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6. 그 사람한테서 떨어져(2)




“들을 얘기도, 더 해드릴 얘기도 저는 없는데요.”


로라는 엉거주춤 침대에서 일어나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지혜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지혜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로라를 바라보다 들어가도 되죠, 하며 병실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제 병실은 어떻게 아신 거죠?”
“그것쯤이야. 간단한 거 아닌가요?”



지혜의 말에 로라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혜 역시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또각또각 로라 앞에 섰다.



“아까 한 가지, 말씀 못 드린 것도 있고.”
“……”
“못 물어본 게 있어서요.”



지혜는 팔짱을 꼈다. 이건 꼭 질문하러 왔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따지러 온 사람의 태도였다. 로라는 피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비웃음 비슷한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로라가 영 못마땅했지만 지혜는, 꾹 참았다.



“뭔데요.”



로라는 지혜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되물었다.



“그래서 우리 도헌이랑.”
“…….”
“사귀신다구요?”
“그거는 아까 충분히 대답을 제가 드렸…”
“아뇨. 확실히 말씀해주시죠.”
“…….”
“사귀는 사이. 그러니까 두 사람.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까?”



* * *



“선을. 지켜 주셨으면 해서요.”



기태는 도헌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자 도헌은 기태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선. 나야 말로 지켜라 그쪽한테 얘기해주고 싶네요.”
“뭐…라고?”
“내가 보기엔 선을 지나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쪽 같은데.”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도헌의 말투와 태도에 기태는 순간 경직됐다. 기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도헌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좀 전 병실에서 수정과의 통화내용을 들은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무슨 선을 지나친다고…”
“그렇게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거면.”
“…….”
“들키지나 마.”
“…….”
“그쪽 여자관계. 다 정리 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
“아직 덜 정리된 거라면 빨리 정리해.”
“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후부터 절대 그 여자, 여자와 관련된 것들, 내 눈에 그리고 오로라 눈에 띄지마라.”
“니가 뭔데 나한테 명령 질인데.”
“뭐…?”



기태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러곤 젠틀하고 매너 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냉정한 미소만 흘린 채, 도헌을 똑바로 응시했다.



“니가 뭔데, 나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그리고 여자?”
“…….”
“너나 잘해. 나한테 무슨 여자가 있다고 저번부터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
“내 연애는 내가 알아서 해. 주제넘게 로라씨랑 내 사이에 껴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말고. 이제 로라씨. 내 사람이다.”
“…….”
“딱 여기까지라고. 니가 우리 사이에 주제넘게 오지랖 부릴 수 있는 건.”



그러고 기태는 휘적휘적 돌아섰다. 도헌은 그런 기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허탈한 웃음을 흘려버렸다.



“니 사람이라고. 오로라가.”



오로라가 자기 사람이란 기태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쟁쟁 울렸다. 도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서로 좋아하는 사이는 아닌데.”
“…….”
“서로 아끼는 사이죠.”



로라는 지혜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풋, 아끼는 사이라구요?”



이에 지혜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네. 각별한 사이죠, 우린.”
“…….”
“확실히 와 닿을 수 있게 몇 가지 이야기 들려드려요?”



로라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는 지혜를 기분 나쁘다는 듯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 새벽에 제가 보시다시피? 욕실에서 넘어져 사고가 났죠. 그런데 구도발이, 아니 도헌이가 이렇게 저를 들쳐 업고 그 새벽에 잠도 안자고 응급실까지 같이 와줬죠.”
“…….”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제 옆에 붙어서 저 병수발 들고 있죠.”
“…….”
“어찌나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지, 됐다고 가라고, 가라고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제 커피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네요.”
“…그건 도헌이가 원래 정이 많아서…”
“그쵸. 우리 도헌이. 정, 참-많죠.”



