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9. 진실 혹은 거짓(1)


“괜찮겠어요, 정말? 그래도 응급실에 조금은…”
“아뇨. 여기가 더 불편해서요…집이…더 편할 것 같아서.”



로라는 까맣게 그을린, 응급실에서도 훤히 보이는 편의점이 불편해져왔다. 반대편으로 고갤 돌리며 로라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룻밤 정도는 그래도 있는 게, 화재사고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꽤 심해서…”



기태는 말끝을 흐렸다. 로라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응급실 입구 쪽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도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기태는 그런 로라를 말없이 바라보다 로라를 부축했다.



“데려다 줄게요.”
“저…구도발…이 저보다 많이 다친 것 같아서.”
“…….”
“먼저 가세요, 선생님. 전 구도발 데리고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로라는 멋쩍게 웃으며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기태 역시 속은 쓰라렸지만 애써 웃어보였다.



“그럼 같이 가. 태워다 줄게.”



기태의 말에 로라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구도발이랑 내가 우리 아파트에서 같이 내려야 하는데…. 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자식이…죽어도 싫다고 할걸요? 하하핫, 저 신경 쓰지 마시구…피곤하실 텐데 어서 가보세요. 오늘…고마웠구요.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놀라긴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기태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괜히 찜찜하고 자존심 상했다. 먼저 로라를 구한 사람이, 저 구도헌이 아닌 자신이었어야 했는데. 기태는 입술을 꾹 깨물곤 도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로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집 가서…바로 잠 들 수 있겠어요?”



기태는 로라의 뺨에 묻은 거뭇거뭇한 재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였다. 로라는 그제야 기태를 바라보며 네?, 하고 되물었다.



“잠…바로 잘 수 있겠느냐고.”
“아…뭐….”
“아님. 집에 같이 가서 잠드는 것만 보고 나올까요?”



제법 진지한 목소리의 기태였다. 로라는 기태의 말에 잠시 주춤 하더니 이내 활짝 웃어보였다.



“아뇨, 괜찮아요. 동생 집에 있을 거라서…”



그때 치료를 마친 듯, 도헌이 엉거주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로라는 기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죄송해요…아무래도 저 때문에 다친 거라, 맘이…너무 쓰여서…”
“아, 아닙니다. 가보세요. 정말 안 데려다 드려도 되요?”
“네, 괜찮아요! 그럼. 집가서 전화 할게요!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하고 로라가 총총총 도헌에게로 사라졌다. 기태의 마음이 씁쓸해졌다. 자꾸만 로라의 뒷모습에 시선이 갔다. 이러지 않았는데, 이런 적 없었는데. 왜 자꾸만 오로라, 그녀는 자신을 낯설게, 이상하게만 만들고 있는 건지.


기태는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웅다웅하는 도헌과 로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괜찮겠지.”



그러곤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까만 재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기태였다.



* * *



“아 그러니까! 편의점엔 뭐한다고 기어들어가가지고!”



병원을 나란히 나서며 도헌과 로라는 그새를 못 참고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했다.



“야! 내가 불이 날 줄 알았냐?! 그러는 너는 뭐한다고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더니! 그 시간에 병원은 와 가지고 다치고 난리야!”
“이 아줌마야. 내가 그 시간에 여기 안 왔음, 누나 지금 여기 없어. 아냐?!”
“이게! 유리창 뽀사고 나오자마자 119도착했거든?!”
“그 전에 누나는 연기 마시고 꾀꼬닥 했을걸!"
“그래!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했잖아!”



병원 입구 앞에 서서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 앞에 꼬마가 우뚝 멈춰 섰다. 로라는 도헌을 올려다보다 말곤, 자신의 앞을 홱 바라보았는데,



“어! 도헌아.”



아까 로라와 함께 화재 현장에 있었던 꼬마였다. 로라는 환하게 웃으며 도헌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도헌은, 도헌이란 꼬마의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꼬마와 로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얘, 이름…도헌이냐? 실화야?”
“나두 놀랬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구?”



그러자 꼬마 도헌은 엉거주춤 로라를 한 번, 도헌을 한 번 바라보다 이내 주머니에서 뭔가를 꼼지락 꼼지락 꺼내더니 로라 앞에 척, 내놓았다.



“엄마가 이모랑 삼촌 먹으래.”
“응?”
“그리고오…”




막대 사탕 두 개를 척, 내밀어 보이더니 이내 꼬마 도헌은 로라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몸을 베베 꼬았다. 아무래도 로라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도헌은 팔짱을 낀 채 꼬마 도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고…고마…”



쑥스러운 듯, 고맙단 말을 쉽사리 내뱉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만 베베 꼬고 있었다. 로라는 그런 꼬마 도헌이 귀여워 도헌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고맙다구?”
“…….”
“너도 큰 도헌이랑 똑같구나?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거.”



그러면서 로라는 뒤에 멋쩍게 서 있는 도헌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도헌은 로라의 시선에 괜히 뭐, 하고 입술을 삐죽였다.



“나두 고마워. 이렇게 우리 무사해서. 그렇지?”



로라는 꼬마 도헌을 꼭 끌어안았다. 그러곤 등을 토닥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도헌아 앞으론 라이터 같은 위험한거 들고 장난치면 안돼요, 알았지?”
“으응…”
“착하네! 그래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이 형아처럼?”



꼬마 도헌은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도헌을 척, 가르켜 보였다. 로라는 오잉, 하는 표정으로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도헌은 의기양양해져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고럼. 이 형아처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지!”



으쓱해진 도헌은 이 꼬마가 사람 볼 줄 아네, 하며 꼬마 도헌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에…이…형아가…멋있어…보여?”



