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복기하듯 유년기를 되새겨 보곤 한다.

저속도의 시간을 예민하게 살아냈던 때-

그때를 생각하면 교실 안의 정치와 또래의 부침,

외집단과 내집단의 경계에서 느꼈던 불안,

중의적 표현이 남발하는 교실에서

남몰래 함의를 파악하던 열정 같은 것이 떠오른다.


유년기를 되새기는 행위는

침잠해있던 해묵은 감정들을 헤집어놓기도 하고

과거를 정정하고 싶다는 불가능한 소망까지 품게 한다.

그래서 그 행위는 내게 있어 쾌감을 지닌 자학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내게 그 시절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와 글솜씨가 있다면 분명

그 시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장 소설 같은 걸 쓰려 할 것 같다고

막연히,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책 속 화자인 캐시가 학창시절을 적극적으로 회상하며

천착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과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헤일셤을 가슴에 품은 채 ‘인간’적으로 살기도,

‘일반인’이 되어 경솔한 연민을 일삼기도 한다.

또한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낭만을 품으면서도

외집단의 더 나은 지옥을 무례히 계획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이 구별 짓고 구별 당하는 가운데 포함과 배제의 순간을 모으며 산다.

그러니 인간이라면(인간이기만 하면)

이 책의 등장인물 모두에 공감할 수 있는 기본요건은 갖춘 셈이다.

찬찬한 눈으로 삶과 인간을 성찰할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에겐

이 책이 좋은 기회를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에 장르와 표지 글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간병사’, ‘기증’, ‘근원자’, ‘일반인’ 같은 단어들을 설명 없이 만난 덕에 헤일셤의 세 친구가 성장기 내내 마주 해야 했던 ‘명징하지 않은 느낌’, ‘들었으되 듣지 못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아무런 정보 없이, 느닷없는 다이빙처럼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책 내용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참이다.


피터 캠프가 <타임스>에 쓴 서평에서처럼 “대상을 다루는 이시구로의 솜씨는 이렇듯 이제 가히 대가의 경지를 자랑한다.” 의도적으로 나직하게 읊조리며 감정의 골목골목을 찬찬히 답파하는 그의 문장은 ‘그랬다’ 와 ‘그랬을 수도 있다’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환기해 주는, 요컨대 뉘앙스에 주목하는 섬세한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사건이나 정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성격, 그리고 작품의 성격까지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성과를 거둔다. /김남주. 옮긴이의 말 중
여가 기록-단정한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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