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


易(바꿀역)

地(땅지)

思(생각사)

之(갈지)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말하게 된다. 설상가상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짙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상(我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온갖 갈등(葛藤)의 시작이다. 갈은 칠 갈(葛)자이고, 등은 등나무 등(藤)자를 쓴다. 칡 덩굴은 오른쪽으로, 등나무 덩굴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이처럼 갈등이란 지향점, 곧 목표는 같지만 서로 방향이 달라 충돌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 답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이 말은 맹자의 ‘처지를 바꿔 놓아도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에서 유래한다. 


맹자의 기록을 보자. “하우와 후직은 태평한 세상에 살았으면서도(禹稷當平世) 자기 집 앞을 세 번씩이나 지나쳤지만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三過其門而不入). 안회 역시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만 생활했다(一簞食一瓢飮). 공자는 이를 훌륭하다고 여겼다. 하우는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못해 그들을 물에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했고(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신이 일을 잘못해 굶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했다(稷思天下有餓者 由己餓之也). 그래서 그렇게 다급하게 살았던 것이다(是以如是其急也).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꿔 놓아도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禹稷顔子 易地則皆然).”


하나라 첫째 임금인 우와 주나라 왕실의 선조로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느라 바삐 살아서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르지 못한 후직의 공적 삶이 빛난다. 

그렇다. 갈등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부족에서 생긴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게 해선 안 된다(己所欲勿施於人)”는 논어 위령공편이 뒷받침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 ‘견여탄(肩輿歎)’에서 탄식했지 않은가.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지,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한다(人知坐輿 不識肩輿苦)!”고. 

세상사 입장 바꿔 생각하자. 

갈등과 고통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제공 : 황종택/녹명문화연구원장

지혜가 보석처럼 박혀있는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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