고 해도 여유가 있습니다. 다음역까지 최대3분 + 최대 화장실 거리 3분 + 대기시간 3분 (이게 변수가 좀 크지만) 해서 대개의 경우 10분 내 해결이 가능하죠.

근데 타이머가 3분 짜리라면?? 이건 답이 없죠. 똥인간에게 똥타이머가 뜬 순간이 만약 지하철이 막 문닫고 출발한 시점이라면, 조금의 과장 없이 정말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과장인 거 같나요? 오 노 진짜 하늘에 맹세코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바지에 똥싼 걸 타인이 알게 된다는 건 문명인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지켜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상황이 되면, 회사 어쩌지? 중요한 아침 회의 어쩌지? 이딴 건 문제 꺼리도 안됩니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 전혀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나는 이 수많은 대중 앞에서 바지에 똥을 싸게 될지도 모른다' 라는 공포는 휴대용 촬영기구와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사회적인 죽음의 공포입니다. '칼을 든 저 강도에게 찔려 죽을지도 모른다!' 같은 생물학적 죽음의 공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네이버 메인에 '3호선 길똥남, 아비규환이 된 출근길의 양재역' 같은 제목으로 기사가 뜬다면? 네이트톡이나 웃대, 오유 등에 월간 베스트로 '크크크크 길똥남 목격담'이 사진과 함께 올라간다면? 코갤러에 의해 길똥남의 신상이 털린다면? 그런 이유로 인해 똥인간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약간의 변의라도 느껴지면 무조건 내려야합니다. 막상 내렸더니 참을만 해서 다시 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일단 내려야합니다. 일단 내리면 지각이 확정인 상황이라도 일단 내려야만 합니다. 만약 참을만 할 것 같아서 안내렸는데 문이 닫히자 마자 3분짜리 타이머가 뜬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참사이기 때문에...

똥인간들은 여행용 티슈를 반드시 상비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포교용으로 나누어주는 티슈를 꼬박꼬박 챙겨둡니다. 교회휴지가 구원이 되는 경우가 경험상 많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각 역별로 화장실이 최단 동선이 되는 출입문 번호를 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동선의 pc방과 교회의 위치를 숙지해 둡니다. pc방과 교회는 24시간 365일 열려있는 구원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사태를 감안하여 경비원이 없는 빌라 주차장을 외워둡니다. 또 택시기사에게 설명해 줄, 주요간선도로 부근의 24시간 주유소 위치를 숙지해 둡니다.

1. 군대, 똥인간에게 가장 엄혹한 환경

똥인간들에게 가장 괴로운 상황은 바로 군대입니다. 감옥을 제외하고는 배변의 자유가 가장 침해당하는 곳. 

훈련소에서 아침밥 먹는 중에 급똥 타이머가 떴습니다. 먹다 말고 막사로 뜁니다. '너 이새끼 어디가!!' 조교의 고함 따위는 훈련병을 멈추게 만들지 못합니다. 저기 보이는 화장실. 하필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는 기간병 병장과 맞닥뜨립니다. '너... 너... 너 뭐야?' 훈련병이 병장을 강하게 밀쳐내고 화장실로 진입. 0.1초 차이로 1차 배변에 간신히 성공하지만 훈련소 화장실 똥칸에는 자살방지를 목적으로 잠금장치가 없습니다. 문이 열리고 2차 배변중이던 훈련병은 병장에 의해 그대로 멱살이 잡혀 올려집니다. 다소간의 구타와 폭언이 끝난 후 훈련병은 빨래와 샤워를 합니다...

2. 똥인간은 고속버스를 타지 않는다

여친과 함께 똥인간이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급똥타이머가 떴습니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 30분 여. 불행 중 다행으로 여친은 잡니다. 차를 세워 볼 생각을 합니다만 가장자리가 화단이나 논두렁이 아닌 방음벽으로만 이루어진 도로의 특성상 차를 세운 후에도 시야가 차폐되는 용변 장소가 당최 나오질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차를 세우면 여친도 잠에서 깰 것이고... 당시의 친밀도를 고려할 때 고속버스 세우고 고속도로에서 똥 싼 남자와는 교제를 지속하지 않을 것이 뻔해보입니다. 그녀를 놓칠 수는 없다... 아니 오늘을 놓칠 수는 없다... 오늘 1박2일 여행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고속버스에는 사람이 몇 없었습니다. 맨 뒷자리에서 처리한다면?? 휴지로 잘 덮어두고 뒷자리 창문을 열어두면 냄새가 안날지도?? 하지만 하필 뒷자리에 사람 한명이 앉아있네요. 아 하늘이시여 진퇴양난... 딜레마... 어찌해야 합니까 하늘이시여... 정면승부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참고 또 참고 버티고 또 버팁니다. 차디찬 고속버스 에어컨 바람을 직빵으로 맞고 있음에도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줄줄 흐릅니다. 변의가 코싸인 그래프를 그리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듭니다.