로라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응! 완전 멋있어! 나도 커서 이 형아처럼 될래!”
“어, 그건…안 되는데…별론데, 그건.”



로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꼬마 도헌의 머리칼만 쓰다듬었다.



“그래, 도헌아. 너도 꼭 커서 형아처럼 되렴!”
“저주를 퍼붓네, 퍼부어.”
“뭐? 내가 뭐 어때서?!”
“그런 게 있어. 별로라면 별로야, 하여튼.”



하며 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꼬마 도헌을 향해 생긋 웃었다. 꼬마 도헌은 동경의 눈빛으로 도헌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더니 도헌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곤 총총총 사라졌다.



“짜식…이 누나도…꽤 멋있는 여성인데…난 거들떠보지도 않네.”



로라와 도헌은 꼬마 도헌이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가만히 서 있었다.



* * *



“로준인 늦는데요.”



집으로 돌아온 도헌은 그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로라는 그런 도헌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이내 자신도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큰 전쟁이라도 치룬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고작 이틀 만에 생사를 오고간 로라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 띵동




그때, 로라의 휴대폰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고,



- 집은 잘 도착했어요? 걱정되니까 연락 줘요.



기태였다. 로라는 생긋 웃으며 침대에 벌러덩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였다.



- 덕분에요. 선생님은 잘 도착하셨어요?

- 잘 도착했죠. 걱정이 돼서…오늘 밤, 잠은 잘 자려나 모르겠네요.



로라는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이라도 좀 치우고 자야겠다 싶어,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 전 괜찮아요. 정말루요!



누군가가 이렇게 날 걱정해준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고맙기 만한 로라였다. 로라는 휴대폰을 책상 맡에 두곤 어지럽혀져 있는 노트며 책들을 하나 둘 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



그때, 그 여자에게서 받은 조그마한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포장 된 정사각형.



“이걸…여태 안 뜯어 봤네.”



로라는 책상 앞에 앉아서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었다. 그러자 네모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이 나왔다.



“와…예쁘다.”



봄을 연상케 하는 연보라와 연분홍빛의 꽃이 조화롭게 수놓인, 아름다운 손수건이었다. 그리고 손수건의 오른쪽 맨 귀퉁이에 적힌,



“carpe diem.”



왠 라틴어가 쓰여 있었다. 손재주가 좋은 여자인 듯 했다. 꽃과 레터링까지 손수 수놓은 쓰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손수건. 로라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그 라틴어의 뜻을 찾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현재를 즐겨라….”



좋은 뜻이었다. 현재를 즐겨라라, 여자가 내게 이런 라틴어가 적힌 손수건을 선물한 뜻이 있을까?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기태에게서 문자가 왔다.



- 내일 봐요. 보고 싶네요, 로라씨. 잘자요.



그래…. 현재를 즐겨라. 난 그냥 지금, 차선생님과의 지금을…즐기면 되는 거야.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가 선물한 손수건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 * *



“어이, 잘 잤냐?”



로라는 애써 밝은 척,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도헌에게 말을 걸었다. 언뜻 언뜻 보이는 도헌의 팔에 감긴 붕대가 눈에 거슬렸다. 로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도헌에게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야 아침 됐어. 안 먹고 가도 돼. 쉬어.”
“괜찮아요. 먹고 가.”
“야, 됐다니까? 몸도 이런 애가 무슨 밥이야, 밥은.”
“아 괜찮다고. 먹고 가요.”




걱정이 되는데, 괜히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오는 로라였다. 로라는 입술을 삐죽이며 식탁에 앉았다.



“한 끼 거른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누나는 한 끼 거르면 두 끼 거르고, 세 끼 거르다가 나중에 배고프다고 친구들 불러다가 술 왕창 마실 거잖아요. 내가 모를 줄 알고.”
“얼씨구.”
“먹어요. 재료 있는 걸로 대충 했어요.”




도헌은 소고기 야채 죽을 로라 앞에 내밀었다. 로라는 눈을 끔뻑이며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맛은 보장 못 해.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만들었거든요.”
“넌 안 먹어?”
“만들면서 간을 많이 봤더니, 생각 없어요.”



하곤 휘적휘적 방으로 들어서는 도헌이었다. 그러곤 쿵, 닫힌 방 문. 무언가 마음이 씁쓸해졌다. 로라는 굳게 닫힌 도헌의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도헌이 쑨 죽을 한 입 먹었다.



“맛…있네…짜식.”



그나저나 저 자식…왜 저렇게 퉁명스러워졌데? 적응 안 되게…. 로라는 자꾸만 굳게 닫힌 도헌의 방문에 눈길이 갔다.



* * *



“어? 선생님.”



로라가 막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기태가 서 있었다.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가방을 고쳐 맸다.


“걱정이 돼서…같이 출근이라도 하려구요.”
“에에…이 바로 앞인걸요! 번거로우실텐데…”
“타요. 오늘 폭염주의보 떠서 바로 앞이라도 더워요.”



기태는 생긋 웃으며 로라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로라는 생긋 웃으며 기태의 손을 잡곤 기태의 차에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오호라! 이거 놔두고 가는 거 아냐?!”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재활용봉투를 든 도헌이 로라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순간, 기태와 로라는 동시에 뒤를 돌아 도헌을 바라보았다.


“누나 어제 옷 주문하려고 뽑아 놓은 종이 같은…데…. 어…”
“구…구도발…”
“구도…헌씨가 왜…거기서…”


* * *

나아갈 진, 여물다 숙, 진숙입니다! 소설 문의 메일 : shinhwa2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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