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어린시절

박지빈


어린 이산.

세손/정조 

유년 이효제

정조 이산

이서진


조선조 22대 임금. 조선왕조의 부흥기를 이루었던 성군. 천재 군주. 11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끝내 밝고 명랑함을 잃지 않은 외유내강한 성품! 타고난 통찰력과 명석한 두뇌는 할아버지 영조임금을 빼 닮았으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할아버지와 다르다.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에 열심이나 무예도 뛰어나다.

세손/정조 

성년 소지섭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 하였습니다.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 태어났을 당시에는 세자의 아들이라서 영조에게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총명하고 공부를 좋아해서 할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세자는 능행 도중에 궁으로 돌아가라고 쫒아내는 반면 세손과는 함께 가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영조의 질문에 또박또박 잘 대답하자 영조가 칭찬하며 "삼백년 종사의 명맥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는데 이 때의 문답과 영조의 발언 모두 실록에 있는 내용 그대로다. 다만 공부에 열중하는 건 모두 할아버지가 기뻐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 내키지 않아 하는 속사정을 아버지에게 털어 놓기도 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관계와 또 다른 부자관계를 보여주는 인물로 사실상 제3의 주인공이다. 두 관계 다 아버지의 정치적 입지, 정신적 문제가 부자관계의 악영향을 주는 공통점이 있는데, 파국을 맞이 한 전자와 달리 후자의 관계는 어느정도 공감대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사도세자가 분노하여 칼을 들고 영조에게 갔을 때 사도세자를 포기시킨 게 바로 정조. 영조와의 대담에서 영조가 사도세자가 영빈 이씨의 환갑 잔치에서 사배[13]를 할 것을 정조가 받아 들인 점을 지적하자, 자신은 할아버지 영조가 왕이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대접을 할 수 있다며 '예법도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곧이어 '아버지(사도세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하는데, 아버지에 대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들고 영조를 찾아간 사도세자가 마당에서 마침 이 말을 엿듣게 되고 분노를 풀어버린다. 이는 사도세자가 젊은 시절 끊임없이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하지 못했음을 연상케 한다. 사도세자는 아들이 자신의 심정을 이해했다는 발언을 한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하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자기 아버지와 다를바 없다는 점을 인지했을 것이다. 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세손빈과 함께 물그릇을 들고 와서[14] 자식이 아비에게 물 한잔 제대로 줄 수도 없냐며 울부짖자, 영조는 세손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세손을 외가(혜경궁 홍씨의 친정)로 보내라며 끝내 외면하고 만다.

사도세자

이창훈


정조의 아버지. 영조의 둘째 아들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 속에서 죽었다.

사도세자 선(愃) 

유아인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소."  - 극중 사도세자의 대사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아들. 극 초반에 사도세자는 마치 분노에 미친 사람처럼 칼자루를 쥔 채 영조가 있는 곳을 쫓아간다. 물이 흐르는 진창을 따라 걸어가는데, 당시의 일을 기록한 한중록에도 "수구(水口)를 통해 윗 대궐로 가리라.", "내 기어이 '아무리하고' 말 것이다."라는 사도세자의 말이 있다. 하수도를 따라 영조가 거처하는 궁궐로 가서 (아마도 영조를) 죽이고야 말리라는 분노 어린 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영조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아버지'가 아닌 '군주'로서, 자신을 대하는 아버지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결국 자신이 대리청정을 맡게 된 순간부터 아버지와 관계는 급격히 냉각 된다. 대왕대비인 인원왕후의 죽음을 계기로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내관의 목을 따가지고 가족들에게 내보이기', '관을 짜서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기', '상 중에 술 마시기', 생모인 영빈 이씨가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중전복을 입히고 중전의 예우로 배례와 행차를 하는 등 정순왕후를 대놓고 개무시하기 등. 이에 폭발한 영조는 "네가 며칠째 대리청정도 안 들어오니, 내가 너한테 문안 드리러 왔다."라면서 물까지 끼얹는다. 이후로는 국정에 전념하기 보다는 사냥이나 유희를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고, 그 틈을 노린 김상로와 김한구 등 일부 신하들이 자신을 역모로 몬다. 결국 영조의 어명에 따라 뒤주에 7일 동안 갇히게 되고, 그동안 영조와 나누지 못한 속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또 다른 창작에 기초에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정조의 부탁으로 영조가 없애버린 사초의 빈틈을 메우는 셈이다. 사초를 세초해 없애버린 것은 사실이니 그 내용을 우리가 알 수는 없다. 세자가 부왕을 상대로 역모를 감행했으나 세손을 위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세자는 부왕의 가혹한 압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주변 사람들 과도 점점 멀어진다. 부왕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나 좌절되고 머리 숙여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사과하기를 여러번. 한번 더 사과하며 부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솔직히 울화가 있어 힘들다고 외쳐 보지만 부왕은 한 마디 내뱉고 다시 세자를 무시한다.

