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황 공명 (徐晃 公明) A.D? ~ 227

" 오호대장군 "

위에도 이런 비슷한 개념의 위나라판 어벤져스로서

" 오자양장(五子良將) "

" 장합 "" 우금 "" 장료 "" 악진 "

" 서황 "

이들 다섯 중 가장 뛰어남을 다투는 장수는 다름 아닌

장합과 서황이였다.


주로 게임 등으로 저 다섯을 접한 분들에게 효용성의

순위를 매겨 보라면 1. 장료, 2. 장합, 3. 서황, 4. 우금,

5. 악진... 순이고 이들의 면면은 오호대장군에 비해

그 중량감이 떨어진다 느끼실 듯.


각 개인의 무예와 용맹이 돋보인 오호대장군에 비해,

오자양장은 개인의 무용도 상당하지만 그보다 특히

" 지휘관 "

재량이 뛰어난 장수들이였음이 그 차이다.


물론 역시 또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수치상으로

게임회사가 매겨놓은 능력치만으로 통솔력조차도

오호대장군이 오자양장을 앞선다 하시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거의 시중에 나도는 삼국지 모티브 게임

" 소설 "

" 삼국지연의 "


혹자는 그럼에도 '오호대장이랑 오자양장이 현피 뜨면

오호대장이 다 조진다' 라고 하실게다.


물론, 연의가 아닌 정사의 역사기록을 보더라도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이 5 VS 5 패싸움이나

태그매치를 벌이면 오호대장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저들은 어디까지나 직접 몸빵 뛰는 워리어들이 아닌

적던 많던 병력을 이끌고 인솔하여 전투에 임하는

'장수'


쉽게 말해서,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이 진짜 대전격투게임처럼

개개인간 붙으면 오호대장군이 승리하겠지만

각기 병력들을 이끌고 맞붙는다면 오자양장측의 승리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는 말!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촉의 BEST 5는 개인 일신의 무용이 강한 이들인 반면,

위의 BEST 5는 병력운용이 뛰어난 자들이고 이 말은

촉과 위의 전투 스타일을 가늠케 해준다.


연의는 제끼고 실사기록만 볼 때,

촉은 어지간한 큰 전투는 오너인 유비가 직접 통솔하고

제갈량은 작전입안 및 후방지원이 주역할에,

이런 유비 & 제갈량의 지휘에 나머지들은 주로 장기말처럼

움직이는 방식이 주요였다.

일단 유비측은 입촉하여 안정화 이전까지

대체로 세력이 작은터라 별도의 독자군단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저런 형태로 움직였던 것.

저런 환경인 관계상... 본인이 직접 판단하여

병력을 운용할 기회도 많지 않아 감을 키우기가 여의치 않다.


반면 꽤 일찌감치 세를 키우고 원소를 제외하면 항상

다수의 우위를 점하던 위는 큰 전쟁은 오너인 조조가

역시 직접 나섰으나, 기타 국지전은 해당 지역의

통수권을 맡은 장수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병력을

운용하는 별도군단시스템이였다.


물론, 진짜 도통 노답이거나 아리까리애매모호한

상황일 때는 파발을 보내 조조의 어드바이스를 구했으나

당시의 교통, 통신 인프라와 그에 반해 예나 지금이나

드넓은 중국면적 탓에 긴박한 전투상황 속에서

왕복만 벌써 수 일 ~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조조찬스는

택하기 쉽잖은 초이스였고 지역 군단장이 모가 되건

빽도가 되건 일단 직접 판단 하는 게 우선이였다.



바로 이런 점들이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의

성향차이를 가져왔고... 책 읽을 때의 재미나 게임 때의

플레이야 당근 오호대장군이 간지겠지만,

인생실전인만큼 실제로는 오자양장들이 더 유용한,

그리고 더 유능하다고까지 감히 할 수 있지 싶다.

여튼 서론이 너무나도 길어지긴 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그런 지휘통솔에 있어 유능함으로 뭉쳐진 오자양장들 중,

" 서황 "


일단 역사기록 모르시는 분들에게 서황은 분명

쓸만은 하지만 위의 핵심멤버라고 하기는 애매한 감이

있으실 건데, 실제로는 정말 뛰어난 위의 보배같은

장수로서 연의에서의 서황이 피케라면 실제의 서황은

수아레즈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향이 당시 하동군 양현, 오늘 중국의 산시 성 린펀 시

홍둥 현이며 기록상의 첫 등장은 후한 말 거기장군이던

" 양봉 "

도적 떼들 토벌 위주의 군공 콜렉터였다.