로라는 무슨 말을 하려는 지혜의 말을 가로채서 이어 말했다. 우리 도헌이란 로라의 말에 지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정이 어찌나 참-많고, 깊은 지 저는 도헌이랑 지내면 지낼수록 더욱 더 느껴가고 있다니까요?” “…….”
“제가 남자라도 만날라 하면, 어찌나 자기 일처럼 나서서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사사건건 걱정해주고, 신경써주고, 제 귀가 시간까지 관리를 해주는 지.”
“…….”
“그것뿐이게요? 제가 일 때문에 바빠서 점심이라도 혹시 거를까, 매번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갖다 주죠.”
“…뭐라구요?”
“그리구 아침밥도, 저녁밥도 꼬박꼬박 군소리 않고 챙겨줘, 우울한 일 있을라치면 자기가 나서서 챙겨 줘, 술친구도 돼줘.”
“…….”
“참. 제 구 남친이 꼭 누구처럼.”
“……?”
“바람 펴서 제 뒤통수 친 쓰레기였거든요.”
“…뭐?”
“그런데 제가 그 쓰레기랑 쓰레기랑 붙어먹은 년이랑 한바탕 하고 있을 때.”
“…….”
“도헌이가 어디서 백마 탄 왕자처럼 딱, 나타나선 절 구해줬거든요.”
“…….”
“그리고 그 일 이후로 어찌나 제 걱정을 하는 지요. 다시 제가 그런 연애의 예의도 모르는 쓰레기를 만날까봐. 이 정도면 뭐…각별한 사이라고 해도 되겠죠?”



로라는 눈을 찡긋해 보이며 지혜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지혜는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바닥만 응시했다.



“무슨 사이냐고 궁금해 하셨죠.”
“…….”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고.”
“…….”
“네. 서로 좋아해요. 아끼구요.”
“…….”
“그래서 더욱.”
“…….”
“지혜씨가 도헌이 곁을 맴도는 거. 도헌이를 붙잡고서 늘어지는 거.”
“…….” “
보기 불편해요. 도헌이 지혜씨 말대로 정 참, 많은 애예요.”
“…….”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도헌이에게 한 사람이. 계속 도헌이 붙잡고 곁을 맴도는 거.” “…….”
“그거 정이 많다는 걸 이용하려는 걸로 밖에 안 보이네요.”
“당신이 나랑 도헌이. 우리 사이에, 뭘 안다고 끼어들어.”



지혜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로라를 향해 물었다.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뭐?”
“당신이랑 구도헌 사이는.”
“…….”
“우리 사이가 아니라.”
“…….”
“우리였던 사이죠.”
“…너.”
“그리고 내가 끼어든 게 아니라.”
“…….”
“당신이 끼어든 거지.”
“너 진짜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스타일이구나?”
“반말하지 마. 내가 너보다 언니야. 그리고 말로 안하면 몸으로 보여주게?”
“뭐?”
“미안한데. 나도 왕년엔 꽤나 행동하던 고딩이었다. 몸 사려라.”



로라는 싸늘하게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곤 천장을 바라보며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하품을 했다.



“나 피곤한데. 나가주실래요?”
“…….”
“착각 속에 빠져 사는 당신 계속 보고 있으려니 너무 피곤해서.”



할 말이 없었다. 따지려고, 도헌이 곁에서 떨어지라고 경고라도 하려 로라를 찾아온 지혜였지만 어쩐지 한 방 먹은 듯 했다. 지혜는 허탈한 듯 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 많은 도헌이라.”
“…….”
“나 쉽게 못 버려. 그리고”
“…….”
“정 많은 도헌이니까.”
“…….”
“너 챙겨주는 거다. 착각은.”
“…….”
“내가 아니라, 니가 하고 있는 거고.”



지혜는 기분 나쁘다는 듯 병실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갔다. 로라는 지혜의 마지막 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천장만 그대로 응시한 채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로라는 방금 자신이 지혜에게 내뱉었던 말들을 곱씹어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구도발…. 오지랖 넘치긴 했지만 그래도 참 나한텐 고마운 사람이네.”



하지만 그런 도헌에게 로라는 여태 고맙단, 그 흔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퍼뜩 생각났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로라는 도헌에게 왠지 미안해졌다. 그러곤 오늘 새벽에 도헌에게 안겨 욕실을 나섰던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마음이…어쩐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자식은 근데 어디 간 거야. 생각난 김에…고맙단 말이라도 해주려 했더니.”



로라는 휴대폰을 들어 ‘구도발’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꾹 눌렀다.


* * *


다음회차도 얼른가지고올게용!

얼른 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