성송연

한지민


정조가 평생 사랑한 여인.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 11살 생각시 때 사도세자가 죽기 며칠 전 창덕궁 휘령전에서 세손과 처음 만난다. 화원출신 아버지 때문에 그림을 좋아하고 재주가 뛰어나다. 궁중 도화서에서 자주 심부름을 다니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어린 생각씨로 입궁하나 입궁 첫날 세손과 인연을 맺는다.

영조

이순재


강력한 리더십의 제왕. 사도세자의 아버지이며 이산의 할아버지. 완벽주의자. 명석한 두뇌와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 특히 불같은 성격 때문에 아무리 한가해도 천천히 걷는 법이 없다. 말 못할 사유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이고 평생을 후회한다. 손자 정조를 끔찍히 사랑하나 그럴수록 더욱 잔인하게 임금 자질을 시험하며 제왕학을 가르친다.

영조 

송강호 분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너, ~니? 등 은근히 간략하고 짧은 대사들이 많은데, 작중 내내 무겁기만 한 중후반부를 조금이나마 환기시켜주는 대사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많지만 현실은 실제 궁중어투라서 쓰인것이다. 궁중어투를 잘 살린 것으로 유명한 사극 대왕의 길의 영조도 거의 똑같은 말투를 사용한다. 실제로 영조는 신하가 아침에 문후를 여쭐때에도 "나는 일없다" 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답했다. 한중록을 봐도 영조는 세자에게 "그 술은 누가 주더니?" "네가 불한당이냐. 불은 어이 지르니" "어찌 그러하니?"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배우의 출신지(경남 김해)가 출신지여서 그런지 억양상 동남 방언이 묻어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듣다 보면 꽤 자연스럽다. 

혜경궁 홍씨

견미리


정조임금의 모후 혜빈 홍씨. 9세에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혼인하여 세자빈이 된다. 조용하고 참을성이 많은 여인. 28살에 남편 사도세자를 잃고 세손(정조)을 키우며 평생 한 맺힌 삶을 살아간다.

혜경궁 홍씨 

문근영


사도세자의 아내. 풍산 홍씨. 정조의 어머니다. 정조 역에 소지섭이 출연했는데, 이에 대해 문근영은 반농담으로 "소지섭과 로맨스 연기를 찍고 싶었는데 어머니 역할을 맡아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문근영이 <사도>에 출연한 이유는 평소 존경한 연기자인 송강호와 연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역부터 시작해서 60대 노인 분장을 한 문근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분장이 안 어울린다는 평가가 상당히 많다, 차라리 이 부분만 적령기 나이대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낫지 않았겠냐는 평가도 있다. 마치 90대마냥 폭삭 늙은 분장인데 조선시대 60대가 현대의 90대와 맞먹는다 생각하면 과한 분장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5]



문근영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역할을 연기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세자의 아내로서의 모습보다는 세손의 어머니라는 모습이 더 부각된다. 영화 시작 부분을 보면 "세자는 포기하고 세손을 살릴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사도세자가 며느리(세손빈)에게 "부부란, 잘못이 있으면 덮어주고 사소한 예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니라."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이 때 이미 세자는 아내에게도 의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어머니이긴 했으되, 좋은 아내는 아니었던 것으로 표현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엔딩에서는 소지섭이 정조 역으로 등장할 때 문근영은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노인 역할 연기를 하게 되는데 그 동안 귀엽고 깜찍한 문근영만 기억해오던 팬들의 입장에서 늙은 문근영은 위화감이 상당하다.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 앞에 불려갈 때, 영조가 유달리 예뻐한 제 아들(정조)의 머리쓰개를 쓰고 가려 하자 홍씨가 머리에 맞지도 않는다며 말리면서 세자 본인의 것으로 바꿔쓰라며 실갱이한 일이 있었다. 이때 아내 혜경궁 홍씨에게 한 세자의 말이, "자네는 어찌 이리도 자네 생각만 한단 말인가"였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기묘한 말이다. 물론 이 기록이 혜경궁 홍씨본인이 쓴 책인 한중록에 나오는 부분이라 혜경궁 홍씨의 행동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편을 죽도록 내버려두겠다는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논쟁거리이다. 정말 그런 의미면 혜경궁 홍씨 자신이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학계의 평도 꽤 많기 때문이다. 즉 당시 혜경궁 홍씨는 단순히 세자의 의도를 몰랐을 뿐이고, 이런 아내의 행동에 사도세자는 섭섭한 나머지 아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오해했다는 해석.

정순왕후

김여진


영조의 왕비. 당찬 여인. 정성왕후의 뒤를 이어 15살 어린 나이로 66살의 영조 임금과 혼인하여 계비가 된다. 나이에 맞지 않게 노회한 성격. 능수능란하고 야심이 크다. 정조임금의 생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인물 중의 하나로 사도세자가 죽은 후 후환이 두려워 세손이 보위에 오르지 못하게 백방으로 노력한다.