동탁이 여포에게 팀킬된 후, 이각과 곽사가 천자쟁탈전

벌일 당시 도망치던 천자를 양봉으로 하여금 호위하게끔

" 도정후 "

높은 직위를 하사받는데 위의 구성원들 중 이처럼

천자에게 직접 벼슬을 받은 이는 조조를 포함해도

열 손에 꼽힌다ㅎㅎ


물론, 이 당시 천자의 위세는 우리 회사에서 시말서

두 번 써서 동기들 다 과장 다는 동안 아직도...

그리고 이변 없다면 앞으로도 대리에 머물, 지난번

칼럼에서 간통죄 폐지 최대 수혜자인 정대리보다도

낮던 실정이라, 저 당시 천자가 하사한 벼슬은

그닥 영향력이 없었다.

그냥 절체절명이던 천자가 어가호위에 대한 감사표시로

막 뿌린 벼슬이다.

그러나 운전면허 쉬울 때 거저 땄다고 인정 안되는거

아니듯, 어쨌건 천자가 직접 하사했기에 분명 정통성은

있었다는!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양봉이 조조에게 털리며 사실상 양봉의 비젼이 끝장나자

조조에게 투항 하는데, 연의 내에서 친구인 만총의 설득에

투항한 것은 뭔가 서황에게 버프를 걸어주고자 창작된 것.

당시의 서황과 만총은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이렇게 양봉에서 조조로 이직한 서황!

이제 이때부터 서황은 명장포텐발동이 서서히 시동을 건다.


서주에서 유비를 뒷치기해 자리 잡은 여포정벌,

조조가 인생 다 걸고 당시 강적 원소와 맞붙은 관도대전

모두 서황은 핵심장수로 투입되어 승리를 이끌었고

특히나 연의를 보면 원소의 트원타워인 안량과 문추에게

쪽도 못 추게 나온 것과 달리 안량의 군대와

문추의 군대 모두 격파했던 전력이 있다.


이는 나관중이 관우를 띄워주려니까 관우에게

킬 당하는 안량과 문추도 띄워줘야 되고 그러다보니

그 관우버프의 나비효과에 서황이 희생된 것....


그 외에도 조조가 하북을 재패하는 과정에 도적과

소수민족, 잔여 하북세력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서황은 조조에게 굴려지며 숱한 공을 세웠고

휴식없이 바로 형주남정에도 투입되어 또 공을 세웠으며


다시 또 서쪽에서 마초 & 한수가 까불자 거기도 가서

앞장 서 승리의 마스터키 역할을 했다.

특히 이 마초를 필두로 한 서량세력과의 전쟁은 상당히

중요했는데, 병력의 과반수 이상이 소수민족인

강족과 저족 구성에 지휘부는 한족이며 그 선봉은

여포 버금간다던 인간흉기 마초였기에

이 전쟁에서 패할 시, 안그래도 위의 지지기반이

약하던 낙양 서쪽 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며

그리되면 한중을 비롯, 익주지역으로 진입하는

통로까지 잃게 되기 때문...


하지만 이 주요전쟁의 승리도 하후연과 더불어 특히

큰 공을 세운 서황의 덕이 매우 절대적이였다.

이뿐 아니라, 이후에 연속된 장로가 진을 친

한중정벌에도 나섰고 연이어 유비 세력과도

다시 한중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데도 참전했다.


당시 한중은 전 중국대륙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이 점 때문에 당시만 해도

꽤나 세력이 커서 전면전에나 나서는 조조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왔고, 유비측 역시

늘 그랬듯 본인이 몸소 진두지휘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내내 승승장구하던 서황도 이때만큼은

털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다만, 이는 전쟁에서는 비록 졌으나 서황이

참여한 전투들에서 서황이 패한 것은 아니였다.


조조의 전투노예 서황의 굴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에 유비의 입촉 후, 형주방면 총사령관인

관우의 무시무시한 침공으로부터 조조측이 당시

지배 중이던 형주 북부를 지켜냈다.


조조가 죽으면 좀 설렁설렁 해질 줄 알았겠지만

조조가 죽자 조비에게 굴려졌고,

그럼 또 조비가 죽으면 설렁설렁 해지려나 싶지만,

조비가 죽자 조예에게도 굴려지며

서황은 황희 정승께서 세종대왕님께 수 차례나

퇴직 상소가 반려 당하며 굴려지던 것만큼이나

3대에 걸친 조가의 전투노예로 살다 결국은

몸이 곯아 노환으로 심지어 치매까지 앓다가

죽었는데 장수는 전사가 간지라 여긴 나관중은

전사했다고 연의에다 뻥쳐놨지...