인류에게 용변이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먼 조상들은 서로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똥오줌을 싸지 않았을까? 문명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동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 여자는 얘 말고도 많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드디어 30년이 지나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건 진짜 과장 아니구요, 일보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주르륵 코피가 흐르면서 휘청하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3. 수채구녕

새벽 2시, 인적이 드문 어느 주택가에 골목에서 똥타이머가 떴습니다. 의외로 주택가는 똥인간들에게 위험한 구역입니다. 화장실 찾기가 도무지 쉽지 않지요. 다행히 허름한 건물에서 열려있는 화장실을 찾아냈는데... 아 하늘이시여 똥칸이 잠겨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왜 옛날식 건물의 화장실들은 똥칸을 따로 잠궈두는 거냐고... 화장실이 가까와 올수록 변의가 강해지는 거 아시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바로 앞에서 마지막 3초의 문턱을 넘지못하고 변고를 당하곤 하죠. 그런 이유로 다른 장소를 다시 찾아나서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화장실 철문을 잠그고 화장실 정중앙의 수채수녕을 바라봅니다. 청소하시는 분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랄까? 심야 주택가의 정적 속에서 직경 5cm의 수채구녕 조준에 집중하며 일을 치르던 중... 똥칸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똥칸이 잠겨있던 건... 똥칸만 따로 잠궈둔 게 아니라 안에서 똥을 싸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똥칸에 계시던 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심야의 주택가에 있는 허름한 건물 화장실에서 홀로 똥을 싸는 건 의외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 정적이 상당히 공포스럽죠. 정적 속에서 갑자기 우당탕쿵탕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사내가 화장실에 들이닥쳐 똥칸문을 거칠게 덜컥덜컥 쥐고 흔든다고 상상해 보세요. 나 있어요~ 하고 노크하기가 쉽지 않을걸요? 그 얼어붙은 상황에서 밖에서는 갑자기 똥싸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다 싸고 있는 건가!?!?! 사, 사람이 아닌가??? 그 부스럭! 소리는 아마 초긴장한 상태에서 쭈그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다리가 저려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꾸다 낸 소리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튼 전 그 부스럭!! 소리를 듣고... 그 아시죠? 토끼나 가젤 같은 초식동물이 풀 뜯다가 포식자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날 때 나는 소리, 부스럭!!에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서서 귀를 쫑끗 세우는 그 상황. 저 역시 저도 모르게 그 부스럭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반쯤 일어섰고 상황을 직감하고는 그대로 내뺐습니다.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뒷처리는 가방에서 여행용 티슈를 꺼내어 어둑한 뒷골목 스포티지 뒤에 숨어서 끝냈습니다.

4. 죽음의 경부고속도로

휴일 이른 아침의 경부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아 드라이브가 즐겁죠. 동대전 휴게소를 막 지난 상황, 타이머가 뜹니다. 이건 10분 짜리다! 3분짜리는 아냐! 침착하자! 동대전 휴게소로 유턴?? 아냐 여긴 고속도로지... 내비를 보니 다음 휴게소까지 30여 km... 시속 180km을 유지하면 10분 주파가 가능하다... 바쁘게 머리가 돌아갑니다. 새차의 고급 가죽 시트에 똥칠을 할 수는 없어... RPM과 함께 변의는 최고조로 치닫습니다. 내가 여기서 차가 뒤집어져 뒈지던, 새차를 똥차로 만들건 뒈지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10분짜리 타이머라는 예측은 빗나갔고 실상은 5분 30여초에 불과한 위험도 1급 타이머였습니다...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비상등을 켠 후 우측으로 휘어지는 코너, 갓길에 조용히 차를 댑니다. 우측의 앞뒷문을 모두 열면 사방 시야가 모두 차폐되는 반평 남짓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새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경부고속도로 (의 휴게소가 아닌 그냥 고속도로 위)에서의 첫경험은 나름 인상깊었습니다.

5. 기타

영동대교 다리 밑 헌병대, 파출소, 양로원(빨래하는 할머니 곁에서), LC도중의 토익시험장, 종로3가역 화장실 (옷은 나와서 입으시면 안돼나요!?), 볼티모어, 샌프란시스코, 도쿄, 오사카 등등 전국각지 세계전역을 돌며 숱한 흔적들을 남겨왔습니다. 똥인간들에게 화장실과 화장실이 아닌 곳의 경계는 무의미합니다. 타인의 시야가 닿기 않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생존을 위해 그들은 과감히 바지를 내립니다. 하지만 배변과 함께 몰려오는 안도감과 자괴감의 조합은 당최 익숙해 지지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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