정순왕후 

서예지


영조의 계비. 경주 김씨. 15세의 나이로 66세였던 영조와 혼인을 치룬다. 국사 공부 좀 했다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세도정치와 연관이 깊은 인물이다.[10] 영화에선 딱히 선역도 악역도 아닌 중립자적 인물로 나온다. 실제로도 이 시기 정순왕후의 발언권은 매우 미약했다. 정순왕후의 발언권이 커진 건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된 이후이다. 양부모가 모두 죽고 난 뒤라 법적 보호자가 없었기에 그 틈에 정순왕후가 발언권을 키웠다. 


작중에서도 정순왕후의 방이 노론 회합소로만 사용될 뿐, 뭔가 음모를 꾸미는데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영조가 두렵다고 말한다. 이 뒤로 영조의 앞에서 자신의 총명함을 보이는 장면만 나와서[11] 뭐가 무서운가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런 정석적인 답밖에 하지 못하게 하는 영조의 압박감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다만 외척들과의 2번째 모일 때는 사도세자에 대한 적대적인 의견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사도세자에게 엄청난 개무시를 당하고 있으며 사도세자는 정순왕후를 절대로 알현하지 않으며 특히나, 영빈 이씨에게 중전 복장을 입히고 행차까지 하는 등 굉장한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있다. 사도세자에게는 어머니는 커녕 인간으로도 대우받지 못한다.

화완옹주

성현아


영조임금의 딸. 세손의 고모. 예쁜 외모의 전형적인 요부 형. 성격이 간교하고 수다스러우며 파격을 일삼는다. 안하무인격으로 거침없이 행동을 함에도 영조임금의 총애를 듬뿍 받아 온갖 권세를 누리며 전횡한다.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장본인의 하나.

화완옹주  아역 신비 분

진지희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 사도세자의 여동생. 뮤지컬에서는 노론과 연합해 동복오빠를 몰아낸 악녀로 매도당했다. 그런 뮤지컬과는 달리 사도세자와 사이가 좋고 영조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음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세자빈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기도한다. 이 때 눈을 사시처럼 뜨는 장난을 쳐서 사도세자가 결국 폭소를 터뜨리고, 영조가 한참 설교를 하다가 "너 왜 웃니?"라고 말하는 개그씬이 등장한다. 또 오라버니가 힘들어하니까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자신이 나서서 아버지를 경희궁으로 이어하게 한다. 실제 역사에서 사도세자와 이상한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사도세자 사후 혜경궁보다 더 세손에게 매달리는 장면을 통해 조카를 아끼는 고모의 모습도 드러난다.[9]


실제로도 조카와 친했지만 영조 말기 세손이 척신들을 바짝 경계하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정조 즉위 후 정후겸이 사사당하면서 화완옹주도 귀양간다. 화완옹주는 1737년생으로 임오화변 당시 만 25세로 정치달과 혼인했다가 젊은 나이에 상부하고 궁에 들어왔는데 영화에선 만 16세의 진지희가 섭외되었다. 당시 17세였던 정순왕후 김씨 역에 만 25세인 서예지가 섭외된 것과 대비된다. 역사 내용 그대로를 보자면 실제로는 진지희 역할이 서예지 역할보다 더 나이가 많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후겸

조연우


정조임금의 최대 맞수. 천재적인 두뇌와 비상한 처세술로 궁중의 실세 화완옹주를 사로잡아 그녀의 양자가 된다. 겉으론 늘 미소를 지으나 속내는 얼음처럼 차가운 성격. 야심이 많아 18살에 과거 급제, 19살에 정5품인 사헌부 지평, 20살에 당상관인 승지가 되는 등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한다. 영조임금의 특별한 신임을 얻어 최측근으로 일한다. 세손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하고 영조임금의 가짜 유언을 만들어 세손의 후사를 조작하는 등 정조임금과는 평생 적대관계가 된다.

효의왕후박은혜


정조의 정비. 10살 때 세손과 혼인하여 조선조 22대 임금의 왕비가 된다. 성품이 조용하고 착하다. 이산을 사랑하는 송연에게 왕비로서 질투감을 가지나 착한 송연을 아끼고 홍국영의 살해 음모를 막고 자신을 구해준 송연을 앞장서서 후궁으로 만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못해 평생 외롭게 지낸다.

박대수

이종수


정조임금의 호위 무사. 어린 시절 임금을 만나 평생을 지켜 주리라 결심하고 이를 30년 동안 실행한다. 행동이 과묵하나 한번 뜻을 두면 무섭게 집착하고 끝장을 보고야 마는 고독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 훗날 금군의 내금위장이 되어 정조임금을 지척에서 호위하며 장용영 군관 백동수와 함께 조선 최초의 무예책 무예도보통지를 저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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