진짜 화수분같이 끝없는 전투 속에서 갑옷을

벗을 틈없이, 말에서 내려올 틈없이 살다 간...

특히 조씨.. 그중에도 조조에게 쉼 없이 전장에

갈아넣어진 전돌이였던 서황이였다... T-T


하도 전장에서만 뒹굴어 그런지 말수가 워낙에

없는 양반에 외곬수에다 물욕도 없이 검소했다.

하긴 저런 스켸쥴이면 사치하고 싶어도 그럴

틈도 없긴 했겠다.


정치적 휘말림을 매우 경계하여 조조를 제외한

문무의 그 어느 누구와도 업무적 짧은 대화를

제외한 그 어떤 사담도 나누지 않았던 그였다.




이러한 묵비권쟁이 서황이 유일하게 사담도

나누며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친하게 지낸 이가

" 관우 "


여러분도 알다시피 관우는 조조에게 유비의

거취를 접하는대로 유비에게 돌아간다는 전제로

잠시 조조 휘하에서 객장...

요즘 표현 빌리자면 일종의 용병 역할을 했는데

그 당시의 관우와 서황은 상당히 친했다고 하며

심지어 먼저 다가가 말을 건 것도 서황이였는데


아니,

정치적 휘말림이 싫어 친구도 안 사귀고 말도

거의 않는다는 양반이, 적장출신 용병과는

말을 한다???


바로 그게 이유다.

관우는 조조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들어온 이가

아니였고 불투명한 확률이긴 해도 어쨌건

유비의 거취가 확인되면 언제건 떠날 사람에,

당연히 유비가 생존 했을거라 여기며 언제고

떠날 마음만 가득하던 관우와는 무슨 이야기를

한들, 정치적 휘말림으로부터 안전했다.


왜 우리도 가끔 살다보면 오히려 친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못할 말을 모르는 이에게

하는건 쉬울 때 있는데 서황에게 관우가 딱

그런 대상이였던 것.


게다가 둘 다 그닥 말수들이 없다보니...

일단 서황은 정말 말수가 너무 없는 편이였고

관우도 누가 뭘 물어보면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만 먼저 막 말 걸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라

둘의 대화의 키는 서황이 쥐고 있었다.


서황이 혀가 좀 터지면 그날은 둘이 이야기가

좀 도는 날이지만 서황이 말 않는 날은 관우도

먼저 말 않으니 벙어리 대결이 되는 것.....


심지어 둘이 만나 한 식경(거의 두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다 헤어진 적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나관중이 서황의 손에

" 개산대부 "

" 도끼 "

장팔사모처럼 당시에는 있지도 않은 무기들을

썼다고 표현된 부분들이 넘치는 것과 달리

도끼는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쓰인 도구이니

당연히 서황이 굴려지던 후한 말 ~ 삼국시대에도

존재했던 무기는 맞다.


다만....


예젼에 삼.이.높.2에서 다뤘던 것을 기억들

하실지는 모르겠으나 후한 말 ~ 삼국시대 당시

대부분의 장수들은 베는 용도의 무기인 도가

아닌, 찌르기용 창인 삭을 주로 사용했다.

왜 그런지는 이미 내용 꽤 길어져서 더 쓰기

빡세니 삼.이.높.2를 보시고 오시길 바라고

아무튼 도보다 주로 삭을 썼는데 도끼라는

무게의 살상원리는 도와 같다.


게다가 정사에 딱히 서황이 무슨 무기를 썼다고

나오질 않으니 도끼를 썼을 수도 있지만 사실

안썼을 확률이 더 높다고 보여진다.

혹시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

캠핑이건, 군대에서건 그 밖에 기타 등등

도끼를 실제로 사용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도끼라는 도구 자체가

자루 즉 손잡이 부분이 짧아야 제대로 힘도

실리고 정확도 높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아이템이다.


물론 서황이 황금도끼의 그 드워프처럼

독하게 연마해서 도끼질의 달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노력을 그냥 찌르는 창에다

쏟았으면 오호대장군도 넘어섰을 거다.


내 생각인데....

나관중이 서황을 다루려는데 공적은 워낙

많은 주요장수임에도 각종 기록물들에

원체 말도 없지, 친구도 없으니 별 다른

캐릭터 드러나는 에피소드도 없지..

검소한 성격 탓에 딱히 꾸미고 한 게 없고

그래서인지 외모묘사없지...

그러다보니 딱히 잡히는 기믹이 없어서

' 도끼를 휘두르는 맹장 이미지 ' 를 부여한게

아닐까 싶다.

사망연대는 기록에 명시되어 있지만

생년은 기록이 없다.

즉, 서황의 사망당시 나이는 알 길이 없다.

헌데 관우가 서황을 부를 때 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 대형(大兄) "

직역하면 ' 큰형 ' 이지만 단순 큰형이라기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 형님 ' 이다.

중국 무술영화에서 흔히 들어봤을 표현인

' 따거 ' 가 바로 저 대형이다.


왜 우리도 연장자인데 나이차가 크지 않거나

친하면 ' 형 ', 나이차가 크거나 경공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분들께는 ' 형님 ' 이라 하듯,

관우가 서황을 부른 따거는 우리식의 형님...

그 말인즉슨 둘 다 태어난 시기를 모르다보니

정확히 몇 살 차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황이 만난지, 친해진지도 얼마안된...

그리고 자존심도 개쎈 관우로부터 따거소리

듣는걸 보면 단순 친분깊음 떠나 나이차도

꽤 났던걸로 추측된다.


사망 전에 노환과 치매를 앓았다는 말이

있는걸보니 꽤나 나이 들어서까지 살았던 듯.


" 서개 "

다른 자식에 대한 기록이 안남았기에 저 개가

장남인지, 외동인지 알 수 없으나...

이름만 개는 아니였던 거 같다.

서황 사후 아들에게 작위와 재물이 그대로

세습되었는데 빚을 갚고 나니 남은게 없다는

기록이 있다.


조예 입장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전장에서

구르며 개국에도 큰 공이 있는 명장이 죽었는데

그 아들에게 푼돈 줬을 리 없는데 그 돈을

빚갚는데 다 썼을 정도면 이름 그대로였던 듯.

위의 언급대로 개인의 물욕이 없던 이는 맞다.

" 공욕 "

앞서 말했듯, 서황은 말 그대로 굴려지다시피

참전이 잦았는데, 관도대전 승리 이후 세력이

적잖이 커진 조조는 효율적인 인원배치를 하여

그 방면의 " 전문가 " 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적벽대전 이후 합비공방 제외하면 딱히

북진이 없는 오를 상대로 대오전문 장료, 악진, 이전.

중앙의 형주에는 조인, 조조생전 가장 거슬렸던

대촉전문 하후연과 장합 등...


허나 서황만큼은 동서남북 상대와 장소의 가림이

없이 나돌았는데 이는 조조의 인사컨셉과 조금

괴리가 있고, 다른 장수에게는 이러한 성향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서황의 " 공욕 "...


공을 세우려는 욕심이 매우 컸던 서황은 뭔

전투만 벌어지면 일단 지원을 했다.

조조가 반려해도 그 말 없던 서황이 그 순간만은

조조를 강하게 설득했고, 조조입장에서도

실력과 실적이 우수한 명장의 자진참전을

마냥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으니 대체로

허락 했다.


결국....

그 혹독한 굴려짐은 다 자초했던 일이였던..




휘하 병사들 입장에서의 서황은 완전 그닥이였다.

딱히 잘 챙기는 것도 없었고, 타 장수들에 비해

정찰 범위나 승전시 패잔병 추격 거리도 유독

길었으며 병사들의 휴식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워커홀릭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쉬움이 든다.


그토록 욕심 부려가며 공을 세웠건만,

분명 이런저런 보상을 받았을텐데도

정작 또 물욕은 없고...

꽤 능력자임에도 현세에 와서 서황의 이미지는

그냥 도끼쓰는 나무꾼일뿐.


심지어 살아 생전에 도끼는 안썼을 확률이 있고..



살아생전 지모와 대국안도 상당한 패전 모를

지용겸비의 명장이였음에도 나관중과

코에이의 콜라보 탓에 오늘날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몸빵 버서커로만

인식된 현실.


결국 나관중은 서황에게서 실제를 뺏고

도끼를 쥐어준 셈이다.


꼭 현대의 숱한 우리네 직장인들 같다.

위에서 시키는대로 죽어라 열심히 애써

일하지만 정작 윗사람들은 잘 인정도 않고

인사고과 좋게 받으려, 승진 하려..

이것저것 지원해서 더 일하고 야근에,

휴일근무도 자청했건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먹고 T-T



2018년 개의 해!

개같이 일해왔고

개같이 일하고 있고

개같이 일해야 하는

우리 직장인 여러분 힘 내십시다!

다들 왕성한 성생활 하세요.

역사 ・ 시뮬레이션게임 ・ 삼국지 ・ 여행
그냥 흔한 노총